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규모, 높은 신뢰도로 글로벌 수송 인프라 구축

세계 최대의 국제 택배 전문 기업인 UPS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샌디스프링스에 본사를 둔 운송 및 물류 서비스 업체로 매주 180만 고객에게 우편배달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세계 2,000만 개 국가 및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UPS는 방대한 규모, 높은 신뢰도로 글로벌 수송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전 방위적이고 경쟁력 있는 서비스 체계를 확보했다.

UPS의 정식 명칭은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United Parcel Service)다. 1907년 19세의 짐 케이시(James E. Casey)와 18세의 클로드 라이언(Claude Ryan)이 빌린 100달러로 워싱턴 주 시애틀에 ‘아메리칸 메신저 컴퍼니(American Messenger Company)’라는 이름의 회사를 창립해 자전거로 메모를 전달하고 물품을 배달한 게 그 시초다. 이후 이들은 1913년 배달차인 T Ford를 구입해 더 많은 물품을 배달할 수 있게 됐고, 1918년에는 시애틀의 대형 백화점 세 곳을 고정 고객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19년에는 최초로 시애틀을 넘어 오클랜드, 캘리포니아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유나이티드 파슬 서비스(United Parcel Service)’로 이름을 바꿨다.

포장물 처리를 위한 최초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UPS는 1922년부터 택배 사업을 시작했다. 소포와 비슷한 비용으로 일일 픽업 전화, 추가 배달 시도, 배달하지 못한 물건의 자동 반송 등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을 확보해 나갔다. 1924년에는 미래를 위해 기술적인 혁신을 감행했다. 그것이 바로 포장물 처리를 위한 최초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다. 처음에는 로스앤젤레스 주변의 작은 지역으로 국한됐던 일반 운송업체 서비스가 이로 인해 점차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지역까지 확장됐다. 동시에 소매 배달 서비스도 미국 태평양 연안에 있는 모든 주요 도시로 넓어졌다. 1929년에는 비행기를 통해 소화물을 배달하는 ‘유나이티드 에어 익스프레스’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대공황의 여파로 8개월 만에 중단해야만 했다. 이때 중단된 항공 운송은 1953년에 재개됐다.
1930년에 뉴욕을 비롯해 미국 동부와 중서부에 있는 주요 도시에도 운송 서비스를 시작한 UPS는 1940년대까지 소매상점으로 서비스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러나 1950년대 초반, 소매상점 계약서비스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UPS는 새로운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공동 운송업체’였다. 모든 고객에게 사적이고 상업적인 포장물 모두를 배달할 수 있는 공동 운송업체 권리를 취득한 UPS는 서비스를 확장하기로 결심했고 이는 타 업체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UPS는 ICC(Interstate Commerce Commission)의 규제에 직접 대응하게 됐고, 1952년, 국가 미국 상무 위원회와 ICC의 허가 없이도 수행이 가능한 도시에서 공동 운송업체 영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시카고는 캘리포니아 이외 지역에서 UPS가 공동 운송업체 서비스를 제공한 첫 번째 도시가 됐다.

