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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여행에세이 - 부산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
  • 허재호 칼럼위원
  • 승인 2018.08.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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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44호=허재호 칼럼위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빠져들고 싶어 하는 마음이나 가보지 못한 목적지를 향해 길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현실을 벗어나려고 하는 몸부림이다. 주인공을 따라 그가 겪는 사건과 감정들을 함께 겪으며 허구의 힘을 맛보는 감상 행위와, 미지의 장소를 밟아가며 여정의 의미를 느끼는 여행은 본질적으로 닮아있다. 여행지의 시공간만이 지니고 있는 맛과 멋, 분위기를 온전히 느껴보고자 노력하는 것. 허구를 감상하고 여행을 떠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길을 잃는다. 길을 잃고서 기꺼이 그 혼란스러움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영화의 각 장면들은 되새겨 볼수록 낯설고,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은 고비마다 자꾸만 새롭다. 이렇듯 잘 만든 영화, 드라마나 걸맞게 선택된 여행지는 우리의 마음을 홀린다.

동백섬 누리마루 야경 모습

올 여름 여행지는 단연코 부산?

여행전문지 론리 플래닛이 얼마 전 올해 반드시 가보아야 할 아시아 여름 여행지로 서울도 도쿄도 상해도 아닌 부산을 1위로 선정해 화제가 되었다. 아마도 서울에서 두시간 반 정도의 접근성에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 거리까지 발품 많이 팔지 않고도 체험할 수 있는 편의성, 말하자면 종합선물세트 같은 매력을 높이 사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십 수년간 관광지로서의 부산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다채로워졌음이 분명하다. 해운대, 광안리를 넘실대는 파도와 저만치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는 맛. 거기에 꽃피는 동백섬 붉은 하늘 위로 부산 갈매기가 잊지 않고 날아오른다. 또한, 가을이면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 영화제가 열리고 시내는 영화의 바다, 셀레브리티의 바다로 변해 온통 출렁인다. 감천 문화마을에는 소박한 벽화와 운치 있는 집들이 가득한가하면, 헌 책방 골목을 거닐다 출출해져 몇 골목만 옆으로 새면 듣도 보도 못한 먹거리로 가득한 포장마차 깡통시장이 밤새 불을 밝힌다. 어딜 가든 맛볼 수 있는 뜨끈뜨끈한 돼지국밥과 시원 짜릿한 밀면의 매력은 또 어떠한가.

그러나 그저 해외의 여행지 전문 분석가들의 평가에 의해서만 빛나는 곳이 부산일까. 지방자치단체의 열성적인 활동 결과 같은 다소 억지스런 붐업의 냄새랄까,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잔뜩 개발된 메뉴판 같은 부산의 모습에 조금은 아쉬움이 뒤따른다. 다른 무엇은 없을까. 일렁이는 바다를 빼닮은 부산 사람들의 화끈한 성정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자갈치 횟감보다도 훨씬 더 생생한 날 것의 부산을 오감, 육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롯데 부산사직구장

세계 최고로 열광적인 팬들의 응원을 보고 싶은가?

어느 스포츠 해설가의 표현을 빌려본다면 부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야외 노래방이 있다. 3만여명이 모여 2,3시간을 끊임없이 함성을 지르며 소위 떼창이 이어지는 곳이다. 쉴 새 없이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케이 팝에 맞춰 치어리더의 율동이 계속 되는 동시에 3,40년 전통의 묵디묵은 응원가가 이질감 하나 없이 뭉클하게 어우러진다. 부산 아재들의 미래 세대 배려 정신인 ‘아 있다’ ‘아 본다’ ‘아 주라’ (애들이 지켜보니 말 조심, 행동 조심. 파울 볼을 잡았으면 아이한테 넘겨주라는 뜻.) 3종 멘트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그 곳. 승부의 세계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환희와 탄식의 현장, 프로야구 선수들의 열정이 서린 바로 그 곳, 사직야구장이다.

퍼펙트게임 페이스북 캡처

1987년 5월 16일,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날의 승부!

