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시대와 나이를 초월한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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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Do It’, 시대와 나이를 초월한 나이키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8.10.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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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브랜드의 승리의 여신 ‘나이키’의 멈추지 않은 도전

(시사매거진246호=신혜영 기자) 최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광고가 공개되면서 미국 내에서는 연일 화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애국가가 나오는 무릎 꿇기 시위를 벌인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이키를 향해 “끔찍한 메시지를 보내서는 안된다”며 경고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려를 표할 만큼 나이키가 주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나이키의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진출처_뉴시스)

나이키 광고, 세계를 놀라게 하다

나이키의 파격적인 모델 기용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이키의 이유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이키는 지난 9월 3일(현지시간)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콜린 캐퍼닉을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 30주년 기념 모델 중 한명으로 발탁했다. 캐퍼닉은 지난 2016년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 논란이 있던 해애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기립 대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캐퍼닉의 이 같은 퍼포먼스는 프로야구, 프로농구로 확산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나이키가 이런 선수를 모델로 기용한 건 나이키도 인종차별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광고에는 ‘무엇인가를 믿어라. 모든 것을 희생하게 된다는 의미일지라도(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란 글귀가 들어가 있다. 이 글귀가 나이키 광고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캐퍼닉이 지난 2016년 경기장에서 인종주의와 트럼프에 대한 저항으로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어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데 대해 나이키도 공감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우려의 목소리를 낼 만큼 나이키 광고 한 편이 주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소비조사업체 에디슨 트렌드의 자료에 따르면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나이키 제품의 온라인 판매량은 노동절(9월1일) 이후 이틀 동안 판매율이 31%나 증가했다. 이는 작년 동기간 판매량이 17% 증가했던 것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나이키’는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즐겨 찾는 스포츠용품 브랜드다. 최근 광고 한편으로 연일 화제를 모으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나이키는 가히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란 점에서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에 항의하는 의미로 국민의례를 거부해 논란을 일으킨 전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나이키의 새 광고가 5일 샌프란시스코 쇼핑몰 유니온스퀘어에 걸려있다. 나이키는 이 광고로 판매율이 31%나 증가한 것으로 11일(현지시간) 나타났다. (사진출처_뉴시스)

블루리본 스포츠에서 나이키까지

나이키의 역사는 명성에 비해서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64년 육상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과 그의 제자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교의 육상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가 블루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이 시초다. 당시 빌 바우어만과 필 나이트는 각각 500달러를 투자해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사(Onitsuka Tiger, 현재 아식스, ASICS)의 기능성 운동화 200켤레를 들여와 자동차에 싣고 여기저기를 돌면서 판매했다. 블루리본 스포츠는 설립 첫 해에 약 8,000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196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Santa Monica)에 첫 번째 매장을 열고 직영판매를 시작한 블루리본 스포츠는 이듬해 웰즐리(Wellesley) 지역에 두 번째 매장을 열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해 가던 블루리본은 1972년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의 미국식 발음을 따 ‘나이키’로 브랜드 이름을 바꿨고, 그 무렵 오니츠카 타이거사와의 협력 관계를 종료하고 독자적인 브랜드 ‘나이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브랜드는 승리의 여신답게 세계적인 스포츠용품으로서 굳건히 1위의 자리를 지키며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운동화도 혁신이다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첫 번째 제품은 바로 1970년 빌 바우어만이 와플 굽는 기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해 낸 새로운 미끄럼방지 패턴이 들어간 고무 스파이크가 부착된 운동화다. 이 운동화는 기존의 운동화보다 가벼우면서도 지면과의 마찰력이 강하다는 특성 때문에 바우어만의 선수들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 1972년에 열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7위 안에 든 선수들 중 4명이 나이키를 신은 것으로 알려졌다.

빌 바우어만은 이 기술의 이름을 와플솔(Waffle Sole)이라고 정했고 1972년 자신이 개발한 와플솔을 활용해 코르테즈(Cortez)라는 운동화를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다. 그의 기술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후에도 다양한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1970년대 말에는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직원이었던 프랭크 루디(Frank Rudy)와 함께 단단한 주머니에 압축 공기를 주입해 일정한 압력을 가하면 자연스럽게 눌려지는 에어 쿠셔닝 기술(Air Cushioning Technology)을 개발했다. 1979년 나이키는 이 기술을 활용해 에어 쿠셔닝 기술이 적용된 테일윈드(Tailwind)를 출시한다.
 

