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247=신혜영 기자) 1997년 11월21일 한국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997년 1월 한보그룹 부도를 시작으로 삼미, 쌍방울, 해태, 기아자동차 등 쟁쟁한 기업들이 부도가 나자 금융위기가 닥쳤다. 당시 한국이 금융 위기에 몰리자 국제 금융기관들은 한국을 투자 위험국으로 지목하고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 치우기 시작해 10월말 주가는 400선으로 추락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1월말 가용 외환 보유고는 72억 6,000만 달러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졌다. 환율은 1,900원대까지 치솟고 기업은 연쇄 부도를 일으켰다.

경제상황이 극에 달하자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새로 취임한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이날 밤 10시 “한국정부는 IMF 구제금융 지원을 신청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IMF로부터 210억 달러 규모의 대기성차관협정을 체결하고, 세계은행과는 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과는 40억 달러의 지원협정을 체결했다. 정부는 이러한 국제금융기구의 도움만으로 외환위기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일본과 미국에 요청, 총 233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정부는 총 583억 달러 지원을 약속받음으로써 국제적 신인을 회복하고 외환위기를 일단 수습하게 되었다.

IMF 사태는 대규모 실업 등 총체적인 국가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정부는 IMF와 거시경제정책, 금융, 기업, 공공부문 등의 구조조정,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강도 높게 추진했으며 국민들은 돌반지와 결혼반지까지 내놓으며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빨리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비정규직의 증가하고 실업률이 상승하는 등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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