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대만 총통 비리추문, 탄핵 위기
가족·측근 비리·추문 끊이지 않아… 야당 파면안 제출
요즘 대만은 정치문제로 시끄럽다. 특히 덮으면 불거지는 비리와 추문이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는 천수이볜 총통의 퇴진을 둘러싼 대만 정국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6월 11에는 야당인 국민당과 친민당이 천 총통의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시작하고, 한편에서는 마잉지우 국민당 주석에 대한 테러를 독려하는 지하방송이 나와 경찰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만과 홍콩의 언론매체에 따르면 국민당과 친민당은 지난 6월 10일 타이베이에서 4만 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천 총통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를 가졌다. 이날 시위는 당초 친민당 단독으로 열 예정이었지만 남부 가오슝에서 갖기로 한 국민당 집회가 호우로 연기되면서 국민당도 이 집회에 참가했다. 마 주석은 연설에서 “천 총통이 권력을 남용하고 부정부패에 깊이 연루돼 있다”며 “조만간 총통 파면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집권 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사퇴가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서둘러 특사까지 파견해 대만 정정 파악과 향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 때문이다. 사위인 자오젠밍이 주식 내부자 거래로 4억 대만달러(약 118억원)의 이익을 챙긴 배후에 총통 부부가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천저난 전 총통부 부비서실장이 뇌물 비리로 물러나는 등 지금까지 친인척과 측근 등 10여 명이 각종 비리 혐의로 물러나거나 사법처리 됐다. 천 총통은 6월 1일 쑤전창 행정원장에게 내각 지명권을 포함한 통치권을 넘긴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그러나 사퇴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대만 제1야당인 국민당은 6월 7일 현재까지 천 총통을 탄핵하기 위한 국민투표안을 지지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국회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대만 TVBS 방송사가 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가 천이 총통으로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2004년 재선된 천의 임기는 2008년 5월까지다.
대만 외교부는 미국대만협회(AIT)의 레이먼드 버그하드 회장이 6월 7일 대만을 공식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AIT는 외교관계가 없는 미국과 대만의 접촉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준정부단체다.
AIT의 데이비드 밀러 대변인은 이날 “버그하드 회장은 대만에 머물며 정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현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그하드 회장은 1999년부터 3년 동안 AIT의 타이베이 사무처장을 역임한 대만 전문가다. 미 국무부는 그가 제출할 대만 정정 보고서를 분석한 뒤 향후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변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6월 7일 전했다.


끝없는 비리로 의혹 증폭
속 시원한 조사도 없이 묻혀만 가는 의혹은 결국 천수이볜 대만 총통의 입지를 좁혀 놓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사면초가인 천 총통은 마침내 사위가 비리로 구속되자 정부 운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그의 권력은 쑤전창 행정원장에게 이양됐다.
천 총통의 불명예 퇴진을 가져온 것은 지난해 말부터 터져 나온 가족과 측근의 비리. 의사인 사위 자오젠밍은 지난 5월 24일 주식 내부자거래로 거액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대만 역사에서 총통 가족이 구속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부마’로 불리는 자오의 친가로 확대된 수사에서 이들은 사전 취득한 정보로 주식에 투자해 8배의 이익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자오의 부친은 4개 회사의 고문으로 위촉돼 매달 1,000만원이 넘는 거마비를 받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야당은 물론 집권 민진당 내에서도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천 총통의 지지율은 집권 이후 최저인 한 자리 수로 떨어졌다. 비난화살을 피하기 위해 천 총통은 사돈 일가를 비난하며, 임신 8개월의 딸의 이혼카드마저 꺼내 들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천 총통은 결국 권력이양을 선택했지만 비리와 추문은 끊이지 않고 있어 그의 정치행로에 뇌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족과 측근들은 각종 기업합병과 공기업 경영에 간여하고 내부자 거래로 큰 이익을 챙겼다는 추문이 지난해부터 계속됐지만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부인 우수전 여사의 경우 한화 2억6,0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뇌물로 받고 공기업 인사에 간여했으며, 백지신탁을 하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 큰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인 우 여사는 깨끗한 이미지로 민주 영부인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 중인 백화점의 한쪽 당사자로부터 상품권을 받았다는 대만판 옷 로비 사건은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밖에 최근에는 국립과학위원회 부의장이 공사계약에서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체포됐고, 국방부에선 총통 비서장실 근무경력을 지닌 한 군장성이 내부거래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번 천 총통의 막후 퇴진에 대해서도 대만 언론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국민 분노를 진정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천 총통은 국민이 바라는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여러 의혹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이마저 천 총통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가족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생활하겠다고 약속했을 뿐이다.
