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여행에세이 -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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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여행에세이 -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
  • 허재호 칼럼위원
  • 승인 2018.09.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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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셜록 홈즈요. 남들이 모르는 일을 알아내는 것이 내 직업이지.”

(시사매거진245호=허재호 칼럼위원) 지난 3월 영국 남부의 솔즈베리 어느 쇼핑몰 벤치에서 60대 노인과 30대 여성이 빈사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된다. 검사 결과 이들은 1970, 80년대에 옛 소련이 군사용으로 사용했던 맹독성 신경작용제 ‘노비촉’ 중독이었다. 은퇴한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로 신원이 확인된 두 부녀의 암살 배후로 영국과 미국은 러시아 정보 당국을 지목한다. 하지만 신원을 숨긴 용의자는 오리무중에 사건의 추이는 전혀 예상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논리적인 추론에 의해 사건을 해결하고 규명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솔즈베리에서 차에 몸을 싣고 북쪽으로 2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 런던의 베이커 가 221B 번지로 향한다. 호흡을 한 후 현관을 신중히 노크한다. 자문 탐정과 그의 충실한 파트너가 이 일에 흥미를 갖고 꼭 시간을 내주기를 고대하며...

 

 

런던 베이커 가 221B 번지의 하숙인들

런던 지하철을 타고 베이커 스트리트 역에 내리면 셜록 홈즈의 동상이 우선 우리들을 맞이한다. 2.8m 훤칠한 키에 사냥 모자를 눌러 쓰고 파이프를 문 채 미간을 찡그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특유의 포즈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5분 정도 더 걸으면 셜록 홈즈 박물관에 다다른다. 1991년에 개관하면서 영국우정공사에 의해 221번지를 부여받았고 현재는 221B라는 문패에 홈즈와 왓슨의 하숙집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내건 채 손님들을 맞고 있으며 개관 당시에 이 박물관은 두 사람이 살았던 거실을 본뜬 2층 방 하나와 전시품을 모아놓은 방 하나, 이렇게 소박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서재와 침실을 겸한 방 세 군데와 밀랍인형들이 들어찬 전시실, 거기에 기념품 숍이 더해진 아담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실내에 들어서면 진짜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사용했을 것 같은 앤틱한 가구와 중후한 느낌의 짙은 색 벽지, 오래 된 벽난로 같은 것이 아늑함을 주면서도 생활감 있게 꾸며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창밖의 전망 또한 런던의 우중충한 날씨와 합쳐져 으스스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협소한 거실, 서재, 침실 등의 연속이라 언뜻 보기에는 그저 그런 볼거리의 밋밋한 공간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원작 내용을 재현한 밀랍인형들의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리얼함, 변색된 노트에 휘갈겨져 있는 낙서 내용의 깨알 같음에 눈을 빼앗기다보면 한 발 떼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직원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오르며 첫 발을 옮길 때부터 이미 홈즈의 추리와 연결된 장치를 만나게 되는 식이다.

단편 ‘보헤미안 왕국 스캔들’을 보면 홈즈가 왓슨에게 ‘본다는 것’과 ‘관찰한다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수를 물어보는 장면이 나오니 정답이 몇 개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보실 것. 보지 마시라, 관찰하시라. 애써 관찰하시는 만큼 만만찮은 즐거움이 그대의 것이 되리니. 박물관도 입장 요금을 내야하지만 기념품 상점 또한 가격이 그리 싸진 않은 편이다. 하지만 사냥 모자와 담배 파이프, 홈즈 반신상이나 캐릭터 피규어, 바이올린 모형, 베이커가 221B 표지판 등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구하기 쉽지 않은 물건들로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가격이 많이 높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 셜록 홈즈-그림자 게임의 포스터 , BBC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들. 조인스닷컴.

“결혼을 시켜도 되고 죽여도 되고 뭐든 마음대로 하시오!”

