풍선효과로 전자담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

언제부터인가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이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흡연이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물론 간접흡연도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몰리면서 애물단지로 전략한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담뱃값 인상’과 ‘모든 음식점 금연구역’이라는 초강수를 내던지며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어 더 이상 흡연자들은 어디서든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올해 초까지 가장 이슈는 담뱃값 인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해부터 2,500원이었던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역대 가장 높게 올린 담뱃값에 흡연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진 건 사실이다.


10년 간 담배를 피워온 윤인수(29)씨는 “매번 새해마다 담배를 끊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다시 피우곤 했었다”며 “담뱃값이 많이 올라 이제는 줄이기보다 한 번에 끊을 생각”이라고 금연 각오를 밝혔다.
서울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서민수(22·가명)씨는 “막상 편의점에 가서 인상된 가격을 보니 당황스럽다”며 “더는 담뱃값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금연해볼지 아니면 우선은 전자담배로 바꿔 피울지 고민해봐야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면적에 상관없이 모든 식당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면서 차라리 담배를 끊겠다는 흡연자들도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1일부터 100㎡ 이상 면적의 음식점에만 적용되던 금연구역을 커피숍과 음식점 등에서도 실내 면적과 관계없이 ‘흡연석’ 설치를 전면 금지했다. ‘흡연실’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의자와 테이블을 둘 수 없다.

커피전문점·PC방 등에서 2년간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흡연석도 운영할 수 없으며, 필요한 경우 반드시 ‘흡연실’을 설치하도록 했다. 정부는 흡연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당구장, 스크린골프장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어기다 적발되면 해당 업소에는 170만 원, 흡연자에게는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자체적으로 금연정책을 추진하던 지방자치단체들도 정부의 금연정책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기존의 금연거리를 확대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대상으로 금연구역을 늘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강도 높은 금연 정책으로 흡연자들은 물론 소상공인들의 불만도 높다.
여성 흡연자인 김진아(25)씨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흡연 여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길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힘든데 카페에서 조차 금연해야 되니 갑갑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흡연자인 윤재열(53)씨는 “비흡연자들의 건강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흡연 공간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카페의 흡연석을 없애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흡연할 자유마저 정부로부터 억압당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개방된 식당·카페에서의 금연 시행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인 정순오(61)씨 역시 “금연 시책이 시민들의 의식만으로 지켜지길 바라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면서 “특히 (영세상인을 위해) 규제는 하되 손님 유치에 무리가 없도록 단속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모 만화방 사장 박상백(31)씨는 “업종 특성상 흡연자가 많이 찾는데, 흡연석을 없애라는 것은 영업을 접으란 소리나 마찬가지”라면서 “당장 흡연실을 만들기에도 영세상인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영세 PC방과 노래방 업주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노량진동 인근의 PC방 사장 서광종(36)씨는 “손님의 80% 가량이 흡연자라 계도기간이 끝나면 이중 절반 이상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수백만 원을 들여서 만들어 놓은 흡연부스마저 소용없어졌으니…식사 후 자리를 뜨는 음식점과 달리 PC방은 장시간 머무는 손님이 다반사인데, 담배 피우느라 들락날락 해야 돼 불평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양대 앞에서 소규모 카페를 운영하는 서형석(31)씨는 지난 1월3일부터 흡연실 공사에 들어간 상태다. 2평 남짓한 부스를 새로 만드는데 쓴 공사비만 200만 원이 넘는다. 서씨는 “‘흡연석은 안 되고 흡연실은 된다’는 규정조차 모호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본사 지원이 되는 대형 프랜차이즈업체와 달리 개인 사업자의 경우 공사비 지출조차 버겁다. 공사업자만 배불리는 상황으로 보여진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예상보다 강도 높은 금연 정책에 당황한 흡연가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이참에 끊어 보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분위기다.
지난 1월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최근 현재 흡연 여부와 금연계획을 묻는 긴급 정책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흡연자 중 ‘일반 담배를 여전히 피우고 있다’는 응답자가 53.0%, ‘올해부터 완전히 끊었다’는 응답자는 22.0%, ‘곧 끊을 것이다’는 응답자는 18.0%, ‘일반담배에서 전자담배로 바꿔 피고 있거나 바꿀 예정이다’는 응답자는 7.0%로 나타나 전체 흡연자 중 담뱃값 인상으로 올해부터 금연을 했거나 곧 할 예정인 사람이 44.0%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30대에서 올해 이미 금연을 했거나 곧 할 예정이라는 전체 금연효과가 46.9%(이미 금연 19.8%, 곧 금연 27.1%)로 가장 컸고, 이어 60세 이상 43.7%(25.4%, 18.3%), 50대 40.5%(25.0%, 15.5%), 40대 35.1%(22.6%, 12.5%), 20대 35.1%(17.2%, 17.9%) 순으로 나타났다. 담뱃값 인상의 즉시 금연효과는 60세 이상 50대, 40대, 30대, 20대 순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높게 나타났고 잠재 금연효과는 30대, 60세 이상, 20대, 50대, 40대 순으로 큰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부터 금연을 했거나 향후 금연할 예정자와 전자담배 교체 응답자만을 대상으로 ‘일반 담배를 올해부터 안 피우고 계시거나, 안 피울 계획을 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응답자의 10명중 4명인 41.2%가 ‘큰 폭의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꼽았고, 다음으로 ‘담뱃값 인상을 주도한 정부에 대한 반감’을 꼽은 응답자(28.5%)도 10명 중 3명에 달했다.
G마켓은 지난달 12월29일부터 1월11일까지 고객 1,493명(흡연자)을 대상으로 ‘2015년 새해 금연 계획’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1%가 올해 금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금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모두 선택하라는 질문(중복응답)에는 설문참여 인원의 10명 중 7명이 ‘담뱃값 인상’(70%)을 꼽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금연하겠다는 의견은 43%로 뒤를 이었다. 금연구역 확대 등 ‘흡연자들이 점차 설 곳을 잃어가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담배를 끊겠다는 의견도 15%에 달했다.

