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9·11테러 5년 후, 미국은 지금도 전쟁중
9·11이 촉발시킨 테러와의 전쟁으로 전 세계 변화물결
‘9·11 테러’ 5주년을 맞아 지난 9월 11일 추모행사가 미국 전역에서 펼쳐졌다. 추모일을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부인 로라 여사와 함께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사건 당일인 11일에는 인접 소방서를 찾아 9·11 당시 헌신적으로 인명 구조에 앞장섰던 소방관들을 격려하고 오찬도 함께 했다. 뉴욕 ‘그라운드 제로’ 현장에서는 사건 당일을 회고하는 추모 사진전이 열렸으며, 9·11 당시 납치 여객기가 충돌했던 워싱턴 펜타곤에서도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과 유족 등이 참석하는 추모식이 개최됐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지 5년이 되는 지금 세계는 어떻게 변했는가. 결코 공격받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 미국이 테러의 표적이 된 이후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이슬람과 서방의 대립구도가 극으로 치닫고 있으며 서구를 포함한 세계의 미국에 대한 도전과 불만도 강해지고 있다. 미국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일간 <뉴욕타임스>, 프랑스 시사월간 <르몽드디플로마티크>, 영국 <더타임스> 등은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이 결국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9·11 이후 5가지 변화들
▲이슬람-서구, 대립과 반감 극대화=이슬람과 서구의 대립과 반감이 극대화됐다. 이는 국제사회의 반대 속에서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전쟁을 강행하면서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냈기 때문이다. 9·11테러 희생자는 3,000여명이었지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으로 숨진 민간인 희생자는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면서 반미감정을 세계화시켰고 결국은 미국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 테러 이후 영국과 미국, 유럽 국가들에서 무슬림을 바라보는 의심과 차별이 눈에 띄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7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무슬림은 공항과 공공 기관, 상점 등 어느 곳에서나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다. 고용 측면에서도 무슬림의 차별은 더욱 커지면서 이들의 수입도 10% 가까이 줄었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 제조했다는 사실이 분명치 않는데도 미국의 무차별 공격을 받고, 아랍인이란 이유만으로 테러범과 동일시되는 분위기에서 중동지역은 반미 감정이 더욱 타올랐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도전=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도전과 미국에 대한 반감이 증폭했다. 또 아랍 국가들은 민간인이 무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고 반미감정이 거세졌다. <뉴욕타임스>는 아랍국가에서 ‘공공의 적’ 알 카에다가 이제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아니라 반미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취하는 행동들이 알 카에다를 모방하는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양성하고 일반 무슬림 민간인들에게는 반미 감정만 부채질 한다고 분석했다.
<포린폴린시>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전 세계가 미국 일방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눈을 떴으며 반미감정과 시위가 자연스런 모습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방예산 급증= 미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의 국방 예산이 급증했다. <포린폴리시>는 “9·11로 인해 변한 가장 확실한 건 미 국방부의 예산이 하늘로 치솟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미 외교관계지에 따르면 2001~2006년 미 국방예산은 39%가 증가했다. 2001년 미국이 지출한 군비는 3,250억 달러로 세계 주요 14개국의 군비를 합친 것과 비슷했으나 2005년의 경우 14개국 군비 전체보다 1160억 달러 많은 돈을 지출했다.
급증한 군비는 테러와의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 자금으로 사용됐다. 또 9·11 이후 미국이 세계 각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쟁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이유로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도입하고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와 미군의 신속기동군화를 가속화 하는데 이용됐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국가의 급부상= 미국이 취약한 틈을 타 중국과 인도가 급부상하고 빈국들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06년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라이벌로 부상했으며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의회에서는 “중국을 봉쇄해야 한다”는 얘기도 빈번히 나오고 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는 중동에 모든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상황에서도 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두 대국 인도와 중국의 무게감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중국과 대만, 북한과 일본,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과 대립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러위협 급증과 핵위협의 재부상= 미국인을 뺀 세계 여러 나라 국민에 대한 테러위협이 급증했으며 핵전쟁의 위협이 재부상 했다. 9·11 이후 다수의 사람들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외교정책이 미국인을 제외한 세계 다른 나라 국민들을 보다 큰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고 느끼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부터 2005년 12월 31일까지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만8944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 중 단 8명만이 미국에서 사망했다. 실제 테러와의 전쟁 이후 테러 세력은 거꾸로 양산되는 결과가 빚어졌으며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 스페인 열차테러, 영국 런던테러 등 테러가 증폭했다.
핵전쟁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핵심 요소로 재 부각되고 있다. 이란은 핵개발 권리를 주장하면서 국제안보리를 핵관련 협상으로 유도하고 미국에 도전장을 던졌다

정치공방에 얼룩진 9·11 5주년
한편, 당사자인 미국은 9·11 테러 5주년 추모행사가 정치공방의 장이 되었다.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를 비롯해 워싱턴과 펜실베이니아 생크스빌 등 납치 여객기 추락현장에선 10∼11일 이틀 동안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렸지만, 행사와 연설에선 추모 대신 정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를 앞두고 안보논란이 불붙은 탓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0일 오후(현지시각)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서있던 자리에 마련된 두 곳의 추모연못에 헌화한 뒤, ‘그라운드 제로’를 내려다보는 기념관과 소방서를 예고 없이 방문해 “그날의 교훈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5년 전 현장 구호활동의 중심이던 인근 세인트폴 성공회교회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1시간여 동안 추모미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로 이동하는 동안,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이라크 철군을 요구하는 시위대 행렬을 지나쳐야 했다.
