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즈니스 공간으로 성장할 터

웰빙과 힐링 트렌드가 꾸준히 이어지는 가운데 빵 하나를 먹어도 맛과 칼로리와 건강까지 생각하는 손님들을 위해, 천연재료만을 엄선하거나 자연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웰빙 푸드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현대인들이 지치기 쉬운 계절에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문화 비즈니스를 꿈꾸는 빵 다무르의 이상우 대표를 만나보았다.

사랑으로 빚은 빵

▲ 이상우 대표가 수집한 다양한 그림들을 가게 인테리어로 활용하고 있는 전경.
빵의 역사는 밥의 역사만큼이나 아득하고 오래되었다. 학자들은 빵의 시작이 무려 6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만큼 오래되었다고 한다. 인도의 난이나 멕시코의 또띠야와 같은 빵들을 최초의 빵의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발효 기술과 굽는 기술 등이 개발되면서 지금의 빵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빵이 우리나라에 전파된 시기는 1890년대로 보고 있다. 외국 선교사들이 정동구락부에서 ‘면포’라고 하는 빵과 ‘설고’라고 하는 카스테라를 판매한 것을 우리나라 빵의 시초로 보고 있다. ‘빵’이라는 말의 어원은 포르투갈어 '팡'에서 유래했다. ‘팡’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빵’(パン)으로 발음됐고 이를 우리나라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 여러 가지 메뉴를 선보이며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보는 눈을 즐겁게 해준다.
본격적으로 빵이 우리 식생활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이후 밀의 수입이 증가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수많은 소규모 제과점들이 생겨났다. 대구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1950~60년대는 대구 시내의 빵집들이 지역 백화점의 매출액을 능가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빵집 한두 곳 없는 동네가 없을 정도였고 이때가 동네 빵집의 전성기로 통한다. 빵은 이제 한국인에게 더 이상 특별한 음식이 아니다. 특히 서구의 식생활이 점점 확산되면서 빵은 점점 밥을 대체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명당 33.4㎏의 밀과 71.2㎏의 쌀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쌀 소비량이 밀보다 두 배 이상 많지만 쌀의 소비량은 통계를 작성한 1971년 이후 역대 최저치다. 하지만 빵의 소비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급성장하며 경쟁이 심화되면서 개인 베이커리가 망하거나 프랜차이즈에 흡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량은 늘어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빵 다무르(Pain d’Amour)의 이상우 대표는 ‘사랑과 정성으로 빚은 웰빙 빵을 제공합니다’라는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먼저 빵의 재료부터 제과제빵 기계들, 매장 인테리어와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철저히 관리하며 고객들에게 최고의 빵과 과자를 제공하기에 힘쓰는 노력파이다. 화려한 학벌과 경력, 외국인을 대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유창한 외국어 실력은 이 대표가 해외 유학파 출신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전직 교수라는 신분을 버리고 서비스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 힘들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프랑스 빵과 과자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1년 동안 제과제빵 전문교육 기관인 프랑스 루앙 국립제과제빵학교(INBP)에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공부를 했어요. 여기서 배운 것들을 통해 바라는 것은 제 이름과 명성보다는 가게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평범한 경영자의 모습이 아닌 아프리카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문화 비즈니스를 꿈꾸는 기업

▲ 프랑스에서 건너온 유학파 출신의 전문 쉐프가 빵을 만들고 있다.
2012년 8월 말, 교수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내자와 함께 경영했던 여성전문병원도 처분하였다.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위해 그동안 누려왔던 특권을 내려놓고 이제는 제과제빵 기업의 경영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상우 CEO는 자신을 소개하며 두 가지 특징을 알려준다. 첫째, 자신은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미식가이며 둘째, 추상화 수집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콜렉터라는 점이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가게 곳곳에 유명한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과연 문화와 여행,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답다.
그가 꿈꾸는 빵 다무르의 최종 목표는 ‘공공기업‘이다. “몇 년 전에 해외선교차 방문했던 아프리카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서 본 흙탕물 우물, 숙소에서 나오는 바퀴벌레들, 맨발로 다니는 시민들, 운행 중인 폐차 직전의 차들, 허기에 지친 사람들을 보며 최소한의 것으로 삶을 살고 나머지는 아프리카를 돕고 있는 해외선교단체 및 기아대책에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따라서 이 대표는 돈을 목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산이라는 낯선 도시의 한 대학교에서 20년이라는 교수생활을 보내며 크게 깨달은 것은 오랜 시간 속에서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훈련 시키셨다는 점이다. “인생을 크게 보니 인생의 1/3은 교육을 받는 시기였고, 1/3은 직장을 통해 보냈고, 나머지 1/3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하반부의 인생은 빵 다무르를 통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의 곁에는 이 사업의 번창을 위해 국내에서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 대표의 권유와 경제적 지원으로 빠리에서 수년간 제과제빵 기술들을 전수받고 귀국한 조카들과 제자들, 여러 지인들이 빵 다무르를 위해 일하고 도와주며 혼자의 힘으로는 경영, 매장관리, 판매, 제작 등 모든 것을 할 수 없기에 많은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차후 부산 중심에 확장 마련될 국내 본사 1층은 카페와 베이커리로, 2층은 유럽문화센터의 중심부로 발돋움 할 것이다. 문화센터는 미술관으로도 대관하며 전시가 없을 때는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그림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기독교를 알리는 선교부스로 활용하고 싶다는 포부를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달콤한 빵 냄새보다 더 감미로운 향기가 난다. 빵 다무르가 문화 비즈니스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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