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포해진 노인범죄 ‘그들은 왜 괴물이 되었나’

지난 2010년 우리는 국보 제1호가 눈앞에서 불타는 안타까운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은 70대 노인으로 토지수용보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 앙심을 품고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나이가 지긋해 ‘뜻대로 행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고희(古稀)를 넘긴 노인들이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전체 범죄 가운데 61세 이상 노인이 저지른 범죄 비율은 2.7%인데 비해 2012년에는 7.4%로 크게 늘었다. 이는 10년 만에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노인범죄율이 높아진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강도와 강간, 살인 등 강력범죄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데 있다. 또한 노인범죄가 고령화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단순히 고령화로 인한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과 범죄 유형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일본의 경우 노인범죄의 60% 이상이 절도 등 생계형 범죄인 반면 한국(2011년 기준)은 폭력(32.5%), 사기(20.9%), 절도(10.5%)가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더욱이 10년 사이 강도와 강간은 4배, 방화 2.7배 살인은 2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 5월28일 자칫 ‘제2의 대구 지하철 참사’가 될 뻔 한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10시50분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 지하철 3호선 매봉역을 출발한 전동차가 도곡역으로 이동하던 순간, 전동차 네 번 째 칸에 타고 있던 조 모 씨(73)가 자신의 가방에서 인화성 물질을 꺼내 불을 붙였다.
조 씨는 이날 등산용 가방 두 개에 시너 11병(11리터)와 부탄가스 4개, 흉기 1개를 준비해 지하철에 올랐으며 시너병 5개의 뚜껑을 열어 발로 넘어뜨린 후 불을 붙인 것으로 밝혀졌다.
불길이 삽시간에 붙었고 마침 전동차에 타고 있던 역무원이 “불이야”라는 승객들의 소리를 듣고 소화기를 꺼내 불을 끄기 시작했다. 전동차에는 승객 370여 명이 타고 있었지만 승객 한 명이 대피 중 발목을 다쳤을 뿐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범행을 저지른 조 씨는 전남 광주시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해 왔으며 범행 6일 전인 22일 지하철 3호선 삼송역에서 사전 답사를 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 결과 조 씨는 15년 전 자신이 운영하던 업소에 정화조가 넘쳐 피해를 입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보상금액이 자신의 생각보다 적다는 이유로 불만을 갖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조 씨는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을 고민하다 최근 발생한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를 보고 지하철에서 불을 내면 언론에 알려질 것으로 생각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새벽 0시께 전남 자성군 삼계면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 별관 2층에서도 불이나 치매노인 환자 등 21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화재는 6분 만에 초기진화에 성공했지만 병원의 유리창이 좁고 쇠창살이 박아져 있는데다 환자들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해 질식사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발생했다. 또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대부분이 치매 등 노인성질환자로 요양병원의 취약성이 작용해 피해가 컸다.
경찰은 CCTV를 통해 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 김 모 씨(81)가 다용도실에 들어갔다 나온 뒤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화재현장에서 라이터 잔해물이 발견된 점 등을 토대로 28일 김 씨를 체포했다.
70대 노인의 빗나간 성욕이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 바닷가에서 어부 오 모 씨(71)가 20대 남녀 두 명을 살해했다. 남녀를 배에 태우고 바다에 나간 오 씨는 여성을 성추행하기 위해 남성을 먼저 바다로 밀어 숨지게 하고 저항하는 여성도 바다로 밀어 숨지게 했다.
그는 한 달 뒤에도 같은 방법으로 20대 여대생 두 명을 살해했다. 여성들로부터 “배에 태워달라”는 부탁을 받은 오 씨는 이들을 태우고 인근 바다에서 어로작업을 마치고 귀항하던 중 한 여성을 성추행했다. 오 씨는 반항하는 여성들과 뒤엉켜 싸우다 결국 함께 바다에 빠졌고 이후 배에 올라타 뒤따라 올라오던 여성을 어구를 이용해 바다에 밀어 넣었다. 조류에 휩쓸린 여성도 방치한 채 달아났다. 결국 두 여성 모두 보성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피해 여성들이 휴대전화로 가족들에게 ‘배에 갇힌 것 같다. 경찰을 보내 달라’는 긴급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을 확인하고 수사를 벌였다. 체포된 오 씨는 결국 2010년 사형이 확정됐다.
