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낮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밤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밤’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철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교양 도서이다.

독일의 유명한 과학사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이 책에서 과학, 문학, 역사, 철학을 가로지르며 ‘밤’의 의미를 깊이 사색한다. 밤의 여러 모습과 삶의 어두운 면을 다층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저자가 주목한 주제는 어둠, 그림자, 우주, 잠, 꿈, 사랑, 욕망, 악이다.

밤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검은가,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 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밤을 둘러싼 굵직굵직한 질문들을 하나씩 짚어나가면서, 삶이 어떻게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지를 유려한 문체로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과학, 문학, 역사에 새겨진 밤의 흔적, 밤의 욕망, 밤의 아름다움, 밤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를 ‘밤’으로 안내하는, 과학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철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인문 교양 도서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밤’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대니얼 워커나 로저 에커치와 같은 역사가들의 논평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나 괴테의 문학 작품을 폭넓게 인용해가면서, 밤에 대한 두려움, 욕망이 뒤엉킨 사랑, 도시와 궁전에서의 밤 문화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풍부하게 그려낸다. 포근하고 황홀하고, 달콤한 밤 측면뿐 아니라 외롭고 은밀하고 방탕한 밤 측면도 들춰내는 게 특징이다.

밤과 어둠을 인간이 저지른 큰 잘못의 결과로 해석하고, 밤이 오면 밤바람 속의 정령들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서 어두운 욕망이 고개를 든다고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이 책에서는, 어둠에 대한 두려움의 여파로 야경꾼이라는 직업이 생겨났고, 인공조명이 없던 과거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 두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을 자는 ‘2단계 수면 패턴’이 보편적이었으며, 지상의 밤이 환해지면서 밤 문화가 나타났다고 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언급되는데, 이 이야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밤을 “여성의 시간”이라며 찬양했던 괴테, “불행한 밤”을 언급한 카프카, “나의 기원인 너, 어둠이여”라고 얘기했던 릴케 등 문학 작품 속의 다양한 표현들도 만날 수 있다.

밤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잠’과 ‘꿈’은 하나의 장(章)으로 따로 떼어내어 각각 상세하게 다룬다. 저자는 문학 속의 잠, 수면학의 역사, 뇌와 수면과의 관계, 생체 시계(체내 시계)의 비밀, 밤 호르몬,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 동물들의 잠을 상세히 다루는 한편, 다양한 문화권의 꿈 이야기, 꿈의 문화사, 정신분석학의 역사를 우아한 발걸음으로 산책한다. “어둠의 만화경”, “홀로 깨어 있는 밤”, “뜬눈의 저주”로 표현되는 불면에서부터,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이 중요시하는 무의식, 꿈 해석, 꿈 속 모티브 이미지들(원형들)까지 폭넓게 소개된다.

이 책 『밤을 가로질러』는 창조적인 밤의 면모와 함께,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을 사색적이고 낭만적인 문체로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빛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하고, 인간은 낮과 밤, 모두를 필요로 한다. 아마 내면적인 밤 생활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내면적인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궁핍했을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 책을 끝맺는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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