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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후대에 알리는 것이 나의 사회적 책임척박한 세상, 수사반장의 영웅담 그리워
  • 신현희 차장
  • 승인 2014.04.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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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에 몰입해서 본 세대들은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범인을 보면 저절로 고함이 나오고, 수사팀이 그들을 놓칠 때면 안타까워 탄식이 나오는… 돌이켜보면 경찰도, 범인도 나름 순수했던 시절인 듯하다. 그때 그 시절, 우리나라 최고의 경찰이었던 전설의 포도왕, 수사반장의 실존인물 최중락 수사연구관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그리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가 아직 수사반장이라면 세상이 이리 척박했을까.’

   
 

20년 동안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던 <수사반장>의 실존인물 최중락 수사연구관을 만나러 가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이다. 혹자는 수사반장은 최불암 씨 아니냐고 한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몰입했던 프로그램이었고, MBC창사 45주년 다시보고 싶은 프로그램 베스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경찰로 40년, 삼성에스원 상근고문으로 20년, 결국 ‘사회적 책임’으로 귀결되는 굵직한 그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우리 국민들이 인과응보의 명쾌한 해답을 주었던 수사반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경찰생활하면서 배운 건 ‘권선징악’,
억울한 국민이 없어야 행복의 척도 높아져

“아직도 최불암 씨를 3개월에 한 번씩은 만난다.”
소름 돋으리만큼 싱크로율 100%였던 두 명 수사반장의 만남이 아직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당시 국민들을 TV 속으로 빠지게 했고, 나쁜 사람들은 반드시 처벌 받는다는 통쾌함과 믿음을 주었던 수사반장, 이 프로그램의 실제 주인공인 최중락(당시 경찰) 씨는 20년 동안 직접 방송자료를 제공하고 감수까지 했다. 이는 단 하나, 국민들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는 의미였다. 범인들이 그림자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얼어붙는다는 전설의 포도왕 최중락 수사연구관도 세월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뇌경색으로 3년 동안 병원신세를 졌던 탓인지 기력이 많이 쇠퇴해졌음이 느껴졌다. 왠지 씁쓸했다.
하지만 최중락 수사연구관의 말을 들으면서 나의 마음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해 85세, 기억이 조금은 희미해질 법도 한데 그는 1950년 4월26일 순경에 합격한 날부터 지금까지 날짜 하나 잊지 않고 정확하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었다. 그는 61세 정년퇴임 때까지 ‘강력범 843명, 살인범 140명, 사형수 7명, 변사체 2,600구 감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내가 경찰생활하면서 배운 건 딱 하나 ‘권선징악’이야.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진리인 셈이지. 내가 이렇게 많은 범인을 잡은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야. 억울하게 당하는 국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고 결국 선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하늘의 깊은 뜻이야.”
삼성에스원 상근고문으로 22년 동안 24만 명의 신입사원 교육을 한 결과 그들 중 범법한 사람은 단 3명,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그의 강의내용은 강력범 수사기법. 경찰관 직무직행법, 경비업법, 근로기준법이었지만, 결국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권선징악’이었고 국내 최고 엘리트인 삼성맨들은 최중락 수사연구관의 깊은 뜻을 이해한 것이다.

배삼룡 장례식때 소주 60병… 뇌경색으로 쓰러져
3년 여 투병후 다시 삼성그룹 에스텍 신입사원 강의

   
▲ MBC창사 45주년 다시보고 싶은 프로그램 베스트 1위를 차지한 <수사반장> 연기자들은 아직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배삼룡이가 사망한 뒤 병원비가 모자라 시신이양을 못했어.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지. 내가 영 가슴이 아파서… 당시 문체부 유인촌 장관의 도움으로 겨우 장례를 치르고 나니, 새삼 인생무상이 느껴지더라구. 그래서 송해와 백남봉이와 같이 소주 두 짝을 마시고 쓰러져 7개월 동안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네.”
천하를 호령하는 포도왕 자리를 세 번이나 꿰찼던 그가 뇌경색으로 옴짝달싹 못한 채 누워만 있었던 기간이 7개월. 그동안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고, 아직 못다한 얘기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게 3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작년 3월부터 그 못다한 얘기를 설파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삼성그룹 에스텍 신입사원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 강의를 위해 준비해야하는 자료만도 수십 개. 시간도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겉모습만 봤을 땐, 뇌경색 후유증으로 아직도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85세의 인자한 어르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 쓰러지고 나니 그제야 시간이 무한정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여력이 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 사회에 밀알같은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요즘도 그는 신문에 실리는 각종 강력범죄 기사를 스크랩 해둔다. 갈수록 진화되는 범죄와 잔혹한 범죄수법에 그조차 혀를 내두른다.

   
▲ 최중락 수사연구관과 함께 지난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듣는 박영록 이사.

“나쁜 놈들은 결국 천벌을 받게 돼 있어”라는 그는 “예전에는 그래도 가족의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도둑도 많았는데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가족을 해치는 패륜범들이 더 많아. 내가 40년만 젊었어도…”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안타까움과 분노를 삼키는 듯했지만, 감히 읽히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8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묵직한 존재감을 갖는 수사반장의 카리스마 인 듯하다.
최중락 수사연구관은 오롯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살아왔다. 평생 그렇게 살았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큰 부(富)도 없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 가족과의 따뜻한 시간도 누리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국민의 안녕’만이 있을 뿐이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 되겠다고 한다.
최중락 수사연구관의 인생은 단 하나의 울림이었다.
“착하게 살자.”
 

 

신현희 차장  bb-75@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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