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2500개 ‘우후죽순’…‘축제 베끼기’ 논란 속 이전투구도

축제는 지역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사다. 전통문화, 특산품, 볼거리를 소개함으로써 지역의 브랜드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국 각 지역에서 수많은 축제가 생겨났다.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십억 원이 넘게 소요되는 축제가 해마다 수십 여 개씩 열리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최하는 축제에서는 뚜렷한 차별성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지역축제 전성시대다. 민선시대 이후 전국 지자체이 지역 특성을 살린 축제를 앞다퉈 열고 있는 것. 그도그럴것이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축제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진주유등축제’, ‘화천산천어축제’, ‘함평나비축제’, ‘보령머드축제’ 등 지역을 대표하는 명품축제가 적지 않다. 인구 2만 5,000명에 불과한 화천군은 매년 축제가 열리는 1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혹한과 눈길을 뚫고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찾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지역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단체장의 의지와 주민과 공무원의 노력, 지역 정체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축제야말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제대로 된 상품으로 탄생된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고민이나 노력 없이 타 지역의 성공한 축제를 모방한 ‘붕어빵축제’를 버젓이 개최하고 있다. 기존 축제의 소재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약간 변형시켜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붕어빵축제’ 축제 베끼기

 
최근 등(燈)축제를 놓고 서울시와 진주시는 갈등을 빚고 있다. 축제 하나를 놓고 서울시(시장 박원순)와 경남 진주시(시장 이창희)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 이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축제는 우리나라 전통 놀이문화 소재로 줄곧 쓰여 온 ‘등’을 소재로 한 유등축제로, 진주시는 지난 2002년부터 ‘진주남강유등축제’를, 서울시는 지난 2009년부터 ‘세계 등 축제’를 개최 중이다.
최근 진주시는 서울시를 상대로 “유등축제를 서울시가 멋대로 베끼고 있다”며 공개적인 비난에 나섰으며, 진주재경향우회와 진주문화예술재단 회원 및 김재경 진주시의회 의원 등은 서울시의 등 축제 중단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한 달 간 1인 시위에 들어가기도 했다. 또한 진주 인근지역인 부산지역 시민단체들 역시 서울시를 향해 “진주남강유등축제 베끼기를 중단하라”고 요구 중이다.
반면 등 축제 표절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서울시에서는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베낀 적 없으며, 오히려 진주시와 상생을 하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며 진주시측 주장이 사실무근이라 주장 중이다. 상황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양 지자체간 대결구도가 자칫 지역감정으로까지 번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실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축제는 42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군사 신호나 가족 간의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남강에 등을 띄운 데서 유래한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역의 자존심이며,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축제를 “등축제는 세계 보편적 콘텐츠로 특허권처럼 진주시가 소유권을 주장할 성격이 아니다”라며 행사 강행을 주장하는 서울시의 반론에 대해 진주시민들이 용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진주시는 서울시가 등축제를 연례화하면 지역 고유 축제가 고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과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돼 ‘서울공화국’이라는 말까지 생긴 현실을 감안할 때 진주시의 반발을 단순한 노이즈마케팅으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 이외에도 곳곳에선 ‘축제 베끼기’가 벌어지고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가을 전어철을 맞아 전국에서 열리는 전어축제는 보령, 부산, 광양, 서천, 장흥 등 5곳에 이른다. ‘겨울축제의 원조’로 불리는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를 모방한 얼음낚시 축제를 여는 지자체도 10곳이다. 산이 있는 지자체들에선 ‘철쭉제’, ‘억새제’ 등의 이름이 붙은 비슷한 축제가 수없이 열리고 있는 상태다.

