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편… 10월말 국회 특위서 논의 추진키로
(시사매거진245호=김민건 기자) 사회보험. 국가의 책임하에 노령이나 질병, 실업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더불어 일정이상의 소득 보장을 위해 보험에 가입하도록 강제한 사회보장제도이다. 이는 사회보장정책의 주요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자유의사에 의해 가입하는 것이 아닌, 법에 의한 강제성을 띠고 시행하는 보험제도를 총칭한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4대 사회보험은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그리고 연금보험이다. 국민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국민연금.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국민연금… 그리고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발표..노후소득 보장이냐 vs 기금의 안정화냐 논쟁은 시작됐다.
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제안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나오자 국민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현재 635조 원인 국민연금 기금이 2041년에는 1778조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격하게 감소해 2057년에 는 기금이 완전하게 고갈된다는 것이 개혁안의 이유이자 주요 골자였다. 이는 2013년에 발표했던 ‘3차 국민연금 재정계산’(2060년) 때보다도 3년 앞당겨진 것이어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1988년부터 도입된 국민연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보장수준이 낮아지는 역사를 보여왔다.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은 2008년 50%로 내려갔고, 이후 해마다 0.5%p씩 줄게 되면 2028년에는 40%가 된다. ‘소득대체율’이란 전체 가입기간 평균 소득대비 연금수령액을 의미한다.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하며 40년간 가입한 사람의 평균 소득이 100만 원 이라고 가정하면 수령할 때는 국민연금으로 40만 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도입된지 불과 30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는 법에 명시된 소득대체율보다 한참 못 미치는 24%에 불과한 현실이다. 이번 국민연금 제도 개편안의 가장 큰 숙제는 ‘국민의 불신’이다. 노후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현재의 9%에서 11%~13.5%로 올리고 의무가입연령(60세→65세)과 수급연 령(65세→67세)을 상향조정 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편을 해야 한다는 정책자문안이 나오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연금 관련 청원이 8월 21일 기준 약 7200여 건이 올라왔다. “더 내고 덜 받게 국민연금 제도를 개정할 바에는 차라리 폐지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못 받게 되는가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의 영향으로 2057년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추계가 되고 있어 20~30대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 다. 39년 후면 지금 한창 일하고 있는 2030세대가 국민연금을 수급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법 상 ‘국가의 책무’를 살펴보면 <국가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명시적인 국가의 지급보장 책임 규정은 없는 상태인 것으로 풀이된다. 공청회에서 공개된 자문위원회의 국민연금 발전 방안에 의하면 기금이 고갈 되도 연금은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 만 고갈 시점 이후 세대가 감당키 어려운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 현재까지의 추세대로라면 2057년 가입자는 소득의 24.6% 2088년엔 28.8%까지 연금보험료율이 오르게 되며, 지난해 출산율(1.05명)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057년(26.4%), 2088년(37.7%)로 치솟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5년마다 이뤄진 국민연금 재정 추계를 진행 할 때마다 기금고갈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국민반발을 우려해 늘상 문제를 덮는데만 급급했고, 근본적 해결책보다는 소득대체율 하락, 연금수령시기 연장 등을 대책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때문에 연금개혁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떠넘기기식 정책만 내놓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 정부안 마련 돌입… 노후소득보장에 무게 실리나
보건복지부는 3개 위원회가 제시한 자문안을 바탕으로 ‘국민연금제도 및 기금운용 등 전반적인 국민연금 발전방향’을 수립한 뒤 국민연금심의 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부안을 만든다. 정부안은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치게 되고 9월말 경 확정될 예정이다. 제도발전위원회는 70년 뒤인 2088년 1년치 지급분 확보를 목표로 두 가지 개선방안을 내놨다.
첫째는, 소득대체율을 45%로 즉시 인상하고 그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 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9%에서 11%로 2%포인트(P)로 올리는 방안이다. 이때 단기 재정목표기간을 30년으로 정해 보험료율을 조정토록 했다. 이 후 5년마다 재정계산을 통해 향후 30년 동안 적립기금이 적립배율 1배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다. 이번 안은 2013년 재정계산이 바탕이 되므로 보험료는 2034년 12.31%까지 인상된다.
두 번째는, 현행법대로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40%로 만들되 보험료율은 내년부터 10년간 13.5%로 4.5%포인트를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이다. 그리고 수급개시 연령 상향과 기대 여명 계수 도입 등을 통해 약 4%의 보험료율 추가인상효과를 거두자는 방안이다. 두 방안 모두 결과적으로는 ‘보험료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 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방안의 경우, 단계적으로 연금수령 개시 나이를 연장하는 방안도 함께 다루고 있어 국민 반발이 더욱 큰 상황에 정부는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료 인상 불가피 vs 당장 인상은 충격 커 무리
자문위원회는 아무리 지출을 줄이더라도 보험료율 인상 없이는 현실적 제도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과거 3차례의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 시기마다 재정 안정화를 이유로 보험료율 인상 방안이 제시 됐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3년(1차) 때는 보험료 율을 11.85%~19.85%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0%~60%로 조정하 자는 방안이 나왔고, 2008년(2차) 때는 12.49%, 2013년(3차) 때는 12.91%로 보험료율 인상 방안이 나왔지만 모두 불발에 그쳤었다.
