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무죄와 국민적 법 감정의 유죄, 무엇이 옳은 것인가?

(시사매거진245호=이응기 기자)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에 대한 무죄 판결이 화두가 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애정에 의한 일탈인지, 아니면 권력자의 위력행사에 의한 성폭행인지에 대해 1심 법원은 현행법상 처벌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의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여성단체들은 판결에 대해 분노하여 ‘성(性) 편파 수사 규탄 시위’ 했고,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의 도입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공소권자인 검찰은 항소를 통해 법리오해, 사실오인, 심리미진이며 "위력의 적용 여부를 너무 좁게 해석한 게 아닌가 싶다"며 2심의 강한 의사를 밝혔다. 앞으로 진행될 2심에서의 결론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유죄인가. 무죄인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사진출처_뉴시스)

정치가 안희정 “국민 여러분 죄송하다”

안희정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캠프 정무팀장,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제 36·37대 충청남도지사를 역임했다. 도지사 시절 충청 지역민들 사이에서 꾸준히 보여준 행정 능력과 인품 덕에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인지도를 얻기 전부터 전국적으로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는 여론이 조성되고, 더불어민주당의 차세대 대권주자로 승승장구하였으나, 성폭력 사건으로 지난 3월 6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출당 및 제명이 결정되었다. 약 6개월여 간의 검경의 조사와 긴 공판 끝에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안 전 지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안 전 지사는 재판장을 나서며 “국민 여러분 죄송하다. 부끄럽고 많은 실망을 드렸다”며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당국에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다른 말씀은 못 드리겠다”며 법원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정계를 떠난다고는 하지 않았다. 2심, 3심까지 무죄 판결이 나게 된다 하더라도, 과연 다시 정치계에 복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2017년 3월31일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영남권 순회경선에 참가한 안희정 충남지사가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출처_뉴시스)

“위력은 존재했지만 위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보기 의문이다”

지난 3월 안 전 지사는 전 비서인 김지은씨를 상대로 약 7개월여 동안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안 전 지사 변호인단은 ‘위력이 아닌 애정 관계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검찰은 지난 7월 27일 열린 공판에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신상정보 공개 고지 명령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렇다면 무죄가 선고된 이유는 무엇인가?

재판부가 밝힌 무죄의 이유는 피고인이 업무상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를 간음 및 추행하였다거나 강제 추행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할만한 증명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하였다고 한다. 피고인과 피해자가 업무상 상하관계에 있는 등 상호 지위상 위력관계인 점은 인정되나, 피해자의 진술 등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에 대해 간음, 추행 행위를 가했다고 볼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고, 강제추행(기습추행)에 관하여도 공소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는 것이 재판부의 요지다.

1심 재판부는 특히 첫 간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지난해 7월 30일 러시아 출장 당시 상황에 중점을 두고 구체적인 판단 경위를 밝히고 있다. 조병구 부장 판사는 “최초 간음이 어떻게 발생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면밀하게 살펴본 결과 피해자가 전임 비서에게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는 내용에 차이가 있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부장판사는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당시 피고인이 맥주를 들고 있던 피해자를 포옹하고 언어적으로는 외롭다면서 안아달라고 한 것이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고, 간음 피해를 당한 다음 날 아침 피고인이 좋아한다는 순두부를 파는 식당을 찾으려 애쓴 점, 귀국 후에 피고인의 미용사를 찾아가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등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 2월 25일 마지막으로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 대해 “간음 피해를 당하고 오피스텔을 나간 이후 행적과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삭제된 부분이 많아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면서, “당시 피해자가 미투운동에 대해 상세히 인지하고 있던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씻고 오라는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가 ‘최소한 이런 행위는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거나 또는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의 회피를 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조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간음 및 성추행 피해를 당해 수치심, 분노, 불안 등의 심리상태를 겪거나 성적 학대에 의한 그루밍(Grooming: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자행하는 성범죄) 상태 혹은 학습된 무기력 심리상태는 아닌지 등을 살폈으나 그런 상태에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덧붙여서 재판부는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성폭력 범죄 처벌체계 하에선 이런 것만으로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알앤써치의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71%의 국민이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전 지사의 1심 판결에 대해 26%는 ‘잘된 판결’이라고 답했고, 45%는 ‘잘못된 판결’이라고 답했다.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의 입장과 올바른 판결이 아니라는 국민의 법 감정 사이의 괴리는 법의 개정을 통해서 반드시 좁혀져야 할 것이다.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미투운동과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성폭력·성차별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출처_뉴시스)

