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을 개화시킨 4척의 흑선(黒船) 만도 못했던 ‘아편전쟁’

[시사매걱진=김민수 기자] 아편전쟁 전 중·영 간의 실제 교류는 통상관계였다. 그런데 청 정부 관원의 부패, 뇌물과 악습은 이미 이런 관계의 지속적인 움직임을 유지하는 필수 불가결한 윤활유가 되었기 때문에, 무릇 이런 종류의 상무관계에 연루된 관원들 중에는 뇌물을 받지 않는 자가 없었고, 큰 재산을 모으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이어온 관계(官界)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매국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부여하는데, 즉 모종의 주의(主意)를 따르기 위하여 모종의 이상(理想)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아편전쟁의 진정한 의의는 바로 총과 칼의 형식으로 중국인의 사명, 즉 중국은 반드시 근대화해야 하며, 세계의 조류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다. 이는 오늘날 역사학계가 모두 동의하는 관점이다.

역사는 150여 년이 흘러갔다. 우리의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이 역사적 사명이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낙후하다. 우리는 계속 항상 이런 이전의 성가신 몇몇 옛 문제에 직면하여, 마치 직접적으로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당연히 우리가 모든 책임을 모두 역사에 떠넘겨 버리는 이유가 있다. 사실상 우리도 역사 속에서 반박할 수 없는 수많은 원인을 찾았다. 서방열강의 침략, 경제기초의 취약, 높은 인구수 등등이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에서 가장 적게 살펴본 것이 “중국인은 이 과정 중에 도대체 어떠한 잘못을 범했는가?”이다. 항상 역사는 이미 명백하고 정확하게 우리가 잘못을 범한 적이 있다고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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