2011년 12월에 한국 영화 <퍼펙트 게임>이 개봉되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전설적인 명승부를 그려낸 작품으로 조승우와 양동근이 주연을 맡았다. 촬영 당시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투구가 포수 미트에 꽂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고 공을 쥔 그립이나 투구 폼을 생생히 잡아내기 위해 특수 초고속 카메라까지 동원했다. 이미 7년이나 지난 작품이라서겠지만 벌써 세월이 느껴지는 컴퓨터 그래픽 등의 영상 기술은 아직은 우직했던 초창기 프로야구의 분위기를 그리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한다. 다만 모델이 된 최동원, 선동열 두 투수의 투구 모션을 실제 그대로 재현하는 데는 다소 역부족으로 보인다. 물론 타고난 천재성과 범인은 미처 짐작하기도 어려운 노력으로 빚어졌을 그들의 퍼포먼스를 화면에 담는 것이 그리 쉬울 거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불세출의 두 투수의 맞대결은 1986년에 두번, 1987년에 한번 이렇게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영화에 그려진 이벤트가 바로 87년에 최후로 이루어진 맞대결이다. 우연이라기엔 신기하게도 이 모든 대결이 사직구장에서만 이루어졌다. 이미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4승 1패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으로 우승까지 이루어낸 철완 최동원.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노쇠화의 기미가 보인다는 것이 당시 세간의 평가였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최동원이 병원 시술을 받는 장면이 여러 번 되풀이해서 나온다. 이에 반해서 선동열은 86, 87년 2년 연속 0점 대 방어율을 기록할 정도로 기량이 정점에 오른 시기였다. 이런 그를 앞세워 해태 타이거스는 연거푸 시리즈 우승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강한 적수와 공수가 탄탄한 상대팀을 맞이한 최동원에게 팀원을 제외한 유일한 우군은 사직 구장의 열정적인 홈 팬들 뿐이었다. 알려진 대로 이들의 승부는 스코어 2대2 15회 무승부로 끝을 맺었고 두 투수의 맞대결은 1승 1무 1패로 더 이상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후일 선동열의 팀 해태의 김응룡 감독은 이 둘의 승부를 떠올리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선수의 자존심이 걸린 승부였기 때문에, 중도 강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 회고한 바 있다.

맞대결을 마치고

야구를 몰라도 사직은 즐길 수 있다!

부산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야구장을 찾아가본다. 사직 야구장은 사직역과 종합운동장역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매표소까지 거리는 사직역이 조금 더 가깝지만 보다 풍성한 야구장 간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종합운동장역에 내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인근의 대형 마트에 마련되어있는 간식거리에 특화된 푸드 코너를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야구장 앞 노상 점포나 장내 매점에서 파는 치킨, 족발, 김밥 등등 보다는 가성비가 좋은 먹거리가 많다. 게다가 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하면 울려 퍼지는 수줍고 어색한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의 경기 안내멘트가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1985년 10월에 완공된 사직 구장은 그보다 먼저 3년 전에 완공된 잠실 야구장에 이은 두 번째 대형 구장이다. 최근 잠실 구장이 좌석 수를 줄이면서 사직 구장은 대한민국 제2 도시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최대’ 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현재 사직 구장의 좌석도 2,000석이 줄어든 2만 8,000석 정도로 줄여 고급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구장은 관중들이 선수들의 눈높이에 경기를 볼 수 있는 구조라는 장점이 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롯데 1루 코치는 내야석 관중이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 훌륭한 내야 전망을 이용해서 롯데 구단은 몇 년 전부터 양 옆 내야에 익사이팅 존을 만들어 다이나믹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부산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 부산 시민들은 광복 이후 라디오 등 전파를 타고 일본야구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대를 잇는 야구 사랑이 가능해졌다. 부산고, 경남고 등 부산지역 고교 야구부가 잇따라 생겨나면서 이들 학교의 경쟁구도가 부산을 야구도시로 성장시키는 데 단단한 밑거름이 됐다. 이렇게 연륜 있고 수준 높은 야구 눈높이를 지닌 부산이지만 프로화가 이루어진 후 연고팀인 롯데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애정을 준 대상에게서 그 마음을 잘 거두지 못하는 부산 야구팬들은 지금도 언제나 롯데 선수들이 자신의 가슴에 불을 질러 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롯데가 연승을 미친 듯이 하면 과연 시내 가게의 장사가 훨씬 잘 될까. 당연히 그럴 것 같지만 정답은 '아니다' 이다. 주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죄다 야구 보러가기 때문이란다.