총통의 사임을 주장해온 야당은 여전히 비등한 여론을 업고 의회의 3분의 2의 지지를 통해 천 총통 탄핵안을 국민투표에 붙이는 구상을 하고 있다. 야당은 전체 225석 가운데 130석을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여당 민진당 의원 30명 이상이 동조하고 있어 가결될 가능성도 있다. 민진당에선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지지율이 바닥인 천 총통을 출당시키고 다음 선거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정가 모습과 함께 2008년까지 임기를 2년 넘게 남긴 천 총통이 실권을 놓으면서 대만정치권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대만 내각의 통제는 쑤 행정원장이 행사하게 되고, 천 총통은 헌법상 권한만 지니게 된다. 천 총통은 정부운영뿐 아니라 선거운동을 포함한 집권 민진당의 일에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자신은 헌법에서 부여된 명목상의 권한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대만 언론들은 외교권과 군통수권, 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좁혀 해석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대만헌법이 총통체인지 행정원장제인지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이전 몇몇 행정원장들은 총통의 비서실장처럼 행동하며 그의 지시대로만 움직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큰 권한을 행사했다”고 소개했다.
쑤 행정원장이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대만 언론들은 쑤 행정원장이 100% 천 총통의 사람일 수 있다면서 전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때문에 일부에선 천 총통이 형식적 권력이양을 했을 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천 총통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런 시각이 결코 지나치진 것은 아니다.
한편, 하야 위기에 처한 천수이볜 대만 총통의 대타로 뤼슈롄 부총통이 급부상하고 있다. 여성 정치인으로 차기 총통선거의 유력한 여권 후보였던 뤼 부총통은 총통 유고시 총통직 승계 제1순위일 뿐 아니라 깨끗하고 강직한 이미지로 여야 각 정파와 미국으로부터 고루 선호 받고 있다.
마잉주 국민당 주석은 6월 8일 “천 총통이 희망대로 자진 사퇴하게 되면 부총통이 총통직을 승계하는 것이 헌법 절차에도 부합한다”며 “국민당은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당은 천총통 탄핵안 발의를 입법원에 제출하기로 하는 한편 천 총통의 자진 사퇴도 염두에 두고 천 총통 이후의 체제에 대비하고 있다.
리덩후이 전 총통이 이끄는 범여권 정당인 대만단결연맹도 마 주석과 같은 입장을 표시하며 뤼 부총통 옹립에 찬성하고 나섰다. 리 전 총통은 “대만 정권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천 총통이 스스로 퇴진하고 뤼 부총통이 이를 승계, 국민당 소속의 왕진핑 입법원장에게 내각을 구성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만 정국의 향방을 가름 할 대만단결연맹은 그러나 국민당이 추진하기로 한 탄핵안은 3분의 2 이상 의결 정족수에 못 미칠 것이 명확하다며 탄핵 추진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최근 천 총통 일가의 비리를 둘러싼 대만 정국의 초점은 급격히 뤼 부총통으로 쏠리고 있다.
뤼 부총통과 왕 원장은 최근 비밀 동맹을 맺고 당파를 초월, ‘포스트 천수이볜 시대’에 대비하기로 했다며 ‘뤼-왕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고 대만 언론은 전하고 있다. 뤼 부총통이 총통직을 승계할 경우 대만에도 첫 여성 행정수반이 탄생하게 된다.
미국도 대만 정국의 수습과 나아가 양안관계의 안정을 위해선 천 총통 퇴진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영어에도 능통한 뤼 부총통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천 총통 탄핵안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일간 연합보는 응답자 48%가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했으며 녠다이(年代)방송은 48.3%가 탄핵 찬성의사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반대 비율은 각각 36%, 30.8%였다.