금연클리닉을 찾는 흡연자들도 크게 늘었다.
지자체 보건소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금연클리닉은 지난 연말부터 등록자가 3배 이상 증가하는 등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 1월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월1일부터 7일(오후 5시 기준)까지 보건소 금연클리닉 등록자는 4만 7,975명으로 작년 1만 4,098명보다 3.4배 늘었다. 새해라는 시기도 주요했지만 금연클리닉 등록자 수는 정부가 담뱃값 인상을 발표한 직후 급증한 것으로 보아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가 흡연가들의 금연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 보건소에는 새해 들어 금연 클리닉을 찾는 인원이 2배 정도 늘었다. 지난해 8월까지 월평균 100여 명 정도였지만 지난해 12월에는 240여 명으로 확연히 늘었다. 이번 달에도 이와 비슷한 인원이 유지되고 있다.
성북구 보건소에는 지난 1월1일부터 8일 만에 400여 명이 금연 클리닉에 등록했다. 지난해 1월 전체 등록자인 400여 명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지난 1월2일 대구 북구보건소에 따르면 인상안 발표 이전에는 하루 평균 50여 명이 방문상담을 받았지만 현재는 2배인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 방문했다.


북구보건소의 신금희 금연클리닉 담당은 “오전 8시30분부터 금연클리닉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오전에만 60여 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다른 보건소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달서구보건소는 하루 30건 안팎이던 상담 건수가 정부의 인상안 발표 이후 100건 가까이 늘었다. 중구는 하루 10~15명이던 상담자 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통 30~40대 남성이 가장 많고 여성은 전체의 10%가량 차지한다”며 “아직 통계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올해는 담뱃값 인상 등으로 가격에 민감한 어르신들의 방문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2월부터 전국 병의원에서 받는 금연 상담 등 금연치료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한다. 병의원 금연치료에 등록한 환자를 대상으로 12주 기간 동안 상담과 금연보조제(니코틴패치, 사탕, 껌, 부프로피온, 바레니클린) 투입비용의 30~70%를 지원한다. 의료급여수급자와 최저 생계비 150% 이하 저소득층은 금연치료에 대한 본인부담금 없이 치료비 전액을 지원받는다.

