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이후 본 대한민국의 국격

대형 여객선이 침몰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그야말로 대참사다. 사고 직후, ‘대한민국이 멈췄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졌다. TV는 예능 프로그램을 대거 결방시키고 연속 특보체제로 전환했다. 각종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심지어 이 맘 때쯤 체육대회와 함께 신명나게 펼쳐지는 각 학교 총동창회도 무기한 연기되거나 식사를 나누는 정도로 축소됐다.
이번 참사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불과 석 달 전,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부실하게 지어진 체육관 건물이 내려앉아 꽃다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참담한 광경을 목도한 바 있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 20여 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참사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죄도 없이 세상을 등져야 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이 물음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수장돼 버린 학생들의 영령에게 꼭 답해주어야 하는 물음이다.
사고 이후 정부가 보여 준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고 직후 해경을 중심으로 한 구조대가 출동했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지만, 절차는 거기까지였다.
출동한 해경은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쳐 희생을 더욱 키웠고, 대책본부는 나흘이 지나도록 탑승자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구조자와 실종자수를 몇 차례나 수정 발표했다. 그들이 수시로 고쳐 쓴 숫자가 다름 아닌 고귀한 목숨이라는 점에서 분노를 가라앉히기 힘들다.
이런 재난상황에서는 ‘국가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 사고를 겪으며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뒀다는 대한민국의 위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와중에 본지 소속의 기자는 한 독자로부터 격앙된 목소리의 항의전화를 받았다. 기자로부터 보고받은 독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사고 직후부터 예비후보라는 사람들로부터 문자가 쏟아져요. 그 사람들도 이번 사고에 대해 걱정하고 슬퍼한다는 건 알겠는데, 문자를 보내면서 꼭 자신의 소속 정당과 이름을 밝히는 걸 보면서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각 정당의 중앙에서도 선거운동을 무기한 중단하라고 했다는데, 이것이 선거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고등학교 다니는 자식을 키우는 학부모 입장이라 뉴스만 봐도 눈물이 흐르는데, 정치를 하겠다는 이 인사들은 선거에 얼마나 환장을 했으면…”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슬픔, 분노, 그리고 허탈감이 수시로 교차하는 나날들이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어른다운 어른들을 볼 낯이 없다. 죄 없는 사람을 이토록 많이 잃었는데, 세상은 변함이 없다.
마침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이미 이념과 정당은 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선거는 더 나은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덜 나쁜 정치인을 뽑는 것이다”라는 정치격언이 귓가에 맴돈다.
이번에는 ‘좀 덜 염치없는 정치인’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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