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2017년에 시작돼 전 세계를 휩쓴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Too)를 촉발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사건이 있다. 전 폭스 뉴스 간판 앵커 그레천 칼슨이 폭스 뉴스 창립자이자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선거 캠프 고문이기도 했던 보수 언론의 거물 로저 에일스 회장을 성희롱 혐의로 고발한 기념비적 소송이다. 폭스 뉴스 내 동료 언론인들의 추가 증언을 이끌어내 결국 에일스 회장을 불명예 사임시킨 이 투쟁으로 그레천 칼슨은 일약 직장 내 성희롱을 비롯한 여성 인권 운동의 얼굴로 떠올랐으며, 2017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과 한 해의 가장 인상적이고 뛰어난 여성 언론 ‧ 예술인을 시상하는 매트릭스상 등을 수상했다. 용기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할리우드에서도 주목을 받아 니콜 키드먼과 샤를리즈 테론 주연으로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이 ‘로저 에일스 스캔들’의 주인공 그레천 칼슨이 직장 내 성희롱을 비롯한 모든 성폭력에 대응하는 자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Be Fierce)》가 문학수첩에서 출간됐다. 그레천 칼슨은 이 책에서 미국 전역을 뒤흔든 성추문의 피해자로서 어떻게 자존감을 잃지 않고 꼿꼿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폭력을 세상에 고발한 뒤 그녀에게 쏟아진 응원과 격려, 각계각층의 여성이 고백한 각종 성폭력 경험을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자행되는 은밀하고도 교묘한 범죄, 성희롱과 성차별

각종 업계의 여성들에게서 쏟아지는 충격적이고도 생생한 증언!

성차별과 성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 책은 광고, 스포츠, 패션 등 여성 대상화 및 상품화, 차별이 있다고 알려진 업계 외에도 간호나 요식 등 여성 종사자들이 많은 업계에서도 성차별과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저질러진다고 폭로한다. 마치 브라질에서 여섯 명의 아기를 감염시키는 것으로 시작해 이제는 마이애미나 하와이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하는 지카 바이러스처럼, 성차별은 질병처럼 자연스럽게 퍼져나간다(《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본문 248~249p 중).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코스비 가족》의 주인공 빌 코스비, 유명 팝가수 레이디 가가 등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사들의 추악한 성폭력 사건들은 이러한 일들이 결코 어떤 특정한 인물만이 저지르거나 겪는 것이 아닌, 누구나가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여성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가혹한 대우를 받아왔는지 서늘하면서도 충격적으로 폭로하며 우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회 속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되었는가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등골이 서늘한 현실과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이상의 간극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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