사실 소득과 복지 수준을 고려했을 때, 국내 보험료율(9%)은 OECD 국가들 중 최하위로 저렴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OECD 22 개 회원국의 평균 보험률은 15.4%(한국 9%), 40년 가입 기준 평균 소득대체율은 45.7%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8월 21일 국회 보 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보험료율 인상은 정책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거라 생각한다”며, “전문가들(제도발전위원회)은 소득보장을 높이면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고 제기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곧 정부안을 만들 건데 국민들이 동의한다면 보험료율 인상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급보장 명문화 놓고 설전… “군인, 공무원은 명문화돼있는데”
국민연금의 ‘지급보장 명문화’ 문제는 국민연금 개편 때마다 등장했던 이슈다.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과 달리 급여 부족분을 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이 관련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앞서 언급 했듯 국민연금법 제3조는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때문에 형평성을 주장하는 국민들은 국민연금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금이 고갈될 시, 국가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연금을 지급 하겠다는 규정이 법에 명시 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공무원연금·군인 연금·사학연금 등은 기금 고갈시, 국가 세금을 투입해 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명문화되어 시행되고 있어 직역연금들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 국민들의 목소리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분명 국민연금의 지급보장에 대한 부작용도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될 사안이다. 지급보장 명문화가 현 세대와 미래세대 간의 갈등이 우려된다는 일각의 의견과, 특히 국민연금 지급보장이 명문화되면 그리스 등이 겪었던 국가채무로 인한 재정건전성 훼손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장을 법적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청와대와 기재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국가가 국민연금의 지급보증까지 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국가의 잠재부채가 늘어날 수 있다는 논리로 정부는 반대했었다. 그것도 당시 친박계의 핵심이었던 김재원의 원의 주도로 법제화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의견이 설왕설래하는 가운데 8월 21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들의 불안이 크다면 연금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동의를 받겠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2일 보건복지부와 국 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발표를 앞두고 민간전문가 13명과 정부 측 인사 3명으로 구성된 제도 발전위에서 지급책임 규정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 문가위원의 대부분은 명문화에 비판적이었지만 제도를 실제 운용하는 정부 측은 명문화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정부가 9월까지 수 립할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는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가부채로 잡히는 공무원연금의 지급보장 방식과는 다를 것으로 보이며 박능후 장관은 “국가가 채무 부담을 지지 않도록 기술적으로 법안을 고치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폐지?… 오히려 청산비용이 더 들어
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금까지 낸 돈 돌려주고 국민연금 폐지하자”, “개인의 노후 책임은 개인이 질 테니 국민연금을 폐지해 달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폐지는 절차상으로 국민합의를 거쳐 국회에서 국민연금제도의 법적근거가 되는 국민연금법을 없애면 가능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이다. 경제적으로만 보더라도 청산비용이 유지비용보다 훨씬 많이 들고 만일 국민연금을 없애더라도 국민이 더 큰 조세부담을 짊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납세자연맹 추산 결과를 보면 2017년 말 현재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 충당부채(책임준비금)는 1242조 원이다. 반면 현재 적립기금은 절반인 621조 원으로 미적립부채(잠재부채)가 621조 원에 달하며, 이는 이후 세대가 세금 등으로 부담해야 할 빚인 셈이다. 또한 별개의 문제로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기존 수급자와 가입자에게 그동안 거둔 돈을 돌려주려면 현재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수백 조원을 헐어야 하는 점도 큰 문제로 꼽는다.
국민연금 개혁 실패는 정부재정 파탄으로 이어져
번번이 무산됐던 국민연금 개혁이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국민연금은 물론 국가재정 전체가 파탄 상태로 내몰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지난 6월 발간한 ‘한국경제보고서’에 따 르면 사회보장기금을 포함한 한국의 통합재정 수지가 현재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급속한 인구고령화와 공적연금 급여 및 의료·장기요양 지출 증가가 큰 위협요인이라며, 국민연금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현재의 상태가 지속될 경우 2040년에는 순채무국으로 전환하고 2060년이 되면 순채무가 GDP(국내총생산)의 2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국민연금은 물론 국가경제가 붕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경고했다.
OECD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한국 정부는 순채권자로 순금융자산이 GDP의 42.0%이며, 그 중 국민연금 자산이 GDP의 32.9%를 차지했다. 현재 국민연금 납입액이 연금 지급액을 웃돌면서 정부재정을 순채권자로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급속한 인구고령화에 따른 사회지출 증가와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급속히 약화될 것으로 특히 국민연금의 현재 보험료율(9%)이 유지되어 국민연금기금이 적자로 돌아설 경우 국가 재정 또한 급속히 악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러한 OECD 분석은 2013년 3차 재정추계(적자전환 시점 2044년, 기금고갈 시점 2060년)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1988년 전국민 행복시대를 연다는 슬로건 아래 도입되어 올해로 30주년이 된 국민연금. 정치적 부담에 번번이 미뤄왔던 국민연금 제도 개편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수준이 된 만큼 정부 안팎에서도 ‘피할 수는 없다’는 의지가 읽히고 있다. 개편 때마다 대립이 오가는 국민연금의 개혁론에는 분명 험로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소모적인 논쟁을 반복 하기 앞서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과거와 같이 정부가 여론의 반발에 밀려 고통분담을 포기하면 미래세대의 부담은 더욱 가중 될 것이다. 이번 문재인 정부는 과감한 국민연금 개혁안이라는 엉킨 실타래 를 어떻게 풀어낼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