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개막식과 개회사를 하는 곽영훈 회장

[시사매거진=신혜영 기자] “세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 체계를 만드려는 WCO의 노력에 감사를 표합니다.”

지난 10월 21일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제13회 WCO 실크로드 메이어스 포럼 WCO Silk Road Mayors Forum에서 멘데레스 튀렐 안탈리아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행사장 제일 첫 줄에 앉아 있던 포럼 공동 주최자 곽영훈 세계시민기구(WCO) 회장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동서양을 연결하겠다’는 중국 한무제의 원대한 꿈으로 실크로드가 막 형성되기 시작한 기원 전 2~1세기. 유라시아 대륙 동단에서 한반도는 삼국을 갓 태동시키던 작은 땅덩어리에 불과했다. 2200여 년이 지난 2018년 한국은 매년 실크로드가 거친 도시들을 오가며 새로운 평화와 교류의 역사를 쓰고 있다. 고대 실크로드 서단에서 동서양 문물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한 터키의 후손들이 오늘날 한국의 WCO에 감사를 표한 배경에는 이 기구가 13년째 이어 온 ‘실크로드 메이어스 포럼’의 역할이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파트마 사힌 터키 가지안텝 시장은 “실크로드 메이어스 포럼을 개최한 이후 ‘실크로드의 성지’로 도시를 브랜딩 하는 데 성공해 “실크로드 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지안텝은 2012년 열린 제 7회 실크로드 메이어스 포럼을 개최한 도시로, 터키 남서쪽 지중해안에 위치한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150여km 떨어진 도시다. 그는 또 “당시 참석한 인사들이 가지안텝의 음식들이 맛있다고 하나같이 칭찬해 주었는데 그를 계기로 도시를 ‘음식’으로 브랜딩하기 시작했다”며 포럼 이후 가지안텝의 발전상을 전달했다. WCO와 실크로드 포럼이 제공한 만남의 장이 가지안텝 시민들도 몰랐던 가지안텝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포럼은 현재 실크로드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굵직한 메시지도 던졌다. 6E가 대표적이다. 6E란 환경(Environment), 교육(Education), 윤리(Ethics), 공학(Engineering), 에너지(Energy), 삶의 즐거움(Enjoyment of Life)를 일컫는 말이다. 곽 회장은 정치·경제적 득실로 점철된 도시계획 담론에서 실제 실크로드 시민들의 삶의 질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로 이 6E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그의 개회사에서부터 역설했다. 포럼 참석자들도 깊이 공감했다.

블라디미르 조킥 몬테네그로 코토르 시장은 “시민들이 해결돼야 한다고 절감하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7번째 E, 동감(Empathy)도 필요하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6E를 도시 개발에 고려하는 방법론으로서 Servernance 역시 많은 참가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곽 회장은 이번 실크로드 포럼을 계기로 여태껏 소수의 지도자들이 다수의 대중들을 일방적으로 이끌었던 top-down 방식의 governance만이 강조되는 시대에 종말을 고했다.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역 사회에서 시민들의 삶을 진정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bottom-up 방식의 servernance로 관심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같은 맥락에서 포럼은 도시간의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곽 회장은 “국가와 국가의 대화는 두루뭉술하고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레토릭으로 시의적절한 결론이 없기 쉽고 파워 게임으로 흐를 위험이 높지만 도시 간 외교는 시민들의 매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세밀한 도시 행정을 하므로 요즘 세계 문명의 흐름에 훨씬 더 적실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자가 ‘아버지 외교’라면 후자는 ‘어머니 외교’로, 자식을 학교에 보낼 때 아침은 무엇을 먹여야 할지, 학교 가는 길은 위험하지 않을지 등을 세심하게 고민하는 그런 외교”라고 상술했다.

이번 포럼에 한국의 패널로 참석한 오준 전 유엔 한국대표부 대사는 “WCO가 행하고 있는 지방 정부 간 외교는 국가 간 외교가 할 수 없는, 훨씬 더 세밀한 시민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함께 ‘슈퍼 파워’로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대해서도 생산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포럼의 행사장에서는 ‘일대일로 정책이 자칫 새로운 패권주의로 흐르거나 범죄, 유착 등 새로운 문제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와 ‘고대 실크로드가 동서양 문물 교류와 경제발전의 첨병 역할을 한 것처럼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역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포럼 참석자들은 두 주장 모두에 귀 기울이며 세계 시민으로서 평화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계시민기구 WCO는 1988 서울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하여 곽영훈 회장이 1987년 창설한 민간단체로 WCO가 매년 공동주최하는 실크로드 메이어스 포럼은 제1회가 타쉬켄트, 우즈베키스탄(2006), 제2회가 란주, 중국(2007), 제3회가 알마티, 카자흐스탄(2008), 제4회가 평택, 대한민국(2009), 제5회가 쉬라즈, 이란(2010), 제6회가 그로지니, 체첸공화국, 러시아(2011), 제7회가 가지안텝, 터키(2012), 제8회가 여수, 대한민국 (2013), 제9회가 우루무치, 신장성, 중국(2014), 제10회가 부루사, 터키(2015), 제11회가 카즈빈, 이란(2016), 제12회가 카불, 아프가니스탄(2017년)에서 열렸었고 올해는 안탈리아, 터키, 그리고 2019에는 이슬라마바드, 파키스탄에서 열린다. 포럼은 보통 30~40개국, 50~80개 도시 시장단, 장관, 정부관료, UN 등 국제기구 관계자, 경제인단, 대학교수, 시민단체, 대학생, 그리고 WCO 멤버 등 150~300여명이 참여하여 ‘Harmony of Civilization' 'Global Citizenship' 'Economy and Tourism'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WCO는 이번 안탈리아 포럼을 계기로 34개국 70개 도시에서 온 170여명의 민간 외교관들이 사흘간 ‘세계 평화’라는 가치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누군가는 몽상가들만이 고민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는 주제다. 1987년 시작하여 1988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고 냉전 시대를 종식시킨 WCO 세계시민기구가 옛 실크로드를 연결시키는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지난 13년 동안 이어온 이 WCO Silk Road Mayors Forum의 원대한 걸음이 내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그리고 내후년에는 아프리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는 물론 그 이후 계속해서 어떤 발자취를 만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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