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유럽 꿈꾸는 베트남 ‘다낭

여행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이 풍성해 지고 행복해 지는 것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과 이를 함께 나누고 싶어 여행길에 동행하자고 손을 잡았다. 그런데 여행사들의 상품은 여행의 낭만을 반감시키고 때로는 실망을 안겨주었다. 해외여행을 평생 한 번 밖에 못가는 사람들도 있는데…안타까운 그녀는 자신이 느낀 그대로의 여행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태어난 (주)지티비는 평생 잊히지 않는 여행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여행지마다 김현수 대표의 정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날

   
 
다낭으로 향하는 비행기. 얼마 전 다녀왔음에도 다낭을 떠올리면 여전히 설렌다.

그 때 그 노을은 아직 그대로인지, 부서지는 파도는 여전한지… 15년 여 여행사업을 하면서 첫 눈에 나를 매료시킨 유일한 곳이 바로 베트남 다낭이다. 온갖 화려한 나라를 다 가봤지만 이곳 다낭은 형언하지 못할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낭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자정이 지나 우리 일행은 호텔로 향했다. 우리 여행의 가장 큰 경쟁력은 좋은 데서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불필요한 옵션이나 쇼핑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여행을 다녀보니 이 세 가지 이유로 여행의 즐거움이 불쾌함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는 철저히 고객중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내일 일정을 조율한 후, 다낭 하얏트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짐을 풀다보니, 나의 여행길에 늘 동행하는 이 가방의 흔적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침대에 누웠지만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별이 쏟아질 듯한 까만 밤하늘에 파도소리가 어우러진 하모니는 그 어느 명곡보다 아름다웠다.   

 


둘째 날 

   
 
여행은 순간이다. 아무리 느리게 걸으며 보아도 모든 것을 내 눈과 기억 속에 다 담을 수는 없다. 처음에는 욕심내서 무리하게 사진을 찍고 수첩에 적느라 제대로 기억에 담지 못했다. 진정한 여행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알게 된다. 지닐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걱정과 염려가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다낭 하얏트는 쨈이 들어있는 4개의 작은 유리병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식사를 마쳤다.

   
 
본격적인 여행을 위해 우리는 ‘후에(Hue)’로 이동했다. 베트남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후에를 알아야 한다. 후에는 전통적으로 베트남 문화, 종교, 교육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화려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잠시 현실을 잊을 만큼 신비롭고 매력적이어서 1993년 유네스코가 후에의 유전 전체를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하기도 했다.

후에로 가는 길에 반가운 식당을 만났다. Seoul Restaurant라는 간판 위에 ‘서울’이라 적힌 한글을 보니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우리는 낚지볶음과 파전, 그리고 조개탕을 시켰는데, 칼칼하고 시원한 조개국물이 한국의 맛 그대로였다. 지역내 유일한 한국식당이라 가격이 좀 비쌌지만 그래도 푸짐하고 넉넉하게 배를 채웠다.

   
 
후에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궁궐이자 유적지였다. 후에성은 ‘외성’과 내성인 ‘황궁’, 그리고 황제의 사적인 공간인 ‘자금성’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궁 안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포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근래에 와서 관광자원으로 한창 복원공사 중이다.

후에의 성들에 베트남 국민들의 문화적 감각과 전통이 오롯이 배어있었다. 섬세한 문양에서는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화려한 색상은 빛이 바래도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눈부신 화려함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후에 황궁을 한 손에 쥐어보니, 후에성의 기운이 전해지는 듯했다.

   
 
후에성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카이딘황릉이다. 외부의 진중하고 웅장함과 내부의 화려하고 섬세함이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고귀하도록 찬란한 후에성을 보고 있으니 그냥 이유없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티엔무’라는 여신이 나타나 “한 군주가 와서 이곳에 국가의 번영을 위한 절을 세울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응우옌 호앙이 1601년에 세운 절이 이곳 티엔무 사원이다. 1960년대 반정부 세력의 본거지로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빨리빨리’가 일상이 된 우리나라에 비해 이곳 티엔무 사원은 참으로 평화롭다.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에 평화롭다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머무를수록 그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따뜻하게 데워지는 물처럼 이곳 후에는 나에게 그렇게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셋째 날
어제의 감동을 간직한 채 마블 마운틴(오행산)으로 향했다.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우리는 무옵션 여행이 모토, 걸어가도 되고 타고 가도 된다. 금액이 추가되는 것이 아니니 자기가 알아서 선택하면 될 일이다. 미군의 폭격을 받아 구멍이 뚫린 동굴이 지금은 훌륭한 볼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문화유산을 둘러본 후 우리는 호이안으로 향했다. 다낭에서 30km 남쪽에 있는 호이안은 아름다운 강과 해변이 어우러진 도시로, 베트남 국제 무역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호이안으로 이동 중에 든든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래원교, 광동회관, 떤끼의 집, 복건회관, 도자기 박물관 등 호이안 올드타운을 관광했다. 처음 관광 온 고객들은 호이안에서 16세기를 경험을 한다. 마치 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이곳은 844채의 고가로 이루어져 있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신기한 것들이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추억이 된다.

다낭 투번강에서의 보트투어까지 즐기고 나니 조금 피곤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여흥이 채 가시지 않은 마음으로 시클로를 타고 이동했다.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지면서 시클로에서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호이안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낮에 본 풍경이 180도 다르게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형형색색의 등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 날

   
 

후에에서 다시 다낭으로 이동했다. 어떤 이들은 베트남이 습하고 흐리다고 하는데, 나는 운이 좋은 것일까. 가는 날마다 쾌청해 그렇게 덥지 않았다. 특히 다낭의 바나산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싹함까지 느껴진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5,801m 길이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아래로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손에 땀이 흥건히 밸 정도다. 이를 타고 올라가면 바나산 정상에 프랑스풍의 외형을 갖춘 바나힐 마운틴 리조트가 있다. 아직 개발도상국인 베트남에서 어떻게 시설이 생겼을까 싶을 정도다.

아쉽게도 이제 다낭의 마지막 여행지 영응사로 간다. 이곳은 좌청룡 우백호 그리고 앞으로는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영응사 때문에 다낭이 발전한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영응사에서 보이는 다낭의 모습은 신비롭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해서 비밀의 절이라고도 하는데, 이 비밀의 중심에는 해수관음상이 있다. 65m 동양 최대 관음보살상인 이 해수관음상은 기도하는 사람의 눈을 맞추며 함께 따라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해수관음상 주위를 빙빙 돈다. 신기하게도 해수관음상이 나와 눈빛을 맞추며 따라왔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다낭 시내와 해변이 한 눈에 보인다. 오늘밤만 지나면 다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짙어진다. 

다낭 해변, 바다와 모래 사이에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여행사업을 하는 내게 다낭은 참으로 많은 질문을 던져 준 곳이다. 다음에 이곳을 찾을 때는 꼭 그 해답을 안고 오리라 다짐하며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3박5일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면 항상 허전함과 보람이 교차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나의 태생이지만, 나와의 여행을 통해서 삶의 기쁨과 행복, 힐링을 찾은 고객들을 보고 있으면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더 큰 보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문의 : (주)gtb 02-548-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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