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만의 이야기가 깃든 근대 유산을 찾아서

[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오랫동안 국내 대표 관광지로 사랑받은 제주. 제주만의 독특한 풍광은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할 만큼 무척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복잡한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 큰 쉼을 주기에 계절과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제주를 찾는 게 아닐까. 한편으로 제주는 그 아름다움과 별개로 억압과 저항 그리고 침탈의 역사를 간직한 땅이기도 하다. 한동안 제주는 ‘고립’을 통해 누군가의 숨을 옥죄는 유배지였으며, 조선의 인조 시대에서 순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1629~1830년) 동안은 ‘도민출육금지령島民出陸禁止令’으로 육지와 철저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군사 요충지이자 태평양전쟁 최후의 방어진지로 이용되었고, 해방 뒤에는 4․3사건이라는 비극을 겪어야 했으며, 한국전쟁 시기에는 포로 수용과 군사 지원을 담당해야 했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관광개발 정책은 지난 아픔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제주를 앞으로 내달리게 만들었다.

이런 역사를 지녔기에 누군가는 제주를 ‘고난과 고통의 땅’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주는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극복하고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에 적응하면서 개성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이는 건축 영역에서 잘 드러나는데, 제주석을 효율적으로 다룰 줄 알았던 제주도민들은 올레담, 축담, 밭담 등을 쌓아 거센 바람으로부터 가옥이나 밭을 보호했으며, 제주 기후나 지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초가나 와가 같은 전통 주택을 발전시켰다. 제주만의 건축 문화는 근대화라는 흐름에 발맞춰 더욱 진화했다. 제주색이 짙게 배어 있는 근대의 건축물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채 하나 둘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제주도민의 애환을 지켜봤다.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태일은 이 책 《제주 근대건축 산책》에서 제주도민과 오랜 기간 함께해온 근대의 건축 유산들(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건축 유산들까지)을 그동안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와 함께 소개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제주의 근대를 일제강점기에서부터 1970년대까지로 넓게 구분 지었다는 점인데, 지은이는 그 이유를 1980년대 이후 추진된 개발 정책에 따라 그 이전과 이후의 제주가 크게 달라진 탓이라고 말한다.

《제주 근대건축 산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일제강점기의 삶을 반영하는 근대건축물’에서는 우도등대나 산지등대 같은 근대 등대와 함께 민간 등대인 도대불을 자세히 소개한다. 아울러 일본인의 주거 편의를 위해 계획된 일식주택과 일제강점기 후반에 건설된 알뜨르비행장, 동굴진지, 고사포진지 같은 군사 유적들도 돌아본다.

2부 ‘해방 전후 혼란기에 탄생한 근대건축물’에서는 제주4․3사건과 관련한 유적들, 이를테면 4․3성이나 학살터, 토벌대 주둔지 등을 둘러보고, 육군 제1훈련소와 중공군 포로수용소 유적, 제주에서만 유행했던 이시돌식 주택의 자취를 차례로 찾는다.

3부 ‘재건에서 발전으로, 사회 안정기에 구축된 근대건축물’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애착을 가지고 조성했던 국립제주송당목장 이야기를 비롯해 제주시청․제주도청 같은 공공시설물, 옛 현대극장, 제주시민회관, 보훈회관, 동문시장+동양극장 같은 대형 문화공간들의 건축 배경과 그 특징을 알아본다.

4부 ‘근대건축가와 제주’에서는 제주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대표 건축가인 김태식, 김중업, 김한섭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이 제주에 남긴 건축물들과 함께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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