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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작은 역사 '텔레비전의 즐거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18.11.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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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현대인들은 텔레비전 없이 살 수 있을까? 혹은 텔레비전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시간을 거치며 텔레비전이라는 인공물이 자의든 타의든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아서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이미지와 메시지는 오래전 모닥불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하나의 공간으로 모아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이야깃거리에 기대 조금은 덜 부담스럽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텔레비전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현대인에게 차지하는 비중만큼 텔레비전에 관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문화의 상상 속에서(과학소설의 한 소재로) 처음 등장했던 ‘텔레비전’이라는 환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실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텔레비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정의되었는지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문화 비평가 크리스 호록스는 이 책 《텔레비전의 즐거움》에서 그 아쉬움을 달래며 텔레비전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그는 텔레비전을 크게 두 개념으로 정의해 접근하는데, 하나는 가전제품과 같은 ‘물질적 대상’으로서 텔레비전이고, 다른 하나는 ‘환상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미디어 매체로서 텔레비전이다. 지은이는 먼저 텔레비전의 뿌리를 19세기 심령론과 제국주의, 빅토리아 시대 자기장 실험에서 찾는다. 그리고 영국의 존 로지 베어드, 미국의 필로 테일러 판즈워스와 찰스 프랜시스 젱킨스, 러시아의 보리스 로싱과 블라디미르 즈보리킨, 독일의 파울 닙코와 아우구스트 카롤루스, 프랑스의 르네 바르텔르미, 헝가리의 데네쉬 미하이, 일본의 다카야나기 겐지로 같은 신화적인 발명가들이 먼 미래의 가능성쯤으로 인식되었던 ‘텔레비전’을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 인공물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풀어낸다. 크리스 호록스는 발명가들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빛과 자기, 전기의 작용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발견을 통해 일생일대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후 텔레비전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기술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리고 그 시기를 거치는 동안 텔레비전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권력에 의해 활용되었고, 기업의 주도로 대량생산되면서 특별한 지위를 상징하는 사치품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으로 변모했다.

또한 이 책에서 지은이는 195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간 텔레비전이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 사이에서 어떠한 가교 역할을 했는지, 리모컨의 발명과 텔레비전 캐비닛의 등장 같은 또 하나의 ‘혁명’이 기업의 전략과 소비자들의 선택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들여다본다. 아울러 우주선을 타고 은하계를 탐험하는 듯한 초미래적 텔레비전 디자인의 등장과 소형화, 컬러화, 평면화 같은 기술적 발전의 역사를 돌아보며 각 시대별로 사회가 요구했던 텔레비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도 알아본다.

이 책은 텔레비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20세기 대중문화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비디오드롬>(1983)에 언급되는 텔레비전처럼 생각을 통제하고 시청자를 감시하며 몸과 마음에 해를 끼치는 사악한 사물로 텔레비전을 그렸다. 크리스 호록스는 텔레비전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한동안 ‘바보상자’라 불렸던 텔레비전이 인간의 상상력과 문학적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한다. 한편으로 텔레비전을 기업의 상업적 도구로 인식해 불신하는 경향이 늘면서 이런 주제가 미술관에서 텔레비전 수상기로 작업하는 볼프 포스텔이나 백남준 같은 예술가들의 급진적 작품으로 표현되었는데, 지은이는 이러한 비디오아트의 발전 과정 또한 자세하게 들려준다.

책 후반부에서 지은이는 브라운관이 퇴출되고 평면과 곡면스크린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사물로서 텔레비전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상을 언급한다. 그리고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소멸해가는 텔레비전과 소멸되어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텔레비전의 분투를 다루면서 텔레비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크리스 호록스는 “수많은 시기를 거치며 텔레비전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동시에 욕망하는 대상, 무시하는 동시에 환영하는 대상, 쳐다보는 동시에 그 너머를 보는 대상이었다”고 말하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텔레비전의 가치와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책은 너무도 가까이 있는 사물이면서 수수께끼 같은 사물이기도 한 텔레비전에 관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역사책이자 비평서라 할 수 있다.

김민수 기자  dikigirl200@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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