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은 전통예술과 현대미술의 만남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은 예로부터 많은 예술인이 나온 지역이기도 하다. 예술의 고장이라고 불리고 있는 통영은 한 시대를 풍미한 많은 예술인이 동 시대에 작품 활동을 펼친 곳이다. ‘행복’을 노래한 청마 유치환, 대작 ‘토지’를 남긴 박경리,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전혁림 등은 통영의 바다를 앞에 두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와 더불어 통영은 나전칠기의 본고장이다. 이에 제4회 한국나전칠기 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과 은상을 수상한 김규수 선생과 통영옻칠회의 옥현숙 회장을 만나보았다.

▲ 제4회 한국나전칠기 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김규수 선생.

한국의 위대한 문화유산, 나전칠기
한국의 목칠공예 가운데 가장 이채롭게 발달한 것은 나전칠기(螺鈿漆器)다. 고대 한국의 칠공예품으로서 가장 뚜렷한 예는 경주 호우총(壺塚)에서 출토된 목심칠가면(木心漆假面), 또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출토된 목심과 협저로 된 채화칠이배(彩畵漆耳杯) 등 일련의 칠공예품은 모두 삼국시대 칠공예의 양상을 전해주는 유물들이다. 이들 삼국시대 칠공예품이 보여준 기법은 그 기명제식(器皿制式)과 더불어 중국 한(漢)·육조시대(六朝時代)양식의 짙은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나전칠기의 본산인 한국 나전칠기 공예는 중국의 조칠 기법의 척홍칠기로, 일본에서는 칠회기볍의 시회칠기로, 한국에서는 자개를 상감하는 나전칠기로 각기 그 특색을 보아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전칠기의 나(螺)자는 바다조개의‘소라’(진주)라는 뜻이며 전(鈿)자는 보배롭게 ‘꾸미다’는 뜻이고 칠(漆)자는 ‘옻칠하다’라는 뜻이며 기(器)자는 소중함을 담는 ‘기물’이라는 뜻을 말합니다. 때문에 나전칠기는 잘 건조되고 고운목재(고사목)를 이용하여 물건의 모양을 제작한 뒤(일명 백골이라고도 함)여기에 헝겊과 여러 가지 재료를 첨가한 뒤 옻칠 혹은 카슈칠을 한 뒤에 전복, 소라, 진주, 조개들의 자개를 갈고 세공하여 수놓은 제품을 통틀어서 나전칠기라 합니다.”
통영의 나전칠기 제품이 일반적으로 보편화된 시기는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통영에 12공방을 두면서 일반 서민들도 나전칠기 제품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남해안의 맑은 물에서 생산되는 전복껍질로 그 색깔이 오색영롱하여 검은 칠 바탕에 아주 잘 어우러져 고급가구를 많이 생산하게 되었다.
인간문화재 송방웅 선생의 부친 송주안 선생이 설립한 ‘공예협동조합’의 창립멤버였던 김종남 선생의 손자인 김규수 선생. 그 역시 나전칠기의 피가 흐르고 있어 여러 가지 일을 하다 결국 나전칠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실생활에 쓰이는 생활용품을 만드는 걸 좋아한 탓에 커피잔, 반상기, 수저 등을 만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제품이 완성되기까지는 3~6개월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나전칠기에 사용되고 있는 옻칠은 칠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며, 그 수명 또한 영구불변의 것입니다. 옻칠은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살균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인체에는 전혀 무해합니다. 또 방습성, 살충성, 전열성 또한 뛰어납니다. 옻칠을 한 나무잔에 뜨거운 커피를 부으면 뜨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전열성이 좋습니다.”

▲ 반상기, 주전자, 수저 등 생활용품 만드는 걸 좋아하는 김규수 선생 작품.

팔만대장경을 보호한 천년의 칠인 옻칠과 현대미술의 만남
한국 옻칠의 역사는 유구하다. 청동기시대의 옻칠 유물도 출토된 바 있으며 고구려나 낙랑, 백제 고분, 경주의 천마총 등에서 출토된 옻칠 제품은 수천 년을 견디고도 그 빛이 변함이 없다. 도료로 쓰이는 옻나무의 수액을 옻칠이라고 하는데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 중 상하 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을 하며 400년 넘게 이어져 온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이는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계승되고 있어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 제4회 한국나전칠기 기능경진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옥현숙 회장.

오랫동안 회화를 했던 옥현숙 회장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풍경화나 정물, 그리고 민속과 관련된 그림을 그려 왔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2007년 통영의 옻칠미술관이 개관을 하고 아카데미 강좌를 개강했는데 그 때 옻칠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다. “아카데미 강좌에서 3년 동안 옻칠에 관해 배웠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김규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옻칠이라고 하면 사죽을 못쓴다는 공통점으로 만난 그들은 아카데미 강좌 수료 후 공방을 열고 아마추어지만 옻칠의 전통보존과 더불어 계승을 하고 있다. 옻칠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옻칠에 회화를 접목시켜 캔버스가 아닌 목판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캔버스가 아닌 목판에 옻칠을 하고 그림을 그려 넣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면 마치 생명을 불어넣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비록 목판이 생명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만든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희열, 그리고 삶의 활력을 찾는다면 그것이 곧 살아있는 생명체와 다를 게 머가 있겠습니까(웃음). 그래서 매 작품에 임할 때면 항상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옻이 진귀한 칠이었습니다. 때문에 특별한 곳에만 썼습니다. 그렇게 귀한 칠이다 보니 옻칠 제품은 고가입니다. 그 이유는 보존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대장경을 보관하는 경함을 옻칠을 했는데 몽고 침입 시절 대장경을 옻칠한 경함에 넣어서 땅속에 숨겼어도 썩지 않고 보존됐다고 합니다.”
옻칠 작업을 하면서 옻이 올라 팔, 다리에 껍질이 일어나고 가려운 건 기본이고 눈이 퉁퉁 부어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하루 중 대부분을 작업실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작품을 만들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옥현숙 회장. 통영이 나전칠기의 본고장이지만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나전칠기의 붐이 일고 있어 나전칠기의 본고장인 통영이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거 같아 안타깝다는 그는 “통영이 나전칠기공예의 본고장으로 자리잡은 만큼 앞으로 옻칠공예의 활성화를 위해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옻칠공예는 동특한 우리만의 가지고 있는 전통이자 문화입니다. 앞으로 문화의 시대인 21세기에는 국간간 문화상품 경쟁이 ‘품격(品格)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도 ‘숨겨진 전통문화’를 잘 발굴해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 글로벌 시대에 대비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진갑을 넘긴 나이에도 마음은 언제나 열정으로 향후 공방에서 나전칠기 교육을 통해 후배 양성과 더불어 통영의 나전칠기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김규수 선생과 옥현숙 회장. 그들의 바람처럼 비록 아마추어지만 통영의 나전칠기를 널리 보급해 우리 고유의 전통 보존과 더불어 계승을 할 수 있도록 기대해본다.
 

 

▲ 오랫동안 회화를 한 옥현숙 회장은 화려한 색상으로 나전칠기에 옻칠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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