지속적인 스포츠 선수 후원, 브랜드 인지도 높이다

나이키는 창업초기부터 운동선수들의 후원을 통해 제품을 알려왔다. 그 시작은 1972년 장거리 육상경기 7종목에서 미국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육상선수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 후원이다. 이후 육상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출전한 육상 선수 스티브 오벳(Steve Ovett)와 1983년 여자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마라토너 조안 베노이트 사무엘슨(Joan Benoit Samuelson)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지속적으로 스포츠 선수를 후원함으로써 브랜드를 노출시킨 나이키는 1980년에 들어서 미국 운동화 시장의 50%를 차지할 만큼 놀라운 성장을 이뤄내게 된다. 이 배경엔 나이키만의 도전적인 마케팅이 한몫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단 1분도 뛴 적 없는 신인에 불과했던 카고 시불스(Chicago Bulls)팀 소속의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을 과감히 모델로 발탁한다. 1985년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을 위해 나이키 최고의 브랜드 ‘에어 조던 원(Air Jordan 1)’을 개발했다.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 원을 착용하고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여 운동화 판매율이 크게 증가했다. 매출이 연간 8억 달러에서 40억 달러 규모로 수직 상승한 것.

이후 1990년 나이키는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 교외에 ‘나이키 월드 캠퍼스(Nike World Campus)’라는 본사 건물을 세웠고, 포틀랜드 지역에도 매장과 극장을 결합한 900m² 규모의 스포츠용품 전문 매장 ‘나이키 타운(Nike Town)’을 열었다.

나이키의 또 다른 모델 타이거 우즈(Tiger Woods) 역시 마이클 조던과처럼 신인시절 계약을 체결하고 1996년부터 향후 5년간 4,0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나이키의 선경지명이 통했을까. 타이거 우즈가 단기간에 골프 대회를 휩쓸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나이키의 골프용품 사업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우즈 덕분에 미국 골프의류 시장에서 1위, 골프신발 시장에서는 2위로 뛰어올라 매출이 이전에 비해 60%나 증가했다.

 ‘Just Do It’ 30주년 캠페인 광고에 기용된 콜린 캐퍼닉. (사진출처_뉴시스)

나이키의 상징 ‘Just Do It’

나이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이다. 1988년 광고 대행사 위든 앤 케네디(Wieden&Kennedy)가 ‘Just Do It’ 광고 캠페인을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나이키의 상징과도 같은 말로 쓰이고 있다. 당시 ‘Just Do It’ 캠페인은 나이와 성별, 건강상태 등을 떠나 모든 사람들과 스포츠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화하길 원했던 나이키의 의도가 광고에 잘 반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최근 ‘Just Do It’ 30주년 캠페인 광고에 콜린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면서 나이키의 이 같은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났다.

나이키는 지속적으로 광고 캠페인을 해왔다. 그 시작은 1976년으로 ‘데얼 이즈 노 피니쉬 라인(결승선은 없다!)’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광고를 선보였다. 이 슬로건은 ‘영원한 승자는 없고 새로운 승부만 있다’는 나이키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이후 1987년에는 에어 맥스 출시와 함께 ‘그래비티 윌 네버 비 더 세임(Gravity Will Never Be the Same, 중력이 전과 같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이란 슬로건으로 레볼루션 광고 캠페인을 했었다.

하지만 나이키도 그간의 보여줬던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 일이 발생하면서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96년 미국의 <라이프>지가 웅크리고 앉아 나이키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12세의 파키스탄 소년의 사진과 인도의 어린이가 자기 손가락보다 더 큰 바늘로 축구공을 꿰매고 있는 사진을 게재하면서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이키는 다른 다국적기업들과 모여 스포츠 의류산업의 기업윤리강령을 만들었고 최장 노동시간을 주당 60시간으로 정하고 14세 이하의 노동자는 고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스포츠 브랜드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나이키는 이후에도 기술개발에 게을리 하지 않고 다양한 기업 및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왔다. 애플의 IT기술과 나이키의 운동화를 접목시킨 나이키 플러스가 대표적인 예다.

설립 이후부터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스포츠 용품의 발전을 이끌어 온 나이키. 최근 인종차별논란 광고로 미국 내에서 찬반 논쟁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비애국적 광고 논란에도 판매가 증가는 등 나이키의 위상은 꺾임이 없다. 이 같은 이유엔 나이키만의 고유한 혁신과 도전, 그리고 나이키의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나이키는 전 세계적으로 4만여 명 이상의 직원들을 두고 컨버스(Converse), 헐리 인터내셔널 LLC(Hurley International LLC), 나이키 골프(NIKE Golf) 같은 자회사를 설립하며 다양한 스포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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