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농원의 거제 한라봉, 과수농업의 새 지표를 제시하다

‘한라봉’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제주도를 떠올린다. 그러나 제주도 특산물로 많이 알려진 한라봉은 사실 전남, 충주 등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토양 등 자연환경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자랑한다. 거제에 위치한 거제시 한라봉 작목회 소속 ‘정석농원’은 차별화된 환경과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한라봉을 통해 과수농업의 미래지향적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 정석농원 정일석 대표

귤 품종 중 하나인 한라봉은 일본에서 탄생하여 1990년대 한국에 들어왔다. 품종간 교배를 통해 크고 특징적인 꼭지를 가진 ‘데코폰’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된 이 과일은, 제주도에서 처음 도입해 한라산 봉우리 모양과 비슷한 꼭지 때문에 ‘한라봉’으로 명명된 후 타 지방에서도 특산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현재 거제시 거제면 서정리에서 한라봉을 재배 중인 정석농원 정일석 대표는, 대를 이어 거주해온 거제에서 친환경 재배를 통해 한라봉을 거제 특산물로 격상시켜 가고 있다.
“11대째 거제에 살면서 대대로 농업에 종사해 왔습니다. 벼농사만 지어왔는데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수익률이 높은 작물을 찾다가 알게 된 것이 90년대 초 국내에 들어온 한라봉이었죠. 거제에서도 수월한 농사를 해보려는 분들이 앞서서 한라봉 재배를 시작하기도 했지만, 정보 부족으로 실패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한라봉 재배에 성공한 제주에 직접 가서 묘목을 구입하고 정보를 얻어 한라봉 농사를 시작했지요. 그 외에도 쌀농사, 육묘장, 정미소 등을 겸해 가족농으로 경영 중입니다.”
정 대표는 만학도로서 농업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에서 얻은 지식과 평생 농사를 지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친환경영농의 발판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거제의 풍토가 만드는 한라봉

▲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자라는 어린 한라봉 열매.
귤이나 오렌지와는 또 다른, 달고 상큼한 맛의 한라봉. 물기가 많아 차게 먹을 때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초겨울에 수확하는 귤보다 수확이 늦은 편이라 연말에 접할 수 있는 한라봉은, 비타민 C가 풍부해 감기예방에 도움을 주며, 차나 초콜릿 등 여러 형태로 가공되고 있다. 나무에서 갓 딴 한라봉은 신맛이 강해 수확 후 시원한 곳에서 한 달 안팎으로 숙성시킨 후 출하한다. 정 대표는 한라봉 생산에 중요한 것은 ‘거제의 기후와 환경에 맞고 잘 적응할 수 있는 묘목을 선별해 거제만의 특성을 가지도록 재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주도에 비해 거제의 토양은 황토질입니다. 날씨도 16일 정도 맑아서, 거제 한라봉은 제주 등 타 지역 생산물과 작황이나 맛에서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토양과 기후 등의 영향으로 거제산 한라봉은 당도가 높은 편이죠. 거제 한라봉은 화학비료 대신 우분, 쌀겨, 미생물, 바닷물을 발효시킨 영양제, 아미노산을 발효시켜 직접 개발한 퇴비를 사용해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연 수확량은 6~7t 정도로, 인터넷에서 직접 판매하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수확 후 20일 이내에 판매가 완료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지요.”
정 대표는 작물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정성을 꼽는다. 대충 키워 내놓으면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맛이 없으면 소비자는 돌아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짓는다. “과일은 고유의 맛을 내는 게 정석이고, 한라봉은 새콤달콤한 맛이 포인트인 과일입니다. 당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산미가 있어야 거제 한라봉의 제 맛을 즐길 수 있죠.” 거제의 풍미를 담아낸 맛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정석농원의 거제 한라봉은 전화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주문이 가능하다.

신뢰하고 신뢰받는 농업의 기반으로
17년 간 한라봉 재배에 전념해온 정 대표는, 책을 통한 이론적인 지식보다는 경험으로 체득한 지식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라봉이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보나 재배 기술이 거의 없던 시절, 직접 뛰고 연구해 재배 기술을 보충하고 발전시켜 지금의 정석농원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30여 가구의 한라봉 작목 회원들의 이익과 농업 발전을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거제 한라봉.
“저희 작목회에서는 공동선별 및 공동경신제, 이력추적제 등으로 농가 스스로가 품질을 높여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기존 방식에 익숙한 고령 농가들에게는 낯선 개념이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농민은 농사를 잘 지어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데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은 교육을 담당하고 판매는 농협이 담당하듯 농민은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데, 실정은 농민들이 박스 포장에서부터 유통까지 도맡아야할 형편이라 농민이 전 분야에 박사가 되어야할 상황입니다. 친환경 농업이 많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농민 혼자 하려면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설채소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지금, 행정전문기관에서는 정확히 분석·연구해 개발농가에 보급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농업에 대한 롤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60여 년을 농업에 종사해 온 정 대표는 농업 개선을 통한 지역사회 발전의 발판으로 친환경 대학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친환경 대학을 설립해 친환경 자재를 생산·보급하면, 농가는 믿고 검증된 자재로 신뢰도 높은 작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일반농가뿐 아니라 화훼농가 등 특수작물 재배농가들에도 유익한 일입니다. 작물을 시작할 때 전문가들과 의논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 되겠죠. 또 거제에서 순환환원농업을 통해 발생하는 이득이 거제 지역사회 에 환원될 수 있다면 그 어렵다는 친환경 농업도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농사는 자식보다 효자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농사짓는 모습의 본을 보여, 자녀들이 내리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제대로 된 지도를 통해, 농업의 격과 품질을 올려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올해 농사는 내년을 보고 하는 것’이라는 정 대표는 정상적으로 관리만 잘 하면 한라봉만큼 맛있는 과일이 없다고 단언한다. 해수 식초를 활용한 친환경 비료로 균제를 억제하고 열 달 가까이 나무에서 익어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 한라봉. 길지 않은 재배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라봉은 이제 거제 지역의 특산물로 자리하며 전국적 명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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