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우리에게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낯선 무엇이 아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소녀전사 세일러 문〉 〈신세기 에반게리온〉… 우리는 적어도 몇 개의 제목 정도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으며, 작품의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작품들의 히로인의 이름들도 기억한다. 나우시카, 세일러 문, 아야나미 레이 등등. 그런데 정작 우리가 아직 제대로 묻지 않은 것들이 있다.

대체 ‘커다란 눈과 작은 입술’의 이 앳된 히로인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그녀들은 왜 성숙한 나이가 되기도 전에 직접 중화기를 손에 들고 적들과의 싸움에 사춘기를 바치는 것일까? 더구나 이 ‘싸우는 소녀’들은 허구적인 콜라주임이 분명한데 어째서 그토록 대량으로 소비되고 왔으며 지금도 줄기차게 재탄생하는가?

거대한 악과 싸우는 ‘전투미소녀’라는 이콘(ikon)은 일본의 특수한 문화가 아니라 이제 우리 안에도 이미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서브컬처’란 주류 혹은 공식적인 문화와 대비되는 비주류, 하위문화를 가리키는 단어일 테지만, 그것이 반드시 소수 취향의 문화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 서브컬처는 마이너한 영역을 넘어 다양한 미디어 영역을 점하면서 주류에 속한 문화 상품보다 폭넓은 인기를 누리며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린 ‘싸우는 소녀’들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자 한다면, 그간 한국의 서브컬처 애호가나 연구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중요한 텍스트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서의 전투미소녀와 오타쿠 공동체에 대한 괄목할 만한 분석을 포함하여, 일본만이 아니라 해외의 전투미소녀의 계보학까지 그려내는 일본의 라캉주의 정신분석가이자 임상의인 사이토 타마키의 『전투미소녀(戦闘美少女)의 정신분석』은 우리의 서브컬처 문화 비평을 자극하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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