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45호=유광남 작가) 

맑은 봄날.

봄의 전령(傳令)으로 찾아온 소녀의 신분이 놀랍다.

오랑캐 공주!

경이로운 몸놀림의 그림자 공주!

상상도 할 수 없는 몸짓으로 다가와,

나의 모든 비밀을 송두리 채 빼앗아간 오랑캐 공주.

하늘이 이순신의 나라를 도우시는 건가?

이 중요한 시기에 그녀의 등장은 구원이다.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년 정유년 3월 2일 임진)

 

사야가 김충선은 육조(六曹)거리를 지나 무악재로 방향을 잡았다. 이순신의 이송 함거보다도 앞서 올라 온 연유는 하루라도 빨리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성공하여 위태로운 이순신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난 기필코 해 낼 것이다!”

그는 새벽마다 다짐했다. 아니, 눈을 뜨고 있을 때와 눈을 감고 잠을 청할 때에도 이 사내는 주문처럼 암송했다.

“이순신, 조선의 아버님을 구해 낼 것이다!”

귀화한 일본인 철포대장 사야가 김충선의 집념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러한 사내가 아니라면 결코 조국 일본을 배신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영웅의 나라! 이순신의 나라를 세울 것이다!”

한성에 입성한 후 김충선은 지난 7년 간 조선에서 교류했던 인맥을 하나씩 들춰내어 접촉했다. 그리고 오늘 승정원의 주서(注書)로 근무하고 있는 구대일(具大一)을 만나기로 했다. 그는 김충선이 간자로 활동하던 1590년 경인년(庚寅年) 당시에 한성의 기방(妓房)에서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내던 화류계의 친구였다.

“여기일세!”

구대일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의관을 제대로 갖춰 입은 그에게서는 예전의 풍류를 즐기던 호색의 기질은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김충선이 상대의 아래 위를 훑어봤다.

“선비는 하루를 보지 않아도 달라진다고 하던데...자네를 두고 하던 말인가?”

"그런 말이 있었던가?”

김충선이 유쾌하게 웃으며 구대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지어 낸 말일세. 하하하!”

“예끼, 이 친구...여전히 사람을 놀리는 재주는 타고났어.”

그러나 김충선은 진지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몰라보게 달라졌어. 누가 구대일이 이토록 멋진 장부가 되리라고 생각했겠나? 개망나니 일구(一狗)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구대일은 과거의 일을 들춰내자 펄쩍 뛰었다.

“사람을 그리 잡나! 기억 못하는 일일세.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어디 내 신분이 보통인가?”

김충선이 짐짓 엄살을 부렸다.

“옳거니. 승정원의 정 7품이 아니신가? 주서나리, 몰라 뵙고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부디 용서 하소서.”

“이 친구야, 그리 말하는 자네야 말로 성상께서 직접 자헌대부(資憲大夫)와 성명까지 하사하시지 않았는가? 그런 당상관 나리께옵서 미천한 이 사람을 찾은 까닭이 무엇인가?”

김충선은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무악재 입구의 정자(亭子)에 마주 앉았다.

“몰라서 묻는 건가? 아니면 일구답게 꼬리를 감추는가?”

구대일은 언중유골(言中有骨)의 한 마디에 그만 꼬리를 드러내어 놓는다. 그는 이미 눈앞의 일본인 항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지금의 신분에 자신이 오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과거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순신통제사를 구명(求命)하러 왔겠지. 그것이 아니라면 아직도 전란이 멈추지 않았는데 자네가 한성에 올라왔겠는가?”

“날 좀 도와줘야겠어.”

김충선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승정원 주서 구대일은 품안을 뒤적이더니 문건 한 장을 꺼내주었다.

“보시게.”

김충선은 곱게 접혀진 종이를 받았다.

“이것이 무엇인가?”

“도움이 될 런지는 모르겠으나 통제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가져왔네. 알다시피 말단 관직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물론 이걸로 자네에게 진 신세를 갚을 수는 없지만 말일세.”

구대일은 이미 김충선이 만나자는 전갈을 받은 직 후부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던 터였다.

“어제 상감께서 제수 하셨네.”

그가 넘겨준 문건은 놀랍게도 하루 전에 왕 선조가 관직을 제수한 중신들의 명단이었다.