‘안개’에 휩싸인 대만정국
한편, 천수이볜 총통은 당정 업무에서 손을 떼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천 총통은 지난 5월 31일 밤 긴급 당정 최고위층 회의를 소집하고 정부와 집권 민진당의 일상업무를 쑤전창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에게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앞으로 행정원의 모든 행정권과 인사권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이어 그는 지난 1일 향후 민진당은 쑤전창 1인 체제로 움직일 것이라며 서둘러 2008년 차기 대선후보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민진당이 대대적인 물갈이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정권 교체 및 민진당 혁신에 특별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당정 업무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국방 및 외교 분야의 실권은 국가원수인 천 총통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언론과 야당은 이번 천 총통의 발언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쏟아낸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홍콩 원후이바오는 천 총통의 이런 발언으로 쑤 행정원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권력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천 총통이 이대로 물러날 인물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대만 정부의 한 관계자도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천 총통의 발언을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며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천 총통이 물러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대만 롄허바오는 6월 1일 사설을 통해 “천 총통은 자기중심적인 데다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인물이다”라며 “그러나 민진당이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천 총통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천 총통은 “나와 가족들은 높은 수준의 유리적 기준에 따라 행동할 것이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생활 하겠다”고 밝혀 이번 권력이양 선언의 배경이 측근 비리사건 때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천수이볜 총통,역경의 끝은 몰락인가
대만출신의 첫 총통인 천수이볜은 사실 역경을 기회로 삼아 일어선 정치이다.
1951년 남부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그는 대만국립대를 거쳐 변호사가 된다. 부유한 의사 집안의 딸인 우수전과 결혼한 야망의 변호사는 80년대 초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반체제인사 황신제 등의 변론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한다. 소송에는 졌지만 그는 변론한 피고인들과 함께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 민진당의 핵심 세력에 진입하게 된다.
85년 부인 우 여사가 트럭에 치여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일반인들은 사건이 천 총통을 암살하려는 음모라는 믿음이 강했다. 이듬해 천 총통은 당시 집권당인 국민당의 명예훼손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8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런 고초를 딛은 그는 타이베이 시의원을 거쳐 94년 첫 타이베이 시장에 선출돼 본격적인 정치가도를 달린다. 시장 시절 그는 부패를 척결하고 윤락가를 없앴으며 교통체증을 풀고 거대한 슬럼가를 공원으로 조성했다. 그러나 화합하지 못하는 성격과 독재적인 스타일은 많은 적을 만들어냈다.
정적들의 반대로 4년 뒤 시장선거에 패배했지만 그는 이를 기회로 활용해 2000년 총통선거에서 국민당의 리덩후이(李登輝)를 누르고 당선된다. 이듬해에는 총선마저 승리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시대를 연 국민당의 일당독재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만독립 추진 등을 통해 중국,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대만 국민들은 그의 역동적인 모습과 입지전적 인생에 마음이 움직여 그에게 친구라는 뜻의 ‘아-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는 이런 대중의 마음을 잘 읽는 포퓰리스트 성향의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일례로 대중집회에서 그의 연설은 대중을 웃기는 것은 물론 풍선과 불꽃 음악까지 동원해 일종의 쇼를 연출해낸다. 그런 덕분인지 2004년에는 근소한 차이로 재선에도 성공했다.
당시 TV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그를 향해 “변덕스럽고 무책임하며 믿을 수 없다”고 비난하다 그는 “나의 헤어스타일은 수년간 변한 적이 없는데 부인에 대한 사랑도 그러하다”고 받아 넘기기도 했다.

<사진설명>
*해외화제1, 1-1-요즘 대만은 정치문제로 시끄럽다. 덮으면 불거지는 비리와 추문이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는 천수이볜 총통의 퇴진을 둘러싼 대만 정국 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해외화제2-마잉주(馬英九) 대만 국민당 주석이 지난 6월 7일 타이베이(臺北)의 당사에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축출 움직임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만 국민당은 7일 기족 비리로 위기에 몰린 천 총통을 축출하는 국민투표의 실시를 지지한다고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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