‘미투(Mee too) 운동’의 시민 참여 확산

안 전 지사가 1심 무죄선고를 받은 지난 7월 14일도 여성단체들은 재판부와 안 전 지사를 겨냥해 시위를 했다. 지금까지의 시위는 이른바 ‘성(性) 편파 수사 규탄’ 시위였다. 한편으론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거대해지고 수많은 여성이 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이 사법부와 수사기관을 규탄하며 지난달 18일 350여 개 여성·노동·시민단체로 결성된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이라는 단체가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살겠다 박살내자’라는 이름의 집회를 열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그동안 ‘경찰의 수사방식 성(性) 편파’에 규탄하는 시위였다면, 이번 집회에는 중장년층이나 남성들의 참여가 높아진 점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이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이대로 있어서는 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성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힘을 보태기 위해 참여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또 사회 안에서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안전하게 살아갈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피해를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행동에 부모들이 적극 동참하면서 변화의 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1심 판결에 대해 커져가는 반발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연합은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간음의 구성요건을 기존 대법원 판결 판시보다 엄격하게 해석한 근거에 대해 합당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피해자의 강한 저항 여부를 문제 삼지 않는 기존 대법원 법리보다 훨씬 엄격하고 후퇴한 기준을 적용한 이유를 재판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계도 안 전 지사의 판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1일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안 전 지사가 무죄라면 대한민국 사회가 유죄"라고 했고, 같은 당 송희경 의원도 "이번 판결을 보며 제2의 김지은이 숨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여당 의원들도 이번 판결을 비판하며 여성가족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미투 운동이 있었지만 현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여가부가 대응책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도 "여가부는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의 입장과 심리가 고려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위력 행사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법리 적용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안 전 지사의 측근들이 피해자 김 씨에 대한 악성 댓글을 달아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목할 것은 A씨는 안 전 지사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인물이다. 김 씨의 미투 이후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악성 댓글을 지속적으로 달아 사이버수사대에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뿐만아니라 방송사 메인 뉴스와 대다수의 언론이 무죄 판결에 관한 비판 여론을 무게감 있게 다루고 있으며, 안 전 지사의 전 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만이 숨죽이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비롯한 야당이 재판부를 향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의 항소장 제출

검찰은 지난달 20일 무죄판결에 법리 오해, 사실 오인, 심리 미진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서울고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안 전 지사와 수행비서 김 씨가 위력 관계에 있지만 성관계 당시 위력이 행사되지는 않았다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위력을 너무 좁게 해석했고 이는 대법원의 기존 판례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건보다 훨씬 더 성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법원이 유죄 판결한 사례가 많다”며 관련 판례를 언급했다.

이날 검찰이 제시한 4건의 판례를 보면 법원은 업무상 상급자의 위력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했다. 인천지법은 지난해 5월 한 방송 제작사 간부인 A씨가 자신이 부하직원 B씨를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추행한 혐의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사건 당시 피고인 A씨의 지시에 따라 모텔방으로 들어갔지만, A씨의 스킨십 요구를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A씨는 재판에서 “피해자와의 합의 또는 묵시적 동의하에 몸을 만졌을 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추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인사평가 권한을 내세워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과 3심 역시 이 같은 판단을 근거로 A씨의 항소와 상고를 기각했다.

또 검찰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피해자로 보일 만한 행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한 것이 많다”며 “통화 내역이라든지 김 씨의 피해 호소를 들은 증인 등 증거자료가 충분히 있는데도 배척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안 전 지사 재판 과정에서 김 씨의 심리상태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절차적 하자로 인해 심리가 미진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판 초기 법원이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가 해촉한 사설심리상담소장 D 씨의 전문성과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E 씨가 전문심리위원에서 해촉되자 안 전 지사 측에서 E 씨를 다시 감정증인으로 신청해 지난달 16일 비공개로 진행된 안 전 지사의 6차 공판에서 증언했다. 이 자리에서 검사가 D씨에게 ‘어떤 경위로 나왔느냐’고 묻자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 씨의 친구로 나왔다’고 답했고, 심리분석을 전문적으로 해 본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D씨의 증언은 향후 재판에서 배제됐다. 안 전 지사 측은 “결론적으로는 피고인 측 감정증인의 증언이 누락된 셈이라 재판의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이 즉각 항소의 뜻을 밝혀 2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아무리 피해자 김 씨가 1심 무죄에 대한 항소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현 우리나라가 검찰에게만 기소권한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기소독점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형사재판 과정의 피해자 김 씨는 ‘증인’의 위치이며, 항소의 여부는 법적으로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다면 피해자 김 씨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1심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 판단된다.

 

지난달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비동의 간음죄) 관련 여야 여성의원 긴급간담회’에서 나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출처_뉴시스)

나경원 의원이 제안한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안 전 지사의 판결을 내린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위력’의 개념을 경직되게 해석해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전했다. “1심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만큼, 사회의 일반적 생각이 가야될 방향과 아직 거리가 있다면 서둘러 입법적 영역에서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의 도입 및 제대로 된 활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 또한 필요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며, ‘No Means NO rule’은 미국 일부 주와 일부 유럽 나라들이 법제화한 규제로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드러냈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졌을 때 이를 처벌하는 내용이며 ‘Yes Means Yes rule’은 상대방의 적극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에 나 의원은 “1심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만큼, 서둘러 입법적 영역에서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의 도입 및 제대로 된 활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 또한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김정재, 김현아, 이만희, 바른미래당 김삼화, 김수민,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 최금숙 여성단체협의회장,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장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심은 무죄? 유죄?

1심에서 재판부는 김씨가 안 전 지사를 보좌하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고, 자신의 정치적 방향에 따른 합리적 선택과 타협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등 김씨의 심리도 상당 시간을 할애해 살폈다. 다만 1심 대부분이 김씨 진술과 증언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안 전 지사의 모순된 행동이나 진술이 문제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실 관계나 증거 등이 나오지 않고 아무런 변화 없이 2심이 진행된다면 1심을 뒤집을 판결이 나오지 않을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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