미국의 배우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질렛이 보낸 원작의 설정 변경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서신에 작가인 코난 도일은 위와 같이 답했다고 한다. 애초에 도일은 홈즈에 대해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그도 우리 한국 독자의 경우가 어떠했나까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최초로 셜록 홈즈를 체험하게 된 경위를 기억하시는지? 홈즈의 활약상과 우리들의 첫 만남은 대부분 아동 소설의 형식을 통해서였지 않았을까. 범죄를 소재로 하다보니 본격 문학으로 대접받지는 못했지만 범인을 응징하는 권선징악적인 내용에다 논리와 추리를 다루는 교육적인 장점을 인정받아 많은 작품이 마구잡이로 번역 소개 되었다. 196, 70년대 열악한 출판업 실정에 저작권 개념도 없던 시절이니 원전 완역은커녕 일본어 중역에다 발췌 번역이 횡행했을 터, 홈즈와 왓슨이 주고 받는 위트와 재치가 고루한 아저씨 말투에 실려 번역되었을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읽었던 것이 과연 코난 도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워진다. 전편이 완역되어 출판되었을 때 각 작품마다 줄거리는 본 듯한데 분위기가 예전 독서 기억과는 정말 상전벽해 식으로 달라졌다는 느낌을 한 두 번 받은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전집이 출간되고서는 우리 대중들도 이 명탐정 이야기를 어느 정도 새롭고 현대적인 내용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셜록 홈즈 하면 다소 올드하고 고전스런 이미지를 떨어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홈즈의 팬덤을 폭발적으로 키우고 원작의 이미지까지 쇄신한 계기가 된 작품들이 영상 매체 쪽에서 탄생했으니 워너브러더스 영화사가 제작한 <셜록 홈즈> 영화 두 편(2009~2011)과 영국 BBC가 제작한 4시즌짜리 드라마 <셜록>(2010~2017)이 바로 그것이다.

두 작품은 원작을 대하는 태도부터 매우 대조적인 개성을 지니고 있다. 영화 <셜록 홈즈>는 시대 배경만 원작과 같을 뿐 배우들의 연기나 액션 등은 현대적인 느낌을 많이 섞어 추리물보다는 어드벤처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나 <스내치> 같은 가이 리치 감독 전작의 터치가 그대로 살아있는 과장된 스턴트는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극장에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미 <아이언맨>으로 유명세를 탄 홈즈 역의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홈즈가 할 법한 행동과 대사를 속사포처럼 내뱉지만 희한하게도 별로 홈즈 같아 보이지 않는다. 홈즈 캐릭터가 지나치게 배우의 개성에 묻혀버렸기에 원작의 팬들은 아예 홈즈 영화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영화 관객들은 캐릭터의 활용을 친근하게 느껴서인지 액션 히어로 같은 홈즈를 부담 없이 소비하고 있다. 덕택에 2편 이후 다소 공백이 있긴 했으나 2020년 개봉을 목표로 3편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면, 드라마 <셜록>은 어떨까. 영드 <닥터 후>의 제작진 마이크 개티스와 스티브 모팻이 셜로키언으로서의 아우라를 주체하지 못한 채 써내려가고 있는 홈즈의 팬픽 같은 작품이다. 셜록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는 달리 첫 시즌을 연기할 때만해도 배우로서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았었다. 원작의 홈즈보다 조금 더 철없고 감정적이며 허세스러운 데가 있는 청년의 모습, 말하자면 원작 홈즈의 캐리커쳐 버전을 연기하고 있다고 할까. 강한 추리력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캐릭터라니 분명히 현대 버전이면서도 곰곰이 뜯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원작의 홈즈에 충실하다. 그러니 원작의 팬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주인공 외에 시각적인 부분을 하나 지적한다면 스마트폰 문자 채팅을 스크린에 띄워 추리 과정을 관객과 공유하는 연출은 디지털 시대를 반영한 21세기 셜록 버전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무튼 이 버전에서 앞으로 또다시 파생될 것 같은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되기도 한다.

 

스위스 마이링엔 소재 셜록 홈즈 동상. 스위스 정부 관광청 제공

어디에서나 찾아 갈 수 있는 221B

런던 베이커 스트리트 역보다 10년이나 먼저 홈즈의 동상이 세워진 곳이 있다면 과연 어딜까? 단편 ‘마지막 사건’의 무대가 된 라이헨바흐 폭포가 있는 스위스의 마이링엔 마을이다. 루체른에서 인터라켄을 향하는 중간 쯤에 위치한 마이링엔은 크고 작은 폭포로 잘 알려져 있던 곳이지만 이젠 셜록 홈즈의 마을로 더욱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홈즈 동상과 박물관은 물론 홈즈 호텔, 홈즈 펍까지 있으며 심지어 이곳 거리의 이름도 베이커 가 221B이다.

