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마음은 ‘나’를 믿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꿈과 현실이 혼동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회가 외치는 정의는 무엇이고 그 정의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숱하게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처럼 혼돈의 시대에서 지칠 대로 지쳐 정체성마저 헷갈려하는 많은 사람을 향해 초린무녀 김보경 무속인은 ‘나’를 강조하고 ‘나’를 올바로 세울 것을 강조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것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라 전하는 김보경 무속인을 통해 각박한 경제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현명한 삶의 방법을 배워보도록 하자.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힘겨웠던 신의 계시

▲ 초린무녀 김보경

초린무녀 김보경 무속인은 삼남매 중 맏이로서 남들 못지않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서 딱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면, 충분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위에 눌리고 헛소리를 하는 등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어린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그의 부모는 병원을 찾게 되었고, 몇 가지 검사를 통해 ‘심리적 원인에 의한 정신 증상이나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라는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신경과민 및 노이로제라는 신경증 진단을 받게 되었다. 생명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큰 병은 없었지만, 초등학생 시절 내내 두통에 시달리며 심드렁한 상태는 지속됐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 “방안에서 TV를 시청하던 중에 갑자기 내 몸에서 무엇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더니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후 난 다시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일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믿지 않았고 심지어는 부정하려고까지 했다”라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또 다시 병원을 다니게 되었던 그 당시의 일을 전했다.
가톨릭교 신자였던 그의 부모는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병과 연결시켜 “우리아이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약으로써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 굳게 믿은 것이다. “산삼, 인삼, 영지, 정신과 치료, 양약 치료, 침 치료…. 이밖에도 기타 등등의 치료요법은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전혀 통하지 않았다”라며 이어서 “백약이 무효였다”고 덧붙여 전했다.

 

악몽 같았던 결혼 생활, 이혼 후 달라진 그
그는 결혼 이후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새 삶을 시작했다. 신혼 초 공무원이었던 그의 남편은 근본이 좋은 남자였지만 너무나도 심했던 주벽 때문에 기존의 자상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변해버린 남편의 모습 때문에 그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술로 인해 삶의 의지조차도 사라져버린 남편을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종교 활동에 집중하던 중, 30대 초반쯤 해서 어린 시절 종종 자신의 꿈에 나타났던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또 다시 꿈에 나타났다. 꿈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고 다시 찾아 온 할머니는 부처님상과 방울부채를 쥐어주며 “네가 가야할 길을 가라”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전언을 무시한 채 그는 더욱더 열심히 종교 활동에 매진했다.

▲ 어려움이 있고, 걱정이 있는 분들에게 따뜻한 손길과 말 한마디에 힘을 실어주면서 도움을 주고 있는 초린 무녀 김보경.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고 급기야는 공직의 길을 그만두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사업으로 길을 전향했으나 창업 후 얼마 되지 않아 빚더미에 앉으면서 술에 더욱 의지하게 된 남편은 감정 조절이 불가능해지고 심지어는 의처증까지 생겨났다. 엉망진창이 돼버린 집안 환경으로 인해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두려웠던 그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아무런 미련 없이 빈 몸으로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남편과의 이혼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을 때쯤, 마을 어귀에 접어들 때면 언제나 돌아가신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이고, 이상한 옷을 입고서 방울부채와 불경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이 보이는 꿈을 꾸곤 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처럼 내 꿈에 나오던 할머니는 이후로도 계속 내 꿈에 나타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힘든 영혼을 도와주고 나를 돕고 내 가족을 돕고 세상을 도우라고….”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린 시절부터 겪어왔던 이상한 현상들과 꿈들이 하늘이 준 암시였던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44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 매일이 특별하고 모두가 소중하기 그지없어
2009년 어느 날 아침, 젊은 여인 한 명이 초린무녀를 방문했다. 미리 예약해 둔 점집이 있었지만 장소를 찾지 못하고 헤매던 중에 눈에 보이는 대로 무작정 들어간 곳이 바로 초린무녀 법당이었던 것이다. 곧이어 그녀는 취직과 관련해 큰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유난히 끈기가 부족했고 조금은 특별했던 사주를 가졌었다”던 그녀에게 성공적인 취업을 기원하는 취직부(적)를 건네며 “일반적인 사주가 아니니 조상을 잘 모셔야 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그녀는 무녀의 말을 깊이 새겨듣고 전해들은 말 그대로를 실천하며 전과 다른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취업난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녀는 이후로도 그의 법당을 꾸준하게 찾아와 많은 대화를 시도했고 신을 대하는 태도도 나날이 좋아졌다.
“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여유로워졌다. 또 하루가 다르게 얼굴빛도 좋아져 주변인들에게 비결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그녀는 본래부터 거짓이 없었던 사람이었던지라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했고, 어떤 대화에서든지 마지막 말끝에는 언제나 신의 공이 컸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라며 겸손하면서도 노력이 매우 대단했던 여인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서 “인간의 힘만으로 절대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라며 신 앞에서는 항상 공손함을 잃지 말고 오만하지 말아야하며 의심 없이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행동 할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때때로 오르막길을 오르며 기쁨을 만끽하고, 때로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위해 살겠느냐”라는 한탄도 해보며 한 평생을 보낸다. 이런 우리를 위해 김보경 무녀는 생에서의 삶이 보람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기도로 윤택한 삶을 찾아주는 무녀의 도리를 다해 무녀다운 무녀가 되겠다고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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