부시 대통령은 9월 11일에는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추모식에 참석한 뒤, 백악관에서 전국에 생방송되는 대국민 특별연설을 할 예정이다. 특별연설에 대해 백악관 쪽은 “어떤 정치적 목적도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을 돌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강경발언을 통해 공화당의 선거운동을 간접지원 한 기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9월 10일 텔레비전에 출연해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체니 부통령은 이날 NBC ‘언론과의 만남’ 프로에 출연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킴으로써 세상은 훨씬 나아졌다”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라크를 공격했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라이스 장관도 FOX TV에 출연해 “후세인이 권좌에 그대로 있었으면 세상이 더 좋아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라며 “이라크는 어려운 시기를 거치겠지만, 극단주의가 번성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 홀로 부시 “테러와의 전쟁 성공”
9·11사태 이후 미국 부시 행정부의 강경 대응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11월에 있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부시 대통령은 지난 5년간 테러에 대한 강경대응정책에 대해 성공적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9월 7일 애틀랜타에서 있었던 연설에서 “지난 5년간 우리는 국내외에서 테러와 맞서 훌륭한 활동을 펼쳤으며, 이를 통해 본토(미국)을 성공적으로 보호했다”라고 말하며 ‘테러와의 전쟁’이 성공적인 외교정책임을 강조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국제통화 도청이 테러예방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며, 국제통화 도청을 수행한 국가안보국(NSA)가 민간인에 대한 도청프로그램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의회에 입법을 촉구했다.
반면, 여론조사업체인 TNS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들은 부시 외교정책이 부정적이었다는 평가가 58%, 긍정적 평가는 40%로 조사됐다. 유럽의 경우 77%가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라크전쟁, 아프간전쟁에 대해서도 미군을 포함한 민간인 사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재정적 부담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CBS-뉴욕타임즈 조사에 따르면 65%가 이라크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911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은 여전히 건제하며, 알카에다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로 네트워크를 확장해가고 있다.
CIA출신 마크 세이지면은 알카에다는 이미 상명하복의 테러조직의 차원을 넘어 복잡한 형태의 국제적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무슬림 젊은이들이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밝혔다. 이처럼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점차 부시 행정부의 입지를 좁히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더욱 강경정책을 고수하며 국제사회를 대결양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미국 내 104개 모든 국경과 항만, 공항에서 생체 입국감시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며, 국제통화를 포함한 모든 전화에 대한 도청이 가능하게 되어 국가의 국민통제는 더욱 강화되며 개인의 정보유출, 개인 사생활 침해,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서구와 이슬람이 양분된 국제적 상황으로 서구선교단체 및 NGO단체가 무슬림권이나 제3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어 두 세계의 오해와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서구와 동양의 중간에 위치해 중재자로 세계무대에서 리더십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으나 서구화된 시각과 근시안적 내부민족문제해결에 급급해 세계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는 현실이다.


“전쟁은 이제 시작” 테러위협 여전
한편 알-카에다가 미국 본토를 공격한 2001년 9·11 테러 사태 5주년을 앞두고 알-자지라 TV는 9월 7일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 공격 준비를 준비하던 이슬람 전사들을 만나는 모습 등을 담은 오래된 영상을 공개했다. 알-자지라가 입수경위를 밝히지 않은 이 테이프에는 9·11 테러 전 아프가니스탄 내 알-카에다 훈련 캠프에서 빈 라덴이 테러에 가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인 2명과 얘기하는 모습과 복면을 한 전사들이 훈련하는 장면들이 들어 있다.
이날 알-자지라는 또 미국인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는 이라크 내 알-카에다 최고지도자인 아부 함자 알-무하지르의 육성 성명도 방송했다. 무하지르는 성명에서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15일에 미국인을 최소 한 명씩 죽이라”고 촉구했다. 9·11 테러 5주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이처럼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향한 테러의 악몽과 위협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2004년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구성했던 ‘9·11테러조사위원회’의 리 해밀튼 부위원장은 정치외교 전문 격월간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5년 전보다 안전해졌는지 모르지만 세계는 5년 전보다 더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실상 미국민들 역시 테러에 대한 공포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이 실시해 9월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뉴욕 시민들의 3분의 2는 추가 테러를 깊이 우려하고 있으며 3분의 1은 9·11 테러를 매일 떠올린다고 답했다. 유럽에서도 테러는 단순 위협이 아닌 현실이다. 2004년 191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폭탄테러 사건을 시작으로 지난 7월 영국에서는 자살폭탄 테러가 지하철과 버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52명이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영국과 독일에서 폭탄 테러 모의가 사전에 적발되기도 했다. 9·11 테러 이후 중동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외교정책은 더욱 강화됐다. 미국의 대 중동 외교정책은 이스라엘과 일부 친미 중동국가의 연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이란과 같은 적대적인 이슬람 국가들을 고립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라크는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도 극심한 종파 간 갈등과 내전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으로 수십 년 전으로 후퇴했다. 이란은 국제 사회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핵개발 프로그램을 강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립과 압박을 기조로 한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비판과 회의론이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서구에서는 이슬람계의 고립이 심화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행위가 급증하는 추세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를 희화한 만평사건을 비롯해 문명과 문화 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FBI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이슬람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 사례는 9·11 테러 이전에는 연간 30여건에 불과했지만 2001년에는 무려 481건으로 17배가량 급증했으며 그 뒤에도 연간 15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작년 7월 런던 폭탄테러 이후 이슬람교도에 대한 폭력행위가 잇따르면서 급기야 영국 내 최고 이슬람기구는 ‘이슬람 혐오증’의 확산 경보까지 발령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