롯데 응원단을 이끄는 조지훈 응원단장 개인 블로그 캡처

「부산 갈매기」는 부산 아재, 부산 싸나이의 순정과 결기를 상징

몇 년 전 모 일간지에서 프로야구 각 팀 응원단장에게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느낀 가장 위협적인 응원가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1위로 꼽힌 것이 바로 「부산 갈매기」였다. 이유인즉, “너무나 열광적으로 다함께 불러” 주술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부산 갈매기」 에 완전히 기가 눌려 “주눅이 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직 운동장을 가르는 함성은 부산 싸나이들의 야성미 넘치는 기질을 대변해 주며, 이제 아예 관광 상품처럼 인식되고 있다. <해운대> 처럼 부산을 보여 주는 영화에 사직 야구장의 응원 장면이 최근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게임 후반부, 홈 팀의 어이없는 경기에 울화가 치밀어 오를 쯤 어디선가 시작된 「부산 갈매기」는 관중들의 웅성거림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한데 묶는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이다.

프로야구 최초로 올드팝이나 광고 배경음악을 활용하여 선수별 개인 응원가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롯데의 조지훈 응원단장이다. 조 단장은 사직에 처음 와서 응원을 말 그대로 경기를 꾸며주는 일부 요소 정도로 생각했었다가 큰 코 다칠 뻔 했다고 한다. 사직에서 응원은 경기와 마찬가지의 위치를 가지고 있고 응원에 엄청나게 감정 이입하는 부산 팬들을 보며 대충 하거나 실수라도 했다간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사직구장 롯데 봉다리 응원

배트맨 봉다리 사이로 갈매기 총채가 춤추고

막대풍선 같이 멀쩡한 도구를 쓰는 것은 사직의 응원 방식이 아니다. 그저 두 손 두 팔을 들어 흔들거나 또는 신문지를 잘게 찢어 묶어서 냅다 휘둘러야 걸맞다. 쓰레기를 담으라고 나눠준 봉투를 머리에 쓰고 노는 관중들 아닌가. 박수를 치는 것도 그리 즐기지 않고 무조건 큰 목소리로 외치고 노래 부르는 것이 롯데 응원의 특징이다.

신문지와 봉다리(봉투의 부산 사투리)가 응원 도구 계의 원투펀치가 된 데에는 야구장의 여성 관중의 증가와 관계가 있다는 설도 있다. 원래 이 두 아이템에는 프로화 이전 실업 야구 롯데 시절의 짠한 과거가 묻어있다. 흙먼지 날리는 관중석 계단에 깔고 앉거나 음식 먹다 흘릴까 바닥에 깔던 신문지는 풀리지 않는 경기에 흥분한 관중들의 손에 들려 무자비하게 휘둘리던 신세였다. 그것이 지금은 곱게 반으로 접혀 잘게 찢겨진 먼지떨이 형태의 ‘갈매기 총채’로 변신했다. 바람을 불어넣고 끝을 묶어서 귀에 걸기만 하던 봉다리도 여성 관중 ‘사직녀’들의 재치 있는 손을 거치자 미키마우스나 베트맨, 리본 등 다양한 모양으로 바뀌며 세련되게 진화해가고 있다.

미리 준비된 건 없고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해나가는 방식. 객관적 전력 열세를 무릅쓰며 강팀을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 패권을 두 번이나 거머쥐었던 롯데의 역사와 응원 모습 조차 어딘가 닮아있지 않은가. 상대가 안 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본다는 정신, 허세와 크게 구별하기 힘든 부산 싸나이만의 결기와 순정. 이것이 사직야구장의 응원의 분위기와 재미를 이끌어내는 원천이다. 그라운드 안과 관중석은 이렇게 사직에서 구별 없이 한데 어우러진다.

최동원의 화려했전 선수 시절

사직이 곧 부산이고 부산이 곧 사직이다

사직을 무대로 잊을 수 없는 대결을 펼쳤던 시대의 영웅들의 이후의 삶은 어떠했을까.

최동원 선수는 불의를 못 참는 성격대로 당시 노예 위치와 다를 바 없는 선수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선수회를 설립하는 일에 앞장선다. 이내 구단으로부터 미움을 사기에 이르고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는 혹사로 인한 컨디션 저하까지 겹쳐 결국 선수복을 벗게 된다. 어려운 일에 나서지만 않았다면 최고의 대접을 받으면서 꽃길만을 걸을 수 있었을 그였으나 현실에 눈 감고 말기에는 영웅의 피는 너무도 뜨거웠다. 은퇴 이후 팬들은 롯데의 코칭 스

허재호 칼럼위원  sisamagazine1@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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