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247호=신헤영 기자) 1989년 11월 9일, 동서냉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당시 동독의 동베를린 지역 책임자 귄터 샤보브스키는 “동독시민은 외국으로 여행해도 좋고 여권은 즉시 발급될 것”이라며 베를린 장벽을 비롯해 동독의 모든 국경을 개방한다고 발표했다. 국경이 개방되자 수백 만 명의 동독인들이 서독과 서베를린을 방문했다. 베를린의 브란텐부르크문은 연일 역사의 현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으며 동서냉전 완화에 크게 기여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도 브란텐부르크문을 방문했다.

냉전의 상징물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건 1945년 5월 8일 나치스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1946년 12월 미·영 양국의 점령지구가 경제적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동서 분열의 빌미를 제공했으며, 그것이 베를린봉쇄 이후 최대 현안이 된 ‘독일문제’의 실마리가 되었다. 이후 ‘독일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4개국 외무장관 회의가 종종 열렸으나, 사사건건 미국과 소련측의 의견이 대립하여 충돌함으로써 1947년 4개국 외무장관 회의가 결렬되고, 이듬해 소련측이 독일관리이사회에서 탈퇴함에 따라 그 기능도 정지되고 말았다. 이후 동·서독의 분단이 완전히 고착되자 동독에서 서독으로 월경해 오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났다. 동독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동·서 베를린 사이에 40여㎞에 이르는 길고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을 쌓게 되었는데, 이것은 곧 동서 냉전의 상징물이 됐다.

그 후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붕괴에 잇따라 독일 통일이 추진되면서 독일분단 44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지 28년 만에 분단의 현장 베를린 장벽은 개혁과 개방의 장으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11개월 뒤인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역사적인 통일을 달성, 이 장벽도 다 철거되고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한 약간의 부분만 기념물로 남겨졌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