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땅에서 사라진 한국인, 그들은 어디에 있나
급증하는 ‘사망-실종’ 해외 범죄사건, 부족한 해외 공관 인력과 안일한 대처가 문제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2005년 한 해, 해외에서 사건·사고를 당한 한국인은 무려 4,200명으로 이중 피살된 사람은 54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낯선 곳이다 보니 신고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가, 외국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실종 사건의 경우 턱없이 부족한 해외 공관 수와 인력 그리고 안일한 대처 등으로 인해 국내에 있는 가족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3년~2004년까지 재외동포와 한국인 유학생 및 여행객 등이 관련된 해외 사건·사고는 총 853건에 달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회통일외교통산위 소속 이성권 의원이 외교통상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것으로 재외국민 사건·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국가는 중국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437건(51%)을 차지, 일본 87건, 미국 45건, 홍콩 29건 순이었다.
중국의 경우, 발생 사건을 관할 공관별로 보면 선양총영사관이 179건으로 가장 많았고, 베이징대사관(154건), 칭다오 영사관(57건)이 뒤를 이은 가운데 선양과 칭다오 영사관은 직원이 각각 7명과 5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중국에서는 한국인 사형수 처형을 포함해 각종 재외국민 사건·사고가 빈발하고 있음에도 공관인력이 모자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내년 중 소폭 늘어날 영사인력은 재외국민 사건·사고가 많은 공관에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5년에는 전년 수치보다 증가한 4,200명의 피해 사실이 확인되었고 피살된 한국인은 54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답답한 수사, 가족들은 발만 동동
지난 3월 18일 한국을 떠나 중국 여행 배낭여행 도중 사라진 이선숙(28) 씨 실종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가족들의 가슴만 태우고 있다. 3월 19일 산둥성 칭다오에 도착한 이씨는 3일 후인 22일 산둥성 성도 지난시 기차역 앞 인터넷방에서 동생에게 전자우편을 보낸 후 연락이 두절됐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1년간 중국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이씨는 중국어 강사도 했을 정도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특히 어학연수 때 여행을 자주 다녀 중국 지리도 낯설지 않아 혼자 배낭여행 떠난 이씨는 산둥, 허난, 산시, 베이징 등을 거쳐 4월 2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씨의 귀국날짜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가족들은 결국 지난 4월 5일 외교부에 실종신고를 했고 영사관은 다음날 중국 공안에 수배를 의뢰했다.
하지만 실종 수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가족들은 확인할 길이 없어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이씨의 실종 후 중국 언론 보도가 나갔고, 공안과 현지 한인들이 나섰지만 아직까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선숙 씨 남동생은 “솔직히 우리가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거기에 갔던 사람들 글을 토대로 경로를 알아냈다. 나머지는 외교부를 믿고 있는 수밖에 없는데 그 쪽 공관(대사관)에서도 공안들과 현지 경찰관에게 부탁하는 방법이 전부다”고 답답해했다.
이뿐만 아니라 배낭여행 도중 실종됐다가, 비극으로 이어진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난 임지원(29) 씨는 2월 이집트에서 여행을 하다 3월 2일 터키로 이동해 국내 가족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서 8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 후 안모 씨 교포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면서 비행기 출발 때까지 여권과 배낭을 맡기고 나간 후 소식이 끊어졌다.
가족들은 집에서만 기다릴 수가 없어 직접 터키까지 가서 현지 한인회의 도움을 얻어 임씨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임씨는 지난 5월 3일, 이스탄불 외곽 해협의 다리 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5일 싸늘한 주검으로 입국했다.


한국대사관 늦장 대응, 해결 안돼
지난 2005년 2월 1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유학생 3명이 극우파 청년인 스킨헤드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중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 측이 사건 발생 4일 후인 15일에서야 현지에 외교관을 보내는 등 늑장대응을 해 현지 교민들의 불만을 샀던 일이 있었다.
그나마 열린우리당 박모 의원 등 국회의원 2명과 전직 의원이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민간행사에 참석하자 대사관 측은 행사 하루 전 고위급 외교관을 현지에 파견해 이들의 편의를 봐 준 것이었다.
이에 앞서 대사관 측은 사건 발생 후 현지의 한인동포 명예총영사에게 수습을 맡겼고, 따라서 피해학생들은 처음부터 공관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찰 수사를 받았다. 현지 경찰은 사건을 단순 폭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피해학생 가족들은 사건 다음 날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피해 사실을 신고했으나 아무런 조치가 없자 한국에 있는 가족을 통해 외교통상부 본부에 다시 신고, 이후 대사관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주장했다.
피해학생 가족과 현지 교민 유학생들은 “18, 19세의 어린 학생들이 다치고 중상자까지 나온 사건을 이렇게 안이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대사관 측은 “현지에 명예총영사가 있어 잘 처리될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터키 배낭여행 중 사고를 당한 임씨 아버지의 경우, 외교통상부 영사콜센터와 주터키 한국대사관에 실종 신고를 한 상태였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터키에 가서 적극적인 아들 찾기에 나섰다.
