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45호=장경동 칼럼위원) 한동안 저는 상당히 괜찮은 남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항상 목에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지요.

“당신은 좋은 신랑과 사는 줄 알아. 내가 키가 작나, 인물이 빠지나, 노래를 못하나, 운동을 못하나, 술을 먹나, 담배를 피우나, 바람을 피우나, 그렇다고 일을 못하나. 나 같은 남편 흔치 않아. 그러니 좋은 남편하고 사는 줄 알아.”

그랬더니 아내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좋은 남편 좋아하네”였습니다. 당황한 저는 뭐가 불만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넋두리하듯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남편이란 사람이 강의 간다고 월요일에 가방 싸서 나가서는 목요일에나 집에 들어오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철야한다고 교회에 가서는 다음 날 새벽에나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운동해야 한다고 나가서 땀 빼고 들어오고, 샤워 후에는 옷 갈아입고 그동안 밀린 심방하러 다니고, 금요일에 또다시 철야하고, 토요일에 또다시 심방하고 회의하고, 일요일은 설교하고 회의하고 성경공부하고….”

이런 남편이 뭐가 좋으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뭘 모르는구먼. 요즘 성공한 사람치고 집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바빠”하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좋은 남편에게 불만만 토로하는 아내가 야속할 뿐이었지요.

그러나 보니 어느덧 아내와 함께 결혼생활을 한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 화장실 문도 안 닫고 볼일을 볼 정도로 부끄러움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의 오줌 누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내가 걱정되었습니다.

‘요즈음 아내가 힘든가 보네. 몸이 고장이라도 난 건가?’

그래서 아침을 먹을 때 아내의 손을 슬며시 잡고 말했습니다.

“요즘 힘들지?”

그랬더니 아내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잘못 말한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는 감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한마디 더 했습니다.

“이제부터 잘해 줄게.”

아내는 더욱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말 한마디에 아내가 위로를 받는 것을 그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서 좋은 남편하고 사는 줄 알라는 말만 했다는 것을요.

부부 문제는 남편이 돈을 잘 번다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다고 결코 해결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재벌 부부들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해서 돈벌이가 시원찮다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남편을 하찮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승진을 잘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건강에 관련된 문제도 아닙니다. 건강 문제만 따진다면 건강하지 않은 부부는 평생 행복하지 못해야 합니다. 남편이 앞을 못 보고 아내가 다리가 없는 부부는 행복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부가 건강한 부부보다 훨씬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부부 관계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럼 사랑이 식은 부부는 어떻게 그것을 회복해야 할까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아내가 더 좋은 남자를 만났다면 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을, 나를 만나서 마음 고생하는 것이 딱하지 않습니까? 남편이 더 훌륭한 여자를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나를 만나서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면 딱하지 않습니까?

딱한 사람끼리 왜 싸워서 문제를 만듭니까? 사랑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아내의 아픔이 내게로 오지만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고소하게 느껴집니다. 남편이 끙끙 앓고 있으면 “그렇게 먹지 말라는 술을 먹더니 잘됐다”고 말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 잘될 것이 남입니까? 바로 내 남편입니다.

부부 사이가 회복되려면 돈이나 옷 같은 현상을 좇지 말고 본질인 사랑이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이 들어와야 부부가 회복되고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