역사소설을 써서 성공하려했던 도일은 홈즈에 매달리느라 자신의 재능이 고갈되는 것이 너무나 싫어서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홈즈가 숙적 모리어티와 격투 끝에 사망하는 것으로 ‘마지막 사건’의 끝을 맺고는 더 이상의 홈즈는 없다고 공공연히 선언을 해버렸다. 그러자 충격과 슬픔에 빠진 홈즈의 팬들 가운데 이 작은 마을까지 삼삼오오 찾아와 폭포에 국화를 바치며 애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발길은 계속 되어 마이링엔 전체에 관광 특수가 일어날 정도로 거센 흐름이 되었다. 홈즈를 극약처방 내리듯 퇴장시키지만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커질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결국 도일은 압박감을 떨치지 못하고 다음 작품 <바스커빌 가의 개> 연재를 통해 회상 속에서 활약시키는 식으로 슬그머니 홈즈를 작품 속으로 복귀시켰고 팬들은 대환영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홈즈가 살아난 이후 오히려 라이헨바흐 폭포는 부활의 장소로 거듭 났고 명실공히 홈지언, 셜로키언들의 성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마을의 엄청난 부흥을 기뻐한 사람들이 뜻을 모아 홈즈의 100주기인 1991년에 맞춰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마지막 사건’ 속 홈즈의 사망일은 1891년 5월 4일이다.) 런던의 박물관이 홈즈의 생활상을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마이링엔의 박물관은 도일의 은혜를 기리자는 뜻이라도 있는 것인지 홈즈보다는 도일을 알리는 데 더욱 중점을 둔 듯 보인다. 입구부터 도일의 초상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다 지하로 내려가면 도일의 생전 사진 자료들이 매우 다채롭게 전시되어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는 망원경도 설치되어있어서 라이헨바흐 폭포의 위용을 관측할 수도 있다. 폭포 쪽에도 전망대는 물론, 폭포 위쪽을 조망할 수 있는 하이킹 코스가 개발되어있고 반대편 쪽에는 마이링엔 마을 전체를 굽어 볼 수 있는 장소도 완비되어있다. 박물관 앞에서 홈즈와 모리어티의 격투가 벌어진 장소까지 하이킹 기준으로 한 두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숙적들의 쫓고 쫓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땀까지 흘려본다면 입체적인 체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위스가 너무 멀어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되신다면 부담 없이 들려볼 수 있는 또 다른 221B는 어떠신지? 서울 강남에 위치한 커피 라운지 ‘221B’가 그 곳으로 드라마 <셜록> 관련 그림 액자, 머그잔들과 다양한 전시물, 특이한 메뉴의 음료까지 즐길 수 있다. 강남구청역을 나와 학동역 방향으로 잠시 걷다가 골목으로 접어들면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셜록의 청동상이 얌전히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베니’의 안내를 받아 221B 팻말 아래로 내려가면 소박한 정원을 낀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카페 공간이 나타난다. 홈즈 서적은 물론, 셜록과 왓슨의 피규어, 에코백 등 심지어 런던 홈즈 박물관에서 온 기념품 숍 상품 봉투까지 진열해놓고 있어 즐거움을 준다. 메뉴판을 보면 셜록 커피, 왓슨의 해독 주스, 마이크로프트 빙수, 아이린 라떼, 모리어티 스무디 등이 곳곳에 숨어있으니 잘 골라내어 드셔보시길.

무엇보다 이 카페의 가장 인상적인 포인트는 셜록의 거실을 살짝 흉내 낸 응접실 한 벽면에 설치해놓은 거울형 디스플레이다.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셜록 포스터나 스틸 컷, 또는 드라마 영상을 번갈아 모니터에 띄울 수 있게 되어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즐기는 데 모자람이 없다.

 

강남 커피라운지 ‘221B' 입구의 셜록상.

홈즈 대 모리어티인가 아니면 도일 대 홈즈인가?

글 서두에 현실에서 현재진행형인 솔즈베리 사건을 꺼내서 허구의 인물인 셜록 홈즈와 겹쳐본 것은 현실이 만들어낸 허구와 허구가 만들어낸 현실의 부딪힘이 어떤 모습일지 한 번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홈즈는 모리어티와 숙적으로서 대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도일은 자신이 창조한 홈즈와 내내 대결해야했다. 홈즈는 모리어티를 극복해냈다고 하겠으나 도일은 과연 끝끝내 홈즈를 이기지 못한 것일까.

코난 도일은 인생의 마지막 4분의 1을 심령술의 신봉자로 살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미신과 속임수를 이성적 추리로 돌파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창조해낸 작가이다. 홈즈의 건조하지만 인본주의적인 논리 추론을 사랑하고 응원했던 수많은 독자들은 도일 말년의 변모에 당황스러워하며 저항했다. 세상을 뜰 때까지 도일은 문학계, 과학계, 종교계로부터 쏟아지는 조롱을 받으며 온갖 공격을 다 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는 심령술을 영적인 계시를 받는 도구로 믿어 의심치 않았고 진리를 찾아내고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코난 도일은 홈즈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그리하여 결국 승자는 누구인가. 도일인가 홈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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