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41만 원…조합원의 표적탄압과 생계압박을 해온 삼성의 ‘시스템경영’

지난 5월17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이 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고 최종범 씨에 이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산양산센터 분회장인 염모 씨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의 자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AS기사들의 잇단 자살 소식이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의 ‘시스템경영’이 어떻게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공개된 염 분회장의 유서에는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해 이곳에 뿌려달라”면서 “마지막으로 저희 조합원의 아버지가 병원에 계신다. 협상이 완료되면 꼭 병원비 마련 부탁드립니다”고 호소했다.
지회에 바치는 A4용지 1장의 유서는 염 씨의 차량에서 부모님께 바치는 유서 등과 함께 발견됐다고 지회는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월셋집에서 살면서도 꿈을 갖고 있는 젊은 노동자였던 염호석 분회장의 삶은 삼성의 ‘시스템경영’이 어떻게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며 “삼성은 위장폐업 철회, 생활임금 보장, 노조 탄압 중단, 노동조합 인정하고 열사 앞에 직접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지회는 “지난해 지회 설립 이후 세 번째 죽음으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다시 일어났다”며 “염 분회장의 지난 3월 월급은 70여만 원, 4월 월급은 41만 원이었다. 조합원 표적탄압과 생계압박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삼성 자본의 악랄한 노조 탄압과 경총의 기만적인 교섭 술책이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왔다”면서 “만약 그들이 상식적으로만 대했다면 노동자들을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상환 금속노조 경남지부 미조직비정규직부장은 “지난 3월과 4월 기간에 파업도 있었지만 실제 일이 그만큼 적었다”며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경우 월급제나 시급제가 아닌 건당수수료 체계로 일감이 줄어들어 저임금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 같은 삼성 사태에 오로지 실적 건수로만 임금이 책정되는 ‘건당 수수료제’ 등 열악한 임금체계와 노조탄압이 연이은 죽음을 부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은 현안논평에서 “삼성은 노동자들을 ‘또 하나의 가족’은커녕 최소한 ‘인간’으로도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전면 파업이 돌입된 가운데 지난 5월20일 염 분회장의 시신을 화장한 경남 밀양시 밀양공설화장장에서 경찰과 지회 조합원들이 충돌했다.
이번 충돌은 염 분회장의 유족측이 부산에서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고, 노조측이 만류하자 경찰을 부르면서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홍명교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육부장은 뉴시스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경찰이 염 분회장의 시신 탈취를 시도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일부가 경찰에 연행됐다”고 주장했다.
류장현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교선부장은 뉴시스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오후 2시께 염 분회장의 부친이 현장에 오자마자 300여 명의 경찰이 조합원들을 밀쳐내고 진압했다”며 “현재 염 분회장의 유골함이 어디로 이동 중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류 부장은 “애초 염 분회장의 시신이 부산의 한 병원에 안치된 것으로 알고 부산의 장례식장을 모두 알아봤지만 염 분회장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그런데 밀양과 부산의 화장터에서 염 분회장의 시신이 같은 시간대 화장 예약이 잡혔던 것으로 나타나 확인해 보니 밀양에서 화장하는 것을 알고 모였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최루액을 분사하는 등 조합원 100여 명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했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 등 25명이 연행되는 등 경찰과 노조의 격렬한 갈등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염 분회장의 시신이 오전 10시10분께 화장장에 도착했다”면서 “오전 11시57분께 장의담당자로부터 ‘화장한 유골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순찰차 2대가 현장에 출동했고 추가 경력 3개 중대 200여 명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을지로위는 “이번 사태의 진상조사를 당에 요청하겠다”며 “노동기본권의 준수실태부터 이번 염호석님의 죽음이 발생하게 된 원인의 진상을 조사하고 나아가 이번 죽음 이후 나타난 공권력 행사의 과정 전반을 근본부터 조사해 책임 있는 자들의 책임을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5월20일 고 염호석 분회장이 시신을 둘러싼 폭력사태를 강력 비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도 논평에서 “고 염호석씨의 시신을 강제 탈취했던 경찰이 오늘 고인의 지인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몰래 시신을 화장했다”며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절규한 고인의 어머니에게 경찰은 최루액을 뿌리며 폭력을 휘둘러 유골함을 빼돌렸다”고 정황을 소개했다.
