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도 총선 압승 … 4년 더 재임 땐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

최근 메르켈 총리가 속해있는 기민당과 기사당 연합이 독일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기민당과 기사당는 유로존의 통합을 지지한다. 사실 독일 내에도 통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통합을 반대하는 당으로는 AFD가 있는데, 이들의 득표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메르켈이 지지하고 있는 유럽통합을 가속화 하고 지금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긴축정책을 이어나가는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굉장히 호의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월13일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州) 데민시에서 열린 정치토론회에서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는 현안을 두고 지지자와 정치인들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자 큰 글라스에 담긴 맥주를 들이켰다. 공론의 한마당인 ‘재의 수요일’ 행사에서였다. 1947년 공산권의 코민포름에 대응해 민주주의 국가들이 결성한 데민포름이 ‘데민 정치 토론’을 낳은 모태였다. 이날 모든 정당들이 지지자들과 함께 현안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메르켈이 맥주를 들이키는 모습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려는 그의 열정으로 읽혀졌다. 그런 메르켈 총리가 지난달 24일 3연임에 성공했다. 여성지도자이면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며 남성을 능가하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독일의 선택, ‘메르켈’의 승리
독일어로 개선장군을 뜻하는 트리움파토르(Triumphator). 사전에는 없는 이 단어의 여성형 트리움파토린(Triumphatorin)이 생길 전망이다. 중도우파 기민·기사당을 이끌고 지난달 총선에서 ‘역사적 대승’을 거둔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를 수식하기 위해서다. 단독 과반에 불과 5석 모자라는 압승을 올린 메르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재건과 부흥을 이룩한 콘라트 아데나워 전 총리에 비유되기까지 한다. 같은 기민당 출신인 아데나워는 1957년 50.2% 득표율로 전후 서독과 통일독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과반을 달성했다.
이번 독일 총선은 41.5%의 득표율을 올린 기민·기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더 정확히는 3선에 성공한 메르켈 개인의 승리였다. 2005년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돼 칸츨러(Kanzler·총리)의 여성형 명사인 칸츨러린(Kanzlerin)이란 단어를 탄생시킨 메르켈은 지금까지 8년을 집권했다. 향후 4년을 더하면 12년이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1925∼2013) 전 영국 총리(11년 재임)보다 집권 기간이 긴 유럽 최장수 여성 총리 자리가 예약된 상태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대처리즘에 비유해 메르켈리즘의 시대가 만개했다고 보도했다.
기민·기사당의 득표율은 선거 전 여론조사보다 2%포인트 가량 많은 수치다. 메르켈 특유의 성품과 정치 스타일, 그리고 이를 잘 활용한 선거 전략이 만든 작품이라는 평가다. 해외에서는 ‘게르만의 철의 여인’ ‘프라우 나인(Frau Nein·아니요 부인)’ 등의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부드럽고 안정감 있는 여성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다.
제1 야당인 중도좌파 사민당은 25.7%를 득표했다. 좌파당과 녹색당이 각각 8.6%와 8.4%의 표를 얻어 그 뒤를 이었다.

빛바랜 승리, 자민당의 몰락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기민·기사당과 보수연정을 함께했던 자민당의 몰락이다. 4.8%의 득표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양쪽에서 의석을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자민당이 하원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1949년 이후 처음이다. 지나치게 친기업적 이미지를 드러낸 게 화근이었다.
자민당은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개인의 자유를 더 확보하려는 노선을 채택해 왔다. 그래서 그동안 이들이 앞세운 경제 공략을 잘 들여다보면, 일부 세금 항목의 폐지 및 개편 혹은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 공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이들이 세금개편 프로그램과 같은 경제부분에만 신경을 써, 인권 및 기본권 중시의 다른 자유주의적 가치가 소외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유럽에 불어닥친 경제위기는 감세 및 규제철폐 정책의 적신호가 되었다.
이 때문에 자민당은 지난 2011년 작센-안할트 지방선거에서 단 하나의 의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이후 다른 주들의 대다수 지방선거에서도 득표율 5%를 넘지 못했다. 이렇듯 지방의회 입성에 계속 실패하면서 자민당의 위기는 현실로 드러났다. 현재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자민당은 부자들을 위한 경제정당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연방선거에도 자민당의 정책실패가 반영되었는데, ARD 선거모니터에 의하면 약 177만 자민당 표심은 기민당-기사당연합으로 향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약 33만 표가 올해 창당된 AfD(독일을 위한 대안, Alternative fo
r Deutschland)에 몰렸다는 점이다. 이들도 5%를 넘지 못해 의회등원에는 실패했지만(4.7%), 유로 폐지론을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있어서 일부 독일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유로 폐지외의 공략의 경우 자민당과 유사한 주장이 많아서 신생정당 AfD의 선전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의 새 연정 파트너는 누구
어쨌든 자민당의 지리멸렬로 메르켈의 승리는 다소 빛이 바랬다. 4년간 유지됐던 우파 연정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의회에서 법안 통과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으려면 다른 연정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메르켈 총리의 새 연정 파트너가 될까. 현재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우선 사민당(SPD)-좌파당(Die Linke)-녹색당(Gr?ne)의 적-적-녹 야권 연합이 산술적으로 가능한 상황이다(192석-64석-63석). 하지만 사민당-녹색당과 좌파당의 경우 같은 진보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국방정책, 대외정책 그리고 보건복지정책에서 이견이 상당해 연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민-기사당 연합과 녹색당(Gr?ne)과의 연정도 예상하고 있다. 녹색당의 경우 지난 슈뢰더 총리의 적-녹연정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행정경험이 풍부하다. 또한 적-녹 연정 이후 인권 및 민주주의 공략을 더욱 강화해서, 대중 및 중도정당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정책 및 이민자 및 여성정책 등에서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고, 대다수 정책이 여당과 대척점을 두고 있어서 흑-녹연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대다수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현 여당과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점찍고 있는 상황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미 1기 내각을 대연정으로 이끌어갔다. 또한 슈타인브뤼크 사민당 총리 후보자도 당시 재무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다. 물론 최저임금 및 유치원자리 확보 정책 이슈에서 일부 이견을 보이기는 하지만 지난번 경험을 통해 사민당과 정책조율을 하며 의회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ARD 설문조사에 의하면 69%의 시민들이 대연정을 동의했는데, 이는 현 유럽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슈타인브뤼크의 유럽경제위기에 대한 인식 및 대처능력, 노동정책 등이 TV토론을 통해 전문가들로부터 상당부분 인정받았다는 점도 있다.

메르켈의 당면 과제
사실 이번 선거는 독일 현지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국가에서도 주목했던 선거였다. 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유럽 경제위기에 기인한다. 특히 남유럽 국가의 경우 ‘마셜플랜2’를 천명한 슈타인브뤼크를 주목했었고, 이로 인해 독일 야권에 대한 지지성향이 강한 편이었다. 이로 인해 사민당과의 대연정 여부는 남유럽 국가들에게 있어 관심을 가지는 국제정치테마이기도 하다.
메르켈은 현재 대외적으로 두 가지 큰 숙제를 안고 있다. 유로존 금융위기 재발을 막는 장치들을 만드는 일과 그리스 정부의 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연정 협상과정에선 주요 정책과 각료 배분 등을 놓고 치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길어지면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사민당은 메르켈이 밀어붙여온 그리스에 대한 긴축 압박을 다소 완화하고 성장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후 마셜플랜을 통해 대규모 재건자금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 등 재정위기 국가에 대한 지원을 전향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국내 문제에 있어선 부자 증세와 동일 최저임금제가 협상 대상이다. 메르켈이 대연정을 구성하는 대가로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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