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금슬이 좋아서일까. 인공 수정을 세 번하고 시험관을 세 번해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 고민했다는 배우 홍지민 씨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저절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고 한다. 아들이면 지드래곤, 딸이면 에일리처럼 키우고 싶다는 유쾌한 예비엄마 홍지민 씨와의 토크쇼는 그녀의 호탕한 목소리처럼 즐거웠다.

손 :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데뷔 하신지가 얼마나 되셨지요?
홍 : 제가 1996년도에 데뷔를 했으니까 올해로 19년차 정도 되었어요.

손 :  첫 데뷔작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홍 : 서울 예술단에서 한 ‘애랑과 배비장’이란 작품이었는데, 거기서 ‘물동이 아낙1’을 맡았습니다. 3아니고 1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1이라는 건 아낙의 리더였지요.

손 : 그밖에 많은 작품에 출연하셨지요. 출연작 중에서 ‘베스트 3’을 뽑으라면 어떤 작품이 있겠습니까?
홍 : 스위니 토드, 브로드웨이 42번가, 드림걸즈 이렇게 꼽을 수가 있겠는데요. 3개가 너무 아쉬워서 하나를 더 꼽는다면 캣츠 이렇게 네 작품이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 : 그 작품들이 홍지민 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홍 : ‘드림걸즈’라는 작품이 저의 연기 생활에 터닝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연기에 자신이 있고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드림걸즈를 만나면서 ‘아 내가 정말 배우로서 많이 보잘 것 없구나’라는 한계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그러면서 반성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능성도 동시에 발견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연기생활 15년 동안 각 부문에 뭐~ 신인상, 조연상 등 많은 부문에 노미네이트만 되다가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탔어요. 그것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상을 받게 되었던 작품이에요. 그러니까 배우로 한계도 느꼈지만 가능성도 봤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손 : 아~ 심사위원 만장일치 이게 중요한 거지요, 브로드웨이 42번가도 홍지민 씨에게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지요?
홍 : 네~ 이 작품은 내 인생에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 했던 작품이에요. 제가 이 작품의 포스터를 딱 찍은 그날 저의 둘째언니가 폐암 말기 선고를 딱 받은 거예요. 우리 가족들이 그 때 제가 ‘광고천재 이태백’이란 드라마도 찍고 있고, 이 작품도 연습하고 있던 상황이라 저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거예요. 드라마까지 찍고 있던 상황이니까 가족들은 제게 숨기고 알리지 않았던 건데 언니 상태가 너무 심각하니까 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그래서 이 작품 포스터를 찍던 날…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제 마음은 일을 접고 언니 옆에서 간호를 해 주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관계자 분들께 이야기해서 작업을 못하겠다고 했는데 이사님이 안 된다는 거예요. 계약서에 도장도 찍었고 포스터도 나와서…. 그래서 그 당시 이사님이 야속하고 너무 섭섭했어요. 연습하면서 병간호도 하고 드라마도 찍으며 힘들게 보냈는데 언니가 너무 빨리 돌아가셨어요. 발명하고 두 달도 안 되서 돌아가신 거예요. 그래서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공연을 올린 거예요. 그런데 공연 중에 임신사실을 알게 됐어요. 42년 만에… 제가 노산이다 보니, 도로시 브룩이란 역할이 너무 부담이 되고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오히려 태교가 되고 공연 가는 곳마다 관객들도 축복을 해 주니 더 좋은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한 생이 마감되고 한 생을 잉태하는 저에게는 특히 많은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손 : 정말 희로애락을 다 느꼈던 작품이었네요. 스위니 토드는 스릴러 작품도 꼽아주셨는데요.
홍 : 네.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업계평가라는 게 있는데, 제가 이 작품을 통해 소위 업계평가를 너무 좋게 받고 인정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감독이나 제작자 같은 관계자들에게 인정받은 기분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손 : 관객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업계의 평가도 매우 중요하지요. 그래야 캐스팅도 되는 거니까… 좋은 소식이 들려요. 임신 하셨지요?
홍 : 제가 서른 세에 결혼을 했는데 그동안 아이가 없어서 제가 별짓을 다 했었어요. 인공 수정을 세 번하고 시험관을 세 번하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뭐든 될 때까지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었거든요. 그리고 ‘내가 하는데 왜 안 돼?’라는 교만한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아이는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시험관 아기를 하려면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해요. 세 번째 실패를 하고나니 몸도 마음도 피폐해 지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그만 하자고 내려놓았는데 자연 임신이 된 거예요. 그래서 이 아이는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해요.

손 : 공연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도 하셨지요. 스크린과 무대가 많이 다른데, 자기 캐릭터와 맞는 역할을 하신다고 생각하세요?
홍 :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가리는 건 아니지만 배역이 전문가 역할이나 커리어 우먼 등 이런 작품들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잘 저하고 맞는 거 같고 또 맡은 역할은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스타일리스트가 의상 협찬이 안 된다고 울고 있는 거예요. 너무 뚱뚱해서…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으니 “언니 55까지만 살을 좀 빼주세요”하는거 아니겠어요. 아니 나더러 55까지 빼라는 건 거의 죽으라는 거지요. 그런데 제가 했어요.  

손 : 대단하십니다. 자~ 지민 씨 부모님은 지민 씨가 어떤 사람이길 원하셨나요?
홍 : 사실 저희 아버님은 제가 외교관이 되길 원하셨어요. 근데 저를 47세에 낳으셨어요. 16세에 독립운동을 하시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으셨는데 아버님은 그 때 당시에 대학에서 영어영문을 전공하신 엘리트였고 나름대로 낭만이 있는 분이셨어요. 저희 집이 그렇게 잘 살지는 못했고 아버님의 뜻과는 달리 제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하니까 반대를 많이 하셨지요. 제가 배우가 되어서 지금은 좀 인지도가 올라가고 했는데, 제가 22살 때 돌아 가셔서 지금 제 모습을 못 보여 드린 게 좀 아쉽고, 지금도 공연하고 커튼 콜을 하고 박수 받고 그럴 때는 아버님 생각이 나고 그래요.

손 : 오늘 젊은이들이 많이 왔어요. 뮤지컬 배우로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배우를 하겠다고 하면 어떤 조언을 주시겠어요.
홍 :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해야 되요. 젊다는 게 재산인데 만약 자기가 배우로 성공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언저리의 일들은 할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기획이나 연출, 공연 마케팅 같은 일들…. 그러니까 자기의 끼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도전해서 꼭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이 바닥의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손 :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홍 : 슬럼프는 자기가 사랑받지 않고 있다고 생각될 때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좀 우울해 질 때는 종이에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막 적어요. 그리고 그것들을 해 봐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기분이 좋아져요. 그러면서 슬럼프나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극복하곤 해요.

손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메시지 한 마디 주신다면.
홍 :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가지면 세상도 사랑하게 되고 인생도 좋아 지는 것 같아요. 지금의 자기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자신을 사랑하는 삶 속에서 더욱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손 : 오늘 나와 주셔서 귀한 말씀 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아이 낳으시고 또 맛깔스러운 연기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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