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후 재팬 넘고 공격적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 나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일본 프로야구를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라쿠텐’이라는 구단을 알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라쿠텐 골든 이글스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투수 김병현이 국내 리그에 오기 전 몸담았던 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라쿠텐을 그저 일본의 프로야구 구단쯤으로 알고 있으면 곤란하다. 라쿠텐은 일본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기 때문이다.

라쿠텐(Rakuten)은 1997년 2월 미키타니 히로시가 동업자인 혼조 신노스케와 함께 세운 회사다. ‘엠디엠’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회사는 그 해 인터넷 쇼핑몰인 라쿠텐 이치바(Rakuten Ichiba)을 오픈했다.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 장군의 라쿠텐 라쿠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라쿠텐 판매 관리 시스템
라쿠텐이 처음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할 당시만 해도 일본의 인터넷 쇼핑몰 시장은 상품 카탈로그를 제공하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활성화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라쿠텐은 ‘누구나 즐겁게 쇼핑몰을 만들고 또 쇼핑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모토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미키타니는 전에 없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로 하고 혼조에게 시스템 개발을 지시했다. 이에 시스템 전문가에게 일주일동안 집중 교육을 받고 시스템 개발에 나선 혼조였지만 비전문가인 탓에 개발자가 아닌 이용자 시점에서 라쿠텐을 구축했고, 이는 오히려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라쿠텐 판매 관리 시스템(RMS)으로 탄생했다.
시스템을 갖춘 후에는 영업이 문제였다. 지금과 달리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당시, 인터넷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보니 중소 상인들에게 라쿠텐 이치바를 알린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미키타니는 차근차근 라쿠텐 이치바를 가르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혼조, 그리고 영업직원들까지 전 사원이 전국을 나눠 각 지역을 직접 방문, 컴퓨터의 기본적인 사용법부터 시작해 라쿠텐 이치바 서비스까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인터넷 세상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라쿠텐은 적극적인 영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터넷과 라쿠텐 이치바를 알렸다. 그들의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6개월치 이용료인 30만 엔을 선불로 납부하는 방식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점차 판매가 늘고 가입 점포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6개월치 이용료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이었지만 월 5만 엔은 타 경쟁업체와 비교했을 때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게다가 초기 가입비도 없었다. 당시 경쟁업체들은 수십만 엔에서 100만 엔에 가까운 입점료를 받았으며 주문 건수와 판매금액에 따라 수수료를 더 받고 있었다. 비싸고 복잡한 요금 체계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던 고객들은 저렴하고 쉬운 라쿠텐의 요금에 환호했다.
금전적인 부분도 인기였지만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RMS은 인터넷 초보자라도 간단한 설명만 들으면 누구나 라쿠텐 이치바에 바로 쇼핑몰을 오픈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라쿠텐 이치바의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고공행진을 했다. 1997년 오픈할 당시 13개였던 점포 수는 1998년 1월 91개, 1999년 1월 400개, 2000년 1월 2,000개까지 늘어났다.

인터넷 버블 붕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엠디엠으로 출발한 회사는 1999년 6월, 지금의 라쿠텐 주식회사로 이름을 변경했다. 라쿠텐은 옥션, 검색 포털, 여행, 서적, 게임, 방송, 티켓 등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쇼핑몰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사업을 통해 인터넷 세상에서 ‘라쿠텐’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한 라쿠텐은 여행, 증권, 취업정보, 블로그 등 다양한 서비스들을 통해 라쿠텐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하며 라쿠텐이라는 브랜드를 점차 각인시켜 나갔다.
2000년 4월 라쿠텐은 자스닥에 상장했다. 창업 3년 만이었다. 그리고 라쿠텐이 자스닥에 상장한 후 거짓말처럼 인터넷 버블이 붕괴됐다. 그리고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라쿠텐은 이를 기회로 삼았다. 포털 사이트 인포시크와 중고품 판매·매입 서비스인 이지시크를 운영하던 비즈시크, 무료 홈페이지 서비스를 제공하던 HOOPS!, 축하 카드 서비스를 제공하던 와이낫, 골프장 예약 서비스 ‘골프포트’를 이용하던 메디오포트 등을 인수했고, 2002년에는 라이코스 재팬을 사들여 2003년 9월1일 인포시크와 합병했다. 2003년에는 마이트래블넷과 DLJ다이렉트SFG증권을, 2004년에는 아오조라카드를 사들였다. 이처럼 라쿠텐은 여러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됐다.