최근 금연에 성공한 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성공 비법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15년 동안 피워온 담배를 끊었다는 최원재(35) 씨는 금연을 위해 하루에 생양파를 매일 1알씩 먹었다. 한 달 보름 정도 지나니 금단 증상이 없어졌고 그 뒤로 한 달이 지나니 손이 떨리지도 않았다. 생양파를 꾸준히 먹고 물을 마신 지 2달쯤 됐을 때 최 씨는 담배를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모(46)씨는 20년이 넘도록 담배를 하루에 1갑~1갑반을 피웠다. 우연히 산 아래쪽을 걷던 조씨는 ‘공기 맛’을 느꼈다. 공기가 피부에 닿는 감촉과 코로 들어오는 청량한 기운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도 충분히 기분을 전환할 수 있게 해줬다. 조 씨는 그날부터 산책을 습관화했다. 그 결과 금연보조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금연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거창한 방식으로 담배를 끊으려고 하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또 다른 ‘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금연 방법을 찾는 것이 담배를 끊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조비룡(49)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피는지 식사한 뒤 담배를 피는 습관 때문인지 등 저마다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성북구 보건소 양란(30·여) 상담사는 “흡연은 습관이니 또 다른 습관을 만들어 흡연 욕구에 대처하는 것”이라며 “목욕 같은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면 시간을 내기 어려운데, 어려운 것들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소소한 것들을 장기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고 설명했다.

금연 계획이 없는 흡연자들은 비싼 담뱃값에 롤링담배와 전자담배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현재 온라인 마켓을 통해 판매되는 전자담배 액상은 20㎖ 기준 1만~5만 원대까지 가격과 종류가 다양하다. 하지만 꾸준히 액상을 교체해야 하는 만큼 또 다른 금전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액상 레시피’가 소개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액상 원료들을 직접 구매해 제조하면 시중 가격 대비 최대 10배 이상의 액상 용량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직접 연초를 말아 피우는 롤링담배도 최근 흡연자들 사이에서 주목 받고 있다. 연초(담배잎), 롤링기, 페이퍼, 필터 등만 있으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롤링담배는 연초의 양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담배 개수를 늘리는 게 가능하다. 시중의 담배를 사서 피우는 것보다 금전적인 부분을 절약할 수 있고, 향도 다양하다. 하지만 롤링담배의 필터 공정에서 일반 담배 필터와는 달리 유해한 미세 입자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자담배 판매량도 급증했다. G마켓에 따르면 전년대비 지난 한 달 동안 금연보조제 판매량은 2배 증가한 데 비해 전자담배 판매량은 11배나 증가했다.
A 전자담배 대구총판의 한 관계자는 “전자담배는 경기를 많이 타 매출 변동이 심한 편인데 지난 9월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2004년보다 담뱃값이 큰 폭으로 올라 전자담배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자담배가 담배가 아닌 금연보조제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청소년들은 전자담배를 보란 듯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 학교 측의 계도가 필요하지만 금연보조제라는 인식 때문에 쉽지 않다.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이복근 사무처장은 “보건복지부 지적과는 달리 청소년들 또한 전자담배를 담배로 생각하지 않고 금연제품으로 생각한다”며 “담배를 끊겠다며 아르바이트 해서 전자담배 비용을 마련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교복차림으로 전자담배를 피우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담뱃값 인상으로 청소년들의 금연율 상승효과가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풍선효과로 전자담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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