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 5대 에너지 기업 목표, 일일 420만 배럴 생산 계획

지난해 美 국가정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우든은 NSA가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통화를 감청하고 기록을 열람했으며, 호세프 대통령과 보좌관 간의 연락과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인 ‘페트로브라스’의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왔다고 밝혔다. 이에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NSA의 비밀 정보수집 행위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하며, 지난해 10월 예정돼 있던 미국 워싱턴 방문을 취소하기도 했다.

브라질의 ‘반관반민’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정식명칭 Petroleo Brasileiro)는 1953년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의 주도 아래 국영으로 설립됐다. 1990년대까지 국영으로 브라질 석유사업을 독점하며 브라질 근해의 유전을 개발하던 페트로브라스는 1997년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대통령이 공기업 민영화와 시장 개방을 추진하면서 페트로브라스의 독점사업권을 철폐해 경쟁 체제로 돌입했다.

브라질의 국영 ‘석유수입’ 회사로 출발

 
페트로브라스는 원유, 천연가스, 탄화수소 등을 탐사·채굴하며,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수입된 석유를 정제하고 석유, 가스, 기타 부산물을 수송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브라질 내의 육상과 근해상에 매장돼 있는 석유자원을 주로 개발하지만 중동, 북아프리카, 콜롬비아 등의 유전지역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설립될 당시만 해도 페트로브라스는 ‘왜 국가가 석유회사에 투자를 하느냐’는 비난의 중심에 있었다. 세계적인 석유회사나 석유생산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브라질의 석유산업은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대서양 깊은 바다 밑에 있는 석유를 뽑아 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페트로브라스는 석유회사이긴 했지만 정작 석유는 없는 석유회사였다. 엄밀히 말하면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의 국영 ‘석유수입’ 회사였던 것이다. 그러던 페트로브라스가 정부의 과감한 석유시장 개방정책에 그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페트로브라스 설립 당시 바르가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석유 생산은 성장과 발전을 도와줄 것이며 브라질을 부유한 국가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에 ‘석유는 우리 것’이라는 캠페인도 벌였다. 그리고 페트로브라스가 브라질 석유와 관련한 모든 활동에 독점권을 가져야 한다며 국가 개발의 도구로 이용했다. 이에 페트로브라스는 1964∼1985년까지 브라질의 오지를 개발하고 산업화를 이끄는 중심에 있어야 했다.
그러던 1997년, 브라질 정부는 페트로브라스의 석유 탐사 독점권을 종료하고 개인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매각했다.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결권의 절반 이상은 정부가 갖고 있다. 이처럼 페트로브라스는 정부의 간섭 덕에 자주 수난을 겪어야 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정부가 페트로브라스의 더 많은 지분을 갖길 원했다. 페트로브라스가 얻은 수입을 교육에 투자하고 빈민을 위한 주택 건설과 식량 생산에 쓰이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룰라 대통령은 “이 석유는 우리의 것이다. 석유는 기업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라며 국민에게 이익을 돌려줄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페트로브라스는 지금 5개년 사업계획 진행 중