 

이항복(李恒福)을 병조 판서

김명원(金命元)을 형조 판서

이덕형(李德馨)을 공조 판서

김수(金晬)를 호조 판서

심희수(沈喜壽)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유중(李有中)을 예조 참의

정광적(鄭光績)을 승정원 우승지

권경우(權慶祐)를 사간원 헌납

이상의(李尙毅)를 사헌부 집의

 

“그들을 회유해야 통제사를 구명할 수 있을 것일세. 물론 내가 줄을 댈 수 있는 당상관은 없고. 면목 없군.”

사야가 김충선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구대일을 향해서 환하게 미소를 보내 주었다.

“무슨 소리야? 이 얼마나 훌륭한 자료인가? 고맙네. 이들 신료(臣僚)중에 혹 쓸 만한 사람은 있는가? 그래도 평판이 좋은 중신(重臣) 말일세.”

구대일은 신중한 기색이었다. 과연 그는 젊은 시절과는 아주 다르게 변해 있었다. 어쩌면 6년 에 접어드는 조일전쟁(朝日戰爭)이 미친개와 다름없던 한량(閑良)을 변화 시켜 놓았는지도 몰랐다.

“아마 몇 명은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걸세.”

사야가 김충선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하며 병조 판서로 내정 된 이항복을 지명했다.

“오성대감! 권율 도원수의 영서(令婿)!”

“신뢰할 수 있는 명문가문이며 영특하고 분별력이 있는 어른이시지. 경인년에 자네도 만났었지 않은가?”

사야가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때는 귀화(歸化) 하기 전이었고 자신의 신분을 극비리에 감추고 행동하던 시기였다.

“그래.”

“조선의 병권을 장악한 판서에 올랐으니, 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구명을 청한다면 혹시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승정원의 관리 구대일은 사야가 김충선이 원하는 나라를 감히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김충선은 그와 헤어지기에 앞서 수중에 잡히는 대로 은자를 꺼내 구대일의 손에 쥐어 주었다.

“다시 만날 때는 예전의 기방으로 하세.”

그러자 구대일은 화를 버럭 냈다.

“치우게! 날 친구로 생각 한다면 이건 아주 큰 모욕 일세.”

구대일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친구의 강경한 태도에 놀라 김충선은 슬며시 은자를 회수하였다.

“무안하게 왜 이러는가?”

“내 어찌 지난 경인 다음 해인 신묘년(辛卯年)에 자네에게 졌던 은혜를 잊었겠는가? 그때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난 이미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을 거야.”

임진년(壬辰年 ) 왜란이 발생하기 한 해 전인 신묘년에 구대일은 술에 만취하여 지나가는 양반 댁 규수를 기방의 기녀로 착각하여 희롱한 일이 있었다. 일이 잘못 되려니까 그 광경이 포청의 종사관에게 그만 목격되어 그 자리에서 감옥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사대부 여인을 희롱한 죄는 쉽게 용서 받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적어도 장독(杖毒)이 오를 데까지 곤장(棍杖)을 맞아야 하고 감옥에서 3년은 옥살이를 해야 했다.

“끔찍한 형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 다음 날 술에서 깬 구대일은 기절초풍을 하고 말았다.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살아가기를 단념하고 자살(自殺) 이란 극단적인 방법까지 생각 했었다. 이런 절망 속에서 구대일을 구해 준 것이 바로 일본인 간자였던 사야가 김충선이었다.

“마침 자네의 운이 좋았어. 내가 그 양반 댁 규수를 알고 있었거든.”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새삼 떠올리며 마주보고 함께 웃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그 규수를 자네가 어찌 알고 있었던가 하는 점일세.”

“그때 내가 설명해 주지 않았었던가?”

구대일이 고개를 저었다.

“직후에 자네는 사라졌어!”

사야가 김충선은 순간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회한(悔恨)의 감정을 드러내며 장탄식을 토해냈다.

“변고(變故)가 발생 했다네!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만 생각만 하여도 참기 어렵군.”

김충선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구대일은 몹시 궁금하였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떤 상처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자신을 친구로 인정한다면 언젠가는 토설(吐說) 하리라 마음먹으며 정자에서 먼저 일어났다.

“또 봄세.”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야.”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