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 부착된 건물번호, 천차만별 도로명주소

 2014년 1월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됐다. 하지만 이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문화였던 지번주소를 철회하자는 공감대가 컸고, 좀 더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당위성이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시행이 되었다.
새롭게 시행된 도로명주소는 외국 여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써오고 있는 주소 체계다. 영국은 1666년 런던에서 대화재가 일어난 뒤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도로명주소를 쓰기 시작했고, 북한도 1960년대부터 도로명주소를 쓰고 있다. 이 주소체계의 편리성이 알려지면서 현재 대부분의 나라가 도로명주소를 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는 일본만 지번주소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주소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판단도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늦은 감이 있다.
기존 지번주소는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세금을 걷기 위해 토지를 나누면서 번호를 붙인 ‘번지수’를 사용하면서 자리잡았다. 처음 시작은 토지 하나에 건물 하나였지만, 이후 건물이 많아지면서 번지수를 추가해 쓰게 된 것이다. 결국 번지수 순서가 복잡해지면서 번지수만 보고는 위치를 찾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고, 주소를 쓰는 새로운 방법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새로운 도로명주소는 도로의 폭에 따라 40m 또는 8차로 이상은 ‘대로’라고 호칭하며, 40~12m, 2~7차로는 ‘로’, 기타의 도로는 ‘길’로 구분돼 사용된다. 아울러 건물번호 또한 도로구간별 기점에서 종점방향으로 20m 간격으로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번호로 표기한다.
국내 환경이 선진국의 도로, 주택환경과 확연히 다르지만 지번주소를 사용하던 경우보다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면 건물의 위치나 주소를 찾기에 간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바뀐 도로명주소를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 주소를 다시 외우고 변경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귀찮아서 그럴 수 있다. 한 곳에 오래 머문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불편할 수 있다. 도로명주소 전면 사용으로 모든 공공기관에서는 도로명주소로 업무를 처리해야하며 국민들도 전입, 출생, 혼인, 사망신고 등 민원 신청에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은 변화에 대한 초기부적응 현상으로 보인다.
도로표지판 크기와 부착 위치 등을 상세하게 기획하고 규격화해 국민들이 사용하면서 편리함을 몸으로 느끼게 만든다면 빨리 와닿을 터인데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부착된 건물번호나 천차만별로 다른 도로명주소는 새로운 주소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는 것은 편의성을 더하기 위함이다. 이는 사용하는 국민들이 몸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관계 당국은 규격화되지 않은 부착방식을 당장 고쳐야 한다.
국내 한 문학 교수가 네덜란드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했다가 ‘라펜불그가 21’이란 도로명주소만 갖고 데카르트가 374년 전 살았던 집을 손쉽게 찾았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길을 따라 이름을 붙인 도로명주소를 쓰기 때문에 집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도로명주소의 좋은 뜻과 현실화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민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기왕에 엄청난 예산을 들여 하는 사업이라면 이런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게 더 꼼꼼하게 진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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