터키 한인회 김상진 회장와 터키한국문화교류협회 박용덕 회장 등 교민단체는 실종대책 위원회를 만들어 주터키 한국대사관, 터키 경찰 등과 대대적으로 임지원 씨 찾기에 나섰다. 교민들은 지난 4월 19일과 25일 터키 이스탄불 탁심광장에서 캠페인을 벌이고 임씨의 사진과 인적사항 등이 적힌 전단지 1만여 장을 배포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터키인들도 동참했다. 사흘 동안 터키 방송 TGRT의 ‘실종자 찾기’ 프로그램에 출연도 하고 터키 신문들도 실종 소식을 보도했다. 주터키 한국대사관측도 터키 외교당국과 경찰에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임씨 누나는 “터키 정부의 행정이 너무 느려서 범인이 도망가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터키 정부에 도움을 준다면 수사가 빨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남아시아 지진해일사태 때에도 다른 나라 공관들과 달리 형식적인 늑장 대응만을 보여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었다. 뿐만 아니라 호주에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형사절차 없이 5년 넘게 불법 구금되어야 했던 서재오 씨의 사건에서도, 2001년 중국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처형되었을 때에도,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한다’는 옹색한 변명만을 늘어놓았던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재외공관들이며, 외교통상부였다. 언제까지 ‘외교적 마찰우려’라는 이유로 자국민의 인권이 타국에서 침해되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해외출국자 책임질 영사 인력 부족
외국으로 출국하는 우리 국민의 숫자가 날로 증가해 지난 한해만 660만 명의 한국인이 출국했지만 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우리 정부의 영사 인력은 턱없이 모자라는 등 재외 국민보호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이후 우리 국민의 해외출국자 수는 매년 평균 114%가 증가하고 있다. 1980년 34만명, 1990년 188만 명이던 것이 지난해 664만 명까지로 대폭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423만 명이 출국했고 이대로라면 올 한해 1,000만 명이 넘는 해외출국자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5개 부서 98명이 담당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반에 반도 안돼는 적은 인원으로 이들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1990년 이래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 재외공관의 경우 직원이 3명 뿐인 공관이 전체 124개 가운데 62%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영사업무는 주로 신참 외교관이 담당하고 그나마 업무 순환도 잦아 현지어를 구사하는 영사도 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업무보다 힘들고 문제가 될 위험성이 높은 반면 그에 상당한 대우도 미흡하다.
이같은 배경에서 외교통상부는 현재 재외국민영사국을 재외국민영사실로 확대 개편하는 등 영사 인프라를 보강하기로 한 대책을 내놓았다. 이같은 처방은 그러나 영사인력 증원이라는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어서 해외로 떠나는 우리 국민은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먼저 책임질 줄 아는 수준 높은 의식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사관이나 영사관 의식 바꿔야
해외에서 한국인의 안전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외교통상부가 내놓는 제 1성은 한결같다. “그 많은 교민들을 어떻게 외교부가 일일이 다 보호할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인 사업가들을 상대로 범죄가 발생할 때도 그랬고 영국, 미국 등에서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교전문가들은 자국민 보호를 제1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외교관들이 일차적으로 자기 반성은 하지 않으면서 책임회피성 발언을 하는, 이런 ‘의식구조’가 근본적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무고시를 거쳐 임용되는 과정에서 한국 외교관들은 재외국민 보호업무를 다루는 영사업무에 대해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다. 주로 어학이나 의전 등이 중점이며 실제 업무에 배치돼서도 영사업무는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는 잡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현지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푸대접받은 경험이 한두 번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이모(22) 씨는 “식당에서 다툼이 벌어져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한국대사관에 전화했는데 오히려 왜 그런 곳엘 갔냐고 나무라면서 현지 경찰에 연락하라는 말만 들었다”고 경험담을 밝혔다.
외교부내에서 영사업무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뒤떨어지다보니 막상 현지인들과 관련된 일에 부닥치면 제대로 협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현지 전문가들이 태부족이다. 있다고 해도 대부분 정치·경제 관련 분야에 배치돼 현지 경찰이나 주민들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일이 많은 영사업무는 상대적으로 기본적인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06년 6월 22일은 대한민국 청년 김선일 씨가 머나먼 이국땅 이라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었다. 김씨의 피살이후 국내 여론은 우리 정부의 교민보호 능력과 의지에 대한 숱한 의문을 제기하며 그 어느 때보다 재외국민보호 시스템 변화를 강조해왔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그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김선일 씨 피살 사건으로 공론화된 재외국민보호 시스템 정비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 마련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영사인력 확충의 시급성을 침이 마르게 강조했고, 청와대와 관련부처도 공감대를 이룬 듯 했다. 하지만 김씨 사건이 2년이나 지난 현재 대국민 영사서비스 인프라는 그다지 변화가 없다.
한 해 1천만 명이 넘는 우리 국민이 해외 각지를 다닌다는 것은 김씨 피살사건과 비슷한 사건들이 언제 어디서나 재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지만 우선 정부와 정치권의 2년 전 약속의 이행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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