전시성 예산낭비 축제, 통폐합 시급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초 지방자치단체들이 공식 통보한 지역 축제는 모두 752개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게 드는 소규모 축제는 제외한 수치다.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경기 평택을)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축제는 2,429개, 축제에 지원된 정부와 지자체 예산은 2,594억원으로 나타났다. 소요 예산의 60% 이상인 1,595억원은 재정 상황이 열악한 기초 지자체들이 부담했다.
축제를 지원하는 지자체들은 지역 이름을 내걸고 열리는 축제를 통해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상권을 살리려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축제는 광역지자체인 대도시보다 시·군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 경남·경북(283개)과 전남·전북(232개)에서 열리는 축제 숫자는 대구(72개), 인천(60개), 대전(40개), 광주(35개) 등 광역시를 훨씬 웃돈다. 괴산(13개)을 비롯해 충남 서천(12개), 전남 장흥, 경북 울진(각 11개) 등이 축제가 많은 지자체다.
최근 청계천 연등축제와, 진주 유등축제 분쟁, ‘홍길동 축제’와 관련한 강원도와 전라도 간 연고지 싸움 등관 관련해 전문가들은 지역축제 통폐합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순신 축제의 경우 진도와 해남에서 열렸었는데, 3~4년전 합병을 해 하나의 축제로 치뤄지고 있는 상태. 또한 축제의 소재는 같아도 상관이 없지만, 프로그램 내용이나 형식이 같으면 문제가 된다. 이러한 중복 축제의 경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지역 발전의 저해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축제의 경우 정부에서 조절을 해준다. 2010년도에 어떤 축제가 문제가 되어 행정자치부에서 지역 축제 예산을 줄여 일자리 창출로 돌린다고 하여 통폐합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충북 보은군 내 소규모로 열리고 있는 10여 개의 축제를 단일화해 ‘대추축제’ 하나로 성공적으로 통폐합했다. 여주의 쌀, 고구마 축제도 합쳐서 ‘쌀고구마’ 축제로 통폐합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 시민단체들과 시군 지역민들은 전시성 축제에 대해 축소 및 통폐합을 제기하고 있지만, 선거를 의식한 지자체장들이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면서 예산낭비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시군의 지역 축제에 대해 축소 및 통폐합 등을 추진하고 있어 감소 추세에 있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하반기 축제들의 축소 등 조정은 사실상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전시성 축제로 예산이 낭비되면서 상대적으로 도로 등 사회간접 시설에 대한 투자는 줄 수 밖에 없다”며 “최근 흉악범죄 예방을 위한 CCTV 설치 등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전시성 축제 예산 줄여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부가가치 산업, 지역 축제의 성공요인
우리나라 축제의 문제점은 관 주도의, 획일화 된 축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수 불러 먹고 마시는 게 전부인 예산낭비형, 단체장 선거운동용 축제는 과감히 줄이고 주민 참여형의, 킬러 콘텐츠를 갖춘 특색 있는 축제가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인기를 끌었던 SBS ‘월드 챌린지-우리가 간다’ 또한 영국의 이색축제인 울색(양털포대) 레이스에 참가하는 콘셉트로 진행해 인기를 끌었다. 실제 현장에는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상당수 보였는데 대표적 토마토축제인 스페인 부놀 ‘라 토마티나’ 축제의 경우도 1시간 축제를 즐기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4만 명이 찾아오고 있다. 이처럼 지역 축제가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세계적인 관광 상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고유성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지속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농어촌이 갖고 있는 경제적 자원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해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성을 가진 축제로 특화시켜 나가야 한다.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발굴·결합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해내야 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지역 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추진하는 축제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축제 행사가 아닌 주민·사회단체·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계획·추진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주장. 공감대를 형성해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축제를 통해 지역민들의 단결과 화합을 유도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축제의 홍보 방법도 다양화 돼야 한다. 축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자에게 축제를 알리고 축제에 참여해 즐기고 소비하는 데 있다. 기존 홍보방법 외에 스마트 기기 등에 기반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소셜마케팅도 필요하다.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저비용 고효율의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문객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쓰레기 투기 등은 이제 근절돼야 한다. 가지고 간 쓰레기는 가급적 가지고 오는 미덕이 필요하다. 꽃을 따고 나뭇가지를 꺾는 등의 자연훼손 행위도 삼가야 한다. 또한 무질서한 주차, 금연구역 내 흡연 등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이 관광 관련 산업이 21세기 세계 최대 산업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지역 축제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세계적인 문화 상품이 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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