2004년 10월, 라쿠텐의 점포 수는 1만개를 넘어섰다. 더 이상 일본 내에는 라쿠텐의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 시기, 라쿠텐은 프로 야구단을 창단했다.
당시 라쿠텐과 함께 급성장세를 보이던 인터넷 벤처기업 라이브도어도 프로 야구단 창단에 뛰어들었다. 시작은 라이브도어가 먼저였다. 그러나 결국 승자는 라쿠텐이었다. 일본이 오랜 경기 침체에 빠져 있던 터라 구단협의회는 라이브도어보다 안정적이고 재무능력이 우수한 라쿠텐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라쿠텐은 2004년 9월24일 프로 야구단 가맹을 신청한 지 약 한 달여 만인 11월2일 승인을 받았다. 그 기간 동안 라쿠텐은 감독을 선임하고 구단의 이름을 결정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제휴 또는 기업 인수로 해외 진출, 영역 확장
라쿠텐은 각국의 여러 기업들과 제휴하면서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함께 사업을 진행하거나 그들 업체를 인수한 라쿠텐의 첫 해외진출 국가는 대만이었다. 2007년 대만의 프레지던트 연쇄점과 자본 제휴를 맺고 대만 라쿠텐 이치바를 설립한 라쿠텐은 이어 2008년에는 유럽의 중심지인 룩셈부르크에 라쿠텐 유럽S.ar.l을 설립했다. 2009년에는 태국의 인터넷 쇼핑몰인 타라드닷컴과 제휴했는데, 타라드닷컴은 점포 수만 16만개에 이르는 태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였다.
대만, 유럽, 태국에서 성공 사례를 쓴 라쿠텐은 2010년 세계 최대의 인터넷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번에도 제휴 형태였다. 중국 최대의 검색 서비스 업체인 바이두와 제휴를 맺은 라쿠텐은 바이두의 중국 내 영향력과 마케팅 능력을 빌리는 대신 자신들의 전자상거래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를 바이두와 공유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2,000개의 점포로 본격적인 사이트 운영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중국에 이어 인도네시아와도 손을 잡았다. 방송국, 신문, 라디오 등을 운영하고 있는 미디어기업과 51:49로 합작 회사를 설립한 라쿠텐은 현지에서 ‘라쿠텐 벨란자 온라인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라쿠텐은 북미 시장에서 미국의 바이닷컴을 인수하고, 남미 시장에서는 브라질의 이케다 주식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워나갔다.
라쿠텐은 해외기업을 인수하거나 업무 제휴를 할 경우 무조건 라쿠텐의 기업문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미키타니는 “아마존이나 구글 등은 해외 기업을 인수하면서 그들 기업을 자신들의 문화로 바꿨지만 라쿠텐은 그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서로의 강점을 살려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라쿠텐, 거대 야후 재팬을 넘어서다
야후(Yahoo)는 세계적인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다. 포털사이트, 메일서비스 등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다. 1997년 9월부터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와 함께 서비스를 시작해 이후 세계 23개국에 진출 약 1억 6,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야후 검색서비스를 이용하게 됐다. 야후 재팬(Yahoo Japan)도 마찬가지다. 2001년 이후 일본에서 포털 사이트 점유율 1위를 독차지하며 야후의 명성을 확인했다. 일본 인터넷 유저의 90% 이상이 야후 재팬을 이용할 정도다.
야후 재팬의 경우 다른 국가들과 달리 최대 주주가 일본 기업인 소프트뱅크로 사실상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야후 재팬은 메일, 메신저 등이 다른 나라와 별개로 야후 재팬 법인으로 운영된다. 이처럼 일본 인터넷 산업에서 야후 재팬은 검색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하나의 커대한 플랫폼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이에 옥션과 쇼핑몰 분야에도 심혈을 기울인 야후 재팬이지만 2009년 이후 라쿠텐에게 그 자리를 내줘야했다.
2009년 12월, 라쿠텐 이치바 점포는 3만 1,543개로 1만 7,299였던 야후 재팬을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전체 매출 역시 라쿠텐에 2,982억 엔으로 야후 재팬을 184억 엔 앞섰다. 이 차이는 이듬해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져 라쿠텐이 3,461억 엔, 야후 재팬이 2,924억 엔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라쿠텐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이 차이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라쿠텐은 앞으로 보다 공격적으로 글로벌 시장 영역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값싼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미국 기업들과 달리 상품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본의 라쿠텐이 아닌 세계적인 라쿠텐으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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