자유로운 운송 권한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
1953년 UPS는 항공 운송을 재개했다. 이로서 동부 및 서부 연안에 있는 주요 도시에 이틀 만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시기의 운송에는 많은 제한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포장물이 최종 도착지에 도착하기 전에 몇 개의 운송업체 사이에서 발송인이 강제로 전송해야 하기도 했다. 거쳐 가는 주 경계마다 연방 권한이 필요했고, 주마다 경계 내에서 발송물 이동을 인증해야 했다.
UPS는 1970년대까지 자유로운 운송 권한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결국, 1975년에 몬타나와 유타 사이의 주 간 서비스를 시작하고 주 범위를 애리조나, 아이다호 및 네바다에 있는 부분 서비스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또한 이들 5개 주에서의 서비스를 태평양 연안 및 모든 주에서의 기존 서비스를 사용하여 동부에 연결할 수 있는 권한도 받았다. 결과적으로 UPS는 48개의 contiguous United States에 있는 모든 주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초의 발송물 배달 회사가 됐다.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던 UPS는 1985년 오버나이트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UPS Next Day Air 서비스를 48개 주 및 푸에르토리코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미국과 유럽 6객과 연대해 국제 운송 항공 소화물 및 서류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지방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도 이 시기다. 그리고 1988년, UPS는 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의 권한을 받아 자체 항공기를 운영할 수 있게 됐으며, 공식적으로 항공사가 됐다.
UPS 항공은 설립되면서 초창기에 아시아와 유럽, 미국을 연결하는 41개 국가 노선을 구축하기 시작했으며, 제트 항공기를 확대하기도 했다. 루이빌 허브 공항 이상의 네트워크가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록퍼드, 일리노이 주, 필라델피아, 댈러스, 콜롬비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온타리오 주, 캘리포니아 주까지 사세를 확대했다. 2000년에는 에어버스 A300-600RF 화물기가 처음으로 운항하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항공 운송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최초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취항하면서 일주일에 6일 운항했다. 그리고 2003년, 비행기는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 도장이 변화되면서 현재의 로고로 수정됐다.
UPS 항공은 FAA 역사상 가장 빨리 성장한 항공사다. 필요한 모든 기술과 지원 시스템이 1년여 만에 형성됐다. 오늘날 UPS 항공기는 미국에 있는 가장 큰 10개의 항공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오버나이트 배달을 보증하는 최초의 회사
승승장구하던 UPS는 1990년대 말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운송 사업은 여전했지만 새로운 서비스에 초점을 두기 시작한 것. 회사의 전문가들은 전세계 상거래가 가능하도록 주축이 되고 상거래를 구성하는 물품, 정보 및 자본의 촉진 작용을 하도록 했다. 이러한 새 서비스 제안의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UPS는 전략적으로 기존 회사를 확보하고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회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UPS Logistics 그룹을 만들어 전세계 공급망 관리 솔루션과 고객 개인의 필요성에 맞춘 서비스 자문을 제공했고, SonicAir를 인수해 오버나이트 배달을 보증하는 최초의 회사가 됐다. 1998년에는 UPS Capital을 설립해 포괄적인 통합 재무 제품 및 서비스 메뉴를 제공했다. 그런가 하면 1999년 11월10일에는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 UPS의 더 강화시켰다.
2000년대에 들어서 UPS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이 때 UPS는 직접운송 요율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러한 점포들은 현지에서 독자적 소유권으로 운영됐으며 지속적으로 여러 가지 우편 및 비즈니스 서비스를 동일하게 제공했다. 편의성과 세계 수준의 서비스 면에서도 동일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계속 확대합해 나간 UPS는 유럽과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지의 고객들에게 정시 서비스 및 공급 체인 서비스가 주는 차원 높은 다양한 혜택을 누리게 했다.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항공 허브인 월드포트와 독일 쾰른에 있는 유럽 항공 허브도 확충했다. 또한, 아시아가 주요 성장 타깃으로 떠오름에 따라 2005년 미국과 중국 광저우 간에 최초의 논스톱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고, 같은 해 조인트벤처 사업의 중국 측 파트너가 보유한 주식을 인수해 중국의 대외 교역의 80% 이상을 담당하게 됐다.
공격적인 인수를 통해 다양한 시장으로 진출도 시도했다. 1999년에 챌린지 에어(Challenge Air)를 인수하며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특송 항공 화물 사업자가 된 UPS는 2001년에는 MBE를 인수했는데, MBE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우편 서비스 및 각종 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매점이었다. 이 인수를 통해 2년 후 미국에 위치한 약 3,000개의 MBE는 The UPS Store로 재탄생했다. 이에 UPS 발송 서비스를 정상가 보다 낮은 가격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멘로 월드와이드 포워딩(Menlo Worldwide Forwarding)사를 인수해 중량물 항공화물 수송 능력까지 더하게 됐으며, 2005년에는 오버나이트(Overnite)사를 인수, UPS의 북미 지역 육상 화물 운송 서비스를 확장했고, 영국 및 폴란드 기업도 인수를 통해 유럽 시장에서의 성장 기회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처럼 지난 시간 동안 UPS는 항운, 해운, 육운 및 전자 서비스 제공업계의 선두주자로 성장하며 ‘변신의 귀재’라는 존재감을 확인했다.

“우리의 갈색 무기들은 계속 움직인다”
UPS의 매출액은 지역 또는 운송 방식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지역적으로는 미국 국내 서비스가 총 수익의 89%를 차지하며 유럽 및 아시아 서비스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방식에 따라서는 미국 내 육상 수송이 54%, 항공 수송이 19%를 차지하고 있다.
UPS의 시스템은 고도로 자동화돼 있다. 196km의 컨베이어 벨트들이 소포들을 운반하는데 이 소포들은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운송될 비행기로 이동된다. 1시간 내에 34만 개의 소포들이 운송 지역에 따라 분류돼 벨트를 타고 이동, 순식간에 100여 대의 UPS 비행기를 통해 해당 지역으로 보내진다. 뿐만 아니라 자체 정보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소포에 부착돼 있는 스마트 라벨의 정보를 카메라들이 읽어 그것을 분류 시스템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거쳐 100%에 가까운 정확성으로 소포들이 분류된다.
「언덕 위로, 골짜기 위로 그들이 콘크리트길을 망가뜨려도 우리의 갈색 무기들은 계속 움직인다. 의심하지 말고 큰 소리로 외쳐라. 서비스는 어디든 간다고. 우리 무기들이 계속 움직이는 한 하이하이 히. 갈색 셔츠의 기병대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큰소리로 외쳐라. 어디로 가고 있든지 당신은 언제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갈색 무기들은 계속 움직인다는 것을.」 이것은 UPS의 노래다. 여기서 ‘갈색 무기들’은 UPS의 운송 수단이다. 길이 없어도 어디든 간다는 이 노래는 UPS의 오늘이자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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