이와 같이 사회적 약자로 주로 범죄의 피해자가 됐던 노인들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노인범죄는 터졌다 하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노인범죄의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보다 30년 앞선 1970년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지난 1989년부터 2005년까지 16년 사이 고령자의 수는 2배 증가했지만 노인범죄는 5배가량 증가했다.
‘폭주노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문제가 커지자 일본 정부는 2008년 고령범죄자의 실태와 처우에 대해 분석했고, 노인의 빈곤과 소외를 범죄의 원인으로 파악했다.
노인범죄를 소재로 다룬 ‘폭주노인’이라는 소설이 출간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노인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정보화 사회와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노인들이 소외되고 고립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에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겉도는 노인들의 고독과 빈곤이 폭력성으로 표출된다는 것. 이는 전문가들의 진단과 맥을 같이한다.
전문가들은 노인범죄의 원인을 경제적 빈곤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한국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7.2%로 OECD 국가 중 1위이며 평균치인 12.8%보다 3배 이상 높다. 노인 상대빈곤율이란 66세 이상 인구 중 가구 가처분소득이 전체 가구 가처분 소득 중위값(50%) 미만인 가구를 말한다. 한국 노인들의 상대빈곤율이 더 높다는 것은 한국 고령층의 소득분포가 매우 불균등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런 이유 등으로 노인들의 삶의 만족도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하락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기준 60대 이상의 삶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89로 전 연령층 평균인 3.14에 못 미쳤다. 노인들의 상대적, 절대적 빈곤이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지고 가족과의 단절, 소외감 등이 쌓여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범죄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노인범죄 전담기관이나 노인을 위한 멘토링 서비스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노인을 잉여세대로 여기는 의식을 전환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노인들의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고독과 외로움 등 심리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취업과 생활환경 개선, 레크리에이션 등 사회활동 및 여가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완벽한 노후보장제도에도 불구하고 노인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노인문제 해결을 단순히 경제적 관점뿐 아니라 종합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노인이 저지른 범죄가 증가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2008년 이후 발생한 노인대상 범죄는 총 54만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자료 ‘노인대상 범죄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0만 9,670건 이었던 노인대상 범죄(60세 초과 노인대상)는 2009년 12만 1,615건으로 증가했다. 이후 2011년 7만 6,624건으로 감소추세를 보였다가 지난해 12만 6,482건을 기록해 지난 5년 새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특히 노인대상 범죄유형은 노인층의 상대적 약점을 파고 든 범죄가 가장 많았다. 새로운 지식이나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지능범죄는 지난 5년간 10만 7,519건이 발생해 노인대상 범죄 중 가장 높은 비중(19.9%)을 차지했다.
그 예로 지난 6월2일 수도권 일대를 돌며 공짜 관광과 점심을 미끼로 노인 1만 6,000명에게 건강기능식품을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판매한 일당 60여 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이들은 2012년 초부터 최근까지 수도권 일대 노인정이나 지하철 역 등을 돌며 노인들에게 홍삼, 녹용, 키토산, 프로폴리스 등 건강기능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매입가의 3~12배를 받아 챙겼다.
이들은 무료 관광이나 점심을 준다며 노인들에게 접근한 뒤 인솔책에게 인계, 인솔책이 파주 임진각 등 관광지를 간다며 노인들을 관광버스에 태워 6개 판매업체 홍보관으로 데려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했다. 매입가 5만 원대의 홍삼을 72만 원에 판매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노인들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가의 건강기능식품을 샀고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자식들이 걱정할 것을 우려해 신고도 못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노인들에게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을 이용해 고수익을 내주겠다고 속인 뒤 돈을 가로챈 일당도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서경찰서 악성사기범검거전담팀은 통신기기 판매업자를 비롯한 22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노인들에게 “휴대전화 개통 시 통신3사에서 받는 보조금을 투자해 고수익으로 돌려주겠다”고 속여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2,940명에게서 투자금 명목으로 500여억 원을 가로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등 전국 각지에 지점 14곳을 차린 뒤 60~70대 노인들을 상대로 투자설명회를 열어 휴대전화 보조금 수익으로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속여 투자를 유도했다. 또한 현금이 없는 노인들에게 신용카드로 결제를 받거나 소위 ‘카드깡’을 통해 100만 원에서 1억 원까지 투자받은 뒤 휴대전화를 개통해주지도 않고 빼돌렸다.
노인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가운데 노인층의 약점을 노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대부분 실버산업 육성 등 경제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노인을 범죄의 피해자나 가해자로 내모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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