▲ 브라질의 ‘반관반민’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는 1953년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의 주도 아래 국영으로 설립됐다.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정부의 석유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지금의 자리에 왔다.
룰라 정부에서 페트로브라스는 다수의 업체를 인수하거나 신규 투자를 통해 활동영역을 확장했다. 에탄올 공장, 열병합발전소, 바이오디젤의 공장 지분을 인수하고 Braskem의 지분을 확대했다. 주유소체인망도 인수했다. 이처럼 다수의 산업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브라질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영역 확장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002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에너지 기업인 페레스콤팡크를 인수했고 이후 칠레,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의 석유 자산을 획득하면서 영역을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확장했다. 뿐만 아니었다. 앙골라, 중국, 싱가포르, 멕시코, 인도, 이란, 리비아, 나이지리아, 영국, 터키 등에서도 석유를 뽑아냈다. 미국 파사데나 정유회사의 지분 50%를 3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해 미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기도 했다.
2007년 11월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남서쪽의 산투스(Santos) 해양분지 BM-S-11 광구에서 추정 매장량 50∼80억 배럴에 달하는 대형 투피(Tupi) 유전을 발견했다. 이는 1976년 발견된 멕시코의 칸트렐 유전 이후 가장 규모가 큰 유전으로 당시 에드손 로바우 브라질 자원에너지부 장관은 “1,500억 배럴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단일 거대유전”이라고 밝혔으며 페트로브라스 CEO 호세 세르지우 가브리엘리는 “투피 유전은 페트로브라스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며, 페트로브라스뿐 아니라 브라질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페트로브라스는 이에 따라 2008년 5월 페트로브라스는 “예정보다 1년 빠른 2009년 1분기부터 투피 유전의 원유생산을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페트로브라스는 지금 2013∼2017년 간의 5개년 사업계획을 구상, 진행 중이다. 이 기간 중 총 투자액은 2,367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연평균 473억 달러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한 현재 일일 200만 배럴인 석유 생산량을 2020년까지 일일 420만 배럴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또한 심해유전의 발견으로 페트로브라스는 인력, 연구, 기술개발, 그리고 조선소 건설에 투자할 계획이다.
브라질의 석유와 천연 가스의 생산량은 향후 몇 년 이내에 현재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절반에 해당하는 생산량은 2020년 이내에 심해유전층에서 생산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생산목표 달성을 위해 페트로브라스는 드릴링리그(반잠수식 시추장비), 운반선 및 시추 플랫폼의 수를 현재의 두 배로 늘인다는 목표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일부 장비는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이며 나머지는 2016년부터 2020년 사이에 추가 설치될 예정이다.

2020년까지 세계 5대 에너지기업 목표
페트로브라스는 막대한 석유 매장량뿐만 아니라 상당한 기술력과 자본력도 갖고 있다. 기업 가치만 3,000억 달러가 넘는다.
이 기업의 목표는 너무도 명확하다. 페트로브라스는 2020년까지 세계 5대 에너지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생산량, 매출액, 기술력, 자금력, 유통망, 매장량 등 모든 평가 분야에서 세계 5대 메이저 그룹에 진입하는 것이 페트로브라스의 목표다. 또한 정제, 가스, 에너지, 석유화학, 유통, 바이오 연료 관련 980여 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생산라인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기술력과 인력은 페트로브라스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필수요건이다. 이 부분에서 페트로브라스는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해저 3,000m 소금층 하부에 있는 석유를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은 전 세계에서 극히 제한된 일부 석유회사들만 갖고 있는 특급 기술로 알려져 있다. 이에 다른 메이저급 석유회사들도 페트로브라스와의 협력을 통한 석유 시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또한 페트로브라스는 자체 내에 석유대학을 운영하면서 필요한 인력 양성과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전 개발을 통해 원유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다운스트림(수송·정제·판매) 부분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에너지기업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

▲ 설립될 당시만 해도 페트로브라스는 ‘왜 국가가 석유회사에 투자를 하느냐’는 비난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정부의 석유에 대한 강한 집념, 특히 룰라 정부에서 다수의 업체를 인수하거나 신규 투자를 통해 활동영역을 확장했다.
현재 페트로브라스는 에너지기업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가 이끌고 있다. 타임지가 선정한 ‘전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2년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파워우먼’에 뽑힌 마리아 다스 그라사스 시우바 포스테르 CEO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에는 ‘2014 역량 있는 여성 경제인’ 순위에서 4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천연가스, 에너지 담당이사였던 포스테르는 2012년 조제 세르지오 가브리엘레 CEO의 후임으로 CEO에 올랐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호세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을 승인했다. 이로서 포스테르는 페트로브라스의 첫 여성 CEO인 동시에 석유산업계에서도 최초의 여성 CEO라는 기록을 쓰게 됐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석사과정을 시작하는 동시에 페트로브라스에 입사해 인턴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화학엔지니어로 정직원이 된 그녀는 30년 넘게 회사의 여러 부문을 거치며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98년 호세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좌파인 노동자당을 지지하던 두 사람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호세프가 에너지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에는 최측근으로 ‘석유가스산업동원프로그램’ 총책임자를 맡기도 했으며 2003년에는 에너지부 산하 석유·천연가스·재생에너지 담당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호세프가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는 국정을 총괄하는 수석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 포스테르다.
리우데자네이루 인근의 빈민가에서 자란 그녀는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 환경에서도 ‘살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나가겠다’는 의지로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인지 포스테르는 거침없는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글로벌 경기침체로 페트로브라스가 7,448억 원에 이르는 분기 순손실을 냈지만 그녀는 특유의 추진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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