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한방병원의 위상강화 이끈 중풍 치료의 권위자

그의 이력을 보니, 진정한 외길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1969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 입학한 이래 지금까지 경희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생에서 교수로, 신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동 대학 석사를 마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로 복무하다 대위로 제대, 이후 박사과정을 마치고 1986년부터 지금까지 경희대학교에서 교수로서 한의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더 연구하고 싶은 것일까.

▲ 평생 한의학을 연구하고 환자를 진료해 국내 중풍치료의 권위자로 우뚝 선 김성수 교수. 하지만 아직까지 중풍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 더 마음 아프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그래서 그는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중풍, 조기발견하면 90% 완치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김성수 교수는 뼛속까지 한의사인 사람이다. 40년도 넘게 묵묵히 한의학을 공부해 중풍치료 분야의 권위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배움과 연구에 목마르다고 한다. 중풍을 완전히 정복하는 그날까지 자신의 연구는 계속될 것이라는 김성수 교수. 이것이 한의사로서 남은 자신의 소명이라고 밝혔다.
그는 “출혈과 경색으로 나타나는 중풍치료는 3시간 이내에 의료시설에 도착하면 90%를 회복시킨다. 그만큼 조기치료가 중요한 것이 바로 중풍이다. 중풍 환자 중 10%는 정상회복, 20%는 사망, 70%는 후유장애로 남는다. 장기간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그 70%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라며 “현재 중풍의 완치는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족의 관심과 보살핌이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성수 교수가 중풍의 권위자이기는 하지만 아직 치료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특히 조기에 발견하고도 적절한 치료없이 무관심으로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고 한다.

경희대 한방병원의 진일보에 앞장서

 

김성수 교수는 지난 2005년 1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장을 역임하면서 병원의 위상강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전국 12개 대학병원 중 가장 선도적인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지속적으로 환자들에게 사랑받는 병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중풍센터를 비롯해 척추관절센터, 자연요법센터, 안면마비센터, 한방 암 클리닉 등 특화센터에 최신의료기법과 기기들이 생겨 한방 의료서비스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며, 수많은 의료진들이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화에 앞장서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의료진들의 힘이 모여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며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그는 “100세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하는 것이다. 우리 병원은 국민들의 건강한 노후를 위해, 그리고 행복한 내일을 위해 늘 곁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아픈 사람을 진료하는 것은 병원의 당연한 책무이고, 그들이 건강을 잃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학생들에게 “환자 앞에 늘 떳떳한 한의사가 되라”고 가르치는 김성수 교수. 그래서 자신도 늘 환자 한 명 한 명에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그의 진심이 오롯이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의 가치로 매겨지고 있다.

 

봉사하는 삶은 가문의 내력
평생 한의학을 연구하고 환자를 진료해 국내 중풍치료의 권위자로 우뚝 선 김성수 교수. 하지만 아직까지 중풍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 그의 진심이다. 그래서 그는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이러한 김 교수의 마음은 가문의 내력도 큰 몫을 차지했다.
조부(김수현)는 부여에 용당중학교 건립에 참여, 지역교육에 일익을 담당했고, 부친(김영위)은 교육자로서 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여지회장으로 삶 자체가 남을 위한 봉사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김성수 교수는 봉사가 이미 몸에 배어 있었고, 남을 돌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는 “나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보고 자란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라며 “나는 정년 후에 요양병원을 건립해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싶다. 지금은 간혹 요양병원의 병폐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발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조금만 조직개선을 한다면 좋은 요양병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평생 한 길을 걸어온 그가 끝까지 그 길을 고집한다. 그는 천생 한의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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