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9월 첫 기적소리부터 KTX개통까지…

8.15광복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의 다리가 되어준 철도는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100여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파괴와 건설의 역사를 기록해온 한국철도가 한국인의 든든한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기까지 많은 인고의 세월을 거쳤다. 1899년 9월 첫 기적소리가 울려 퍼진 후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KTX개통까지 한국철도는 115년 동안 우리민족과 함께 숨 쉬며 발전해왔다.

철도가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오게 된 것은 증기기관이 실용화되면서부터다. 그간의 우마차 대신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철도는 대한민국의 든든한 수송수단으로 이용가치를 높였다.

한국철도의 어제와 오늘

▲ 8.15광복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의 다리가 되어준 철도는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1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괴와 건설의 역사를 기록해온 한국철도가 한국인의 든든한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기까지 많은 인고의 세월을 거쳤다.
철도가 세상에 나온 건 1804년 영국인 트레비직이 처음 중기기관차를 발명한 데서부터다. 한국철도는 그로부터 93년 후인 1897년 3월22일 미국인 James R. Morse가 경인철도 부설을 위해 첫 삽을 뜬 이후 1899년 9월18일 노량진~제물포 간 33.2㎞의 경인선이 개통된 것이 효시다.
한국철도는 부설이 외국인의 손에 의해 시작되고 일본의 중원침략의 도구로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선진국과 다르다. 대한제국 말기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가 한국에서 각종 이권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1896년 3월 미국인 모스가 경인간 철도 부설권을 얻어냈고 자본주를 찾다가 실패하자 1899년 그 권리를 일본에게 팔아넘겼다. 그 해 9월 일본은 경인철도주식회사(京仁鐵道株式會社)를 통해 철도를 완성했고 이것이 한국철도의 시초다.
그리고 1905년 1월에 경부선, 1906년 4월에 경의선, 1914년 1월에 호남선, 같은 해 9월에 경원선, 1936년 12월에 전라선, 그리고 1942년 4월에 중앙선을 각각 개통함으로써 철도의 주요골격이 형성되었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된 1945년 8월에는 영업거리 6,363㎞, 역 762개소, 기관차 1,166대, 객·화차 1만 7,379량, 직원 10만 527명이었으나 국토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비운으로 남한의 철도는 영업선 2,642㎞, 역 300개소, 기관차 488대, 객·화차 9,704대, 직원 5만 5,960명으로 남게 되었다. 미 군정청의 3년간에 걸친 과도기를 거쳐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교통부가 철도를 운영하게 된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철도는 군사수송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전쟁수행에 큰 기여를 했으나, 전쟁 후 수송장비의 70%, 시설물의 50%가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이후 철도는 파괴된 장비와 시설의 복구에 착수해 태백·영동지구에 산업선을 건설하고 수송력 증강에 노력했다. 1963년 9월 교통부의 외청으로 철도청이 발족, 철도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제1차 경제 개발5개년 계획에 따라 1963년에 영동선, 1966년에는 태백선과 경북선, 1968년에는 경전선을 차례로 개통하여 석탄·비료·양곡 등 대부분의 산업물자를 원활히 수송하면서 국가산업과 경제발전의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1974년 8월 경인선, 경부선 및 경원선의 수도권 전철을 개통하고, 1994년에는 분당선 및 과천선을, 1996년에는 일산선 전철을 각각 개통해 수도권의 도시교통 난을 해소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됐다.

한국철도, 우리 기술력으로 발전을 꾀하다

▲ 수도권의 교통 난을 해소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 철도. 오늘날에는 다양한 이벤트 철도여행도 마련되어 사람들에게 즐거운 문화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1968년부터 중앙선에 열차 집중 제어장치인 CTC (Centralized Traffic Control)의 설치를 시작으로, 1969년부터 열차 자동정지장치인 ATS(Automatic Train Stop), 1994년부터 열차 자동제어장치인 ATC(Automatic Train Control)와 신호원격제어장치인 RC(Remote Control) 등을 설치하여 시설과 장비를 현대화함으로써 수송력을 증대하고 안전도를 향상 시켜왔다. 또 건널목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1928년부터 사용해온 경보장치에 이어 1982년부터 전동차단기를, 1991년부터 지상물 검지장치를, 1995년부터 장대형 전동차단기와 현수형 경보기를 설치하고, 건널목 입체화를 매년 확대 시행하는 한편, 1999년부터 원격검지장치, 영상감시장치, 도로교통신호체계와의 연동화 등 첨단시설과 장비를 설치해 사고를 대폭 감소시켜 나가고 있다.
철도차량은 최초 개통 당시에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서 시작해 1945년에는 우리 기술로 만든 증기기관차로 ‘해방자호’를 운행했고, 1951년부터 디젤기관차, 1973년부터 전기기관차를 운행했다. 현재는 우리 기술로 제작한 철도차량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열차운행에 있어서는 경부선 개통 당시 서울 서대문~부산 초량간을 17시간에 운행했으나 1946년 5월 해방자호가 서울~부산간을 9시간에 운행하고 디젤기관차가 도입되면서 1959년 2월 통일호가 7시간 10분, 1969년 관광호가 4시간 50분, 1985년 새마을호가 4시간 10분으로 시간을 단축해 운행하고 있다.

세계가 놀란 고속철 개통, 그리고 10년 후

▲ 우리나라는 현재 자동차를 대신해 저공해 수송수단인 철도에 새로운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작년에는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를 개통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철도의 사양화가 심화되었다. 항공 수송의 급속한 발달에도 영향을 받아 유럽 등 철도 선진국에서 철도는 경영난을 겪으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양산업으로 인식되던 철도는 최근 들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도로보다 안전한 교통수단이라는 점이 통계적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철도기술의 지속적인 향상으로 운행속도가 꾸준히 향상되어 왔기 때문에 안정성과 고속성도 함께 갖고 있다. 또한 저공해 운송수단으로서 환경 친화적인 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철도는 재평가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자동차를 대신해 저공해 수송수단인 철도에 새로운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작년에는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를 개통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고속철도(High Speed Railways)라 함은 시속 200㎞ 이상의 고속으로 운행하는 철도를 가리키며 기존철도와 구분하여 이의 대칭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발되고 있는 고속철도의 기본적인 특성은 재래철도에 비해 고속운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고속운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차량, 신호체계, 제어장치, 토목 기술 등이 복합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고속철도는 지난 1992년 경부고속철도 천안~대전 시험선구간 4개 공구가 착공된 지 12년 만에 이뤄져 경부고속철도 1단계 사업과 호남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지난 2004년 4월1일 개통했다. 서울~부산은 2시간 40분, 서울-목포구간은 2시간 58분만에 각각 주파할 수 있게 되었고, 한반도를 2시간 생활권으로 묶었다.
KTX는 개통 초기 다소간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10분 이상 지연하지 않고 정시에 도착한 열차가 99%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높은 정시율을 자랑하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차세대 한국형 고속전철 G7의 고유 명칭은 HSR350-X(High Speed Rail 350 Experiment)이다. G7의 개발은 한국 철도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기술적 성과인데 지난해 12월에 경부 고속철 천안~신탄진 구간에서 국내 최고 시속인 352.4㎞의 시험주행에 성공, 한국 철도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독자적인 한국형 고속철 개발은 국내 철도 차량산업 및 부품산업 육성과 국내외 시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며 우리의 독자적 기술을 세계에 보여준 쾌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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