이 대변인은 “생모마저 폭력으로 짓밟고 일사천리로 공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오늘 이 반인륜적 만행에 대해 정부와 삼성이 명백히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지탄과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고 염호석 님의 죽음 이후 발생한 경찰의 시신 빼내기를 위한 공권력 투입 사태는 우리사회의 인권보장의 수준을 의심케 할 경악스러운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5월18일 성명을 통해 염 분회장의 사망 사건이 삼성과 경총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전면 파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국 55곳 분회 조합원 1,600여 명 중 쟁의권을 확보한 41곳 분회 1,100여 명이 무기한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조합원들은 삼성전자서비스(주)의 협력업체 소속직원들로 염 분회장이 소속된 양산분회와 서부산, 광안, 동래 등 부산지역 분회는 지난 5월9일부터, 경남 통영과 김해, 진주분회는 지난 5월7일부터 사측에 성실교섭을 촉구하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건당 수수료 폐지 ▲월급제 전환 ▲체불임금 지급 ▲근로조건 개선 ▲노조활동 보장 등을 촉구하며 사측으로부터 위임받은 경총과 집중교섭을 진행했지만 지난달 말부터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고 염호석 양산해피서비스분회장의 자살 사건과 관련 “단체교섭과 무관한 사건”이라며 “전면 파업은 명분 없는 투쟁”이라고 밝혔다.
경총은 이날 발표한 입장 자료를 통해 “경총은 그동안 조속한 단체교섭 타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며 “금속노조는 자신들의 무리한 요구사항 관철을 위해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금속노조는 유가족들이 고인의 장례를 가족장을 결정하고 시신을 부산으로 옮기고자 했음에도 노조는 이를 무시하고 조합원 60여 명을 동원해 운구차량 진입을 저지하는 등 정치적 명분으로 활용하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총은 “노조가 염 분회장 사망 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투쟁국면을 지속할 경우 교섭타결 시점은 지연될 수밖에 없고 노사갈등이 장기화되어 결국 직원들에게까지 막대한 피해가 초래될 것”이라며 “노조는 명분 없는 투쟁을 즉각 중단하고, 성실히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총은 “노조는 사측이 언급한 바 없는 폐업, 임금관련 사측안 미제출을 이유로 노조가 교섭결렬과 잠정합의 무효를 선언했다”며 “이는 투쟁을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가 교섭결렬 선언 이후 경총을 교섭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삼성전자서비스, 각 협력사 대표이사와의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모습은 교섭분위기를 저해하는 것”이라며 “또 집회, 노숙농성 등을 반복하면서 인근 주민과 시민들에게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해 7월 설립된 단체로 현재 전국 46개사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조가 가입했다. 노사는 지난해 9월 첫 교섭을 시작했으나 교섭 초기 교섭방식을 놓고 양측이 공전을 거듭해오다 지난해 12월 금속노조 집행부와 서비스지회 교섭대표간 ‘4~5개 권역별’ 교섭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가 됐다. 하지만 금속노조 내부에서 교섭방식에 대한 입장차가 발생, 결국 서울, 경기 등 7개 권역에서만 권역별 교섭을 진행했다. 서울·인천·경기·충청 등에 있는 17개사의 참여로 노조 요구안 기준 126개(전문포함) 쟁점 중 73개 사항에 대해 잠정합의가 된 상태다.
한편, 삼성 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조합원 700명은 지난 5월27일 조계사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최종범과 지난 17일 염호석 노동자가 삼성전자 서비스의 노동조합 인정과 임금체계 개선 등을 요구하며 목숨까지 끊었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며 지난 17일 이후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두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삼성전자 책임인정, 삼성전자의 노동자 사용자성 인정과 임금체계 개편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더는 노동자가 목숨을 끊는 일을 막아 달라며 종교계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23일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사태 해결을 위해 공개적으로 논의하자는 을지로위원회의 제안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이인용 사장이 직접 논의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의원들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논의를 비공개가 아닌, 공개논의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이인용 사장은 즉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제안한 내용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고 전했다. 그는 또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삼성측도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자는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삼성전자측은 “이인용 사장은 의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뒤 잘 알겠으며, 삼성전자가 협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만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에 의원들의 뜻을 잘 전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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