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반란모의·일본 원전사고 등 국가적 이슈들에 대해선 ‘묵묵부답’

 서울 한복판에 다시 촛불이 켜졌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촛불을 든 것이다.
다시 등장한 촛불시위는 5년 전인 2008년에도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당시 촛불시위는 지금보다 더 규모가 컸고, 열기도 뜨거웠다. 10대 여학생부터 30~40대 주부들, 대학생, 직장인까지 참가자들도 다양했다. 그 당시 촛불시위의 주역들이었던 ‘촛불 세대’들은 어떻게 변했고, 현재 국정원 규탄 촛불시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5년 전 그때처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사람도 있었고, ‘취업준비생’ 신분 때문에 촛불을 들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한편에선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집회·시위라는 방법 자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촛불소녀’도 있었다.
2008년 촛불항쟁의 경험이 있기까지는 길게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집단적 체험이 자리하고 있고, 짧게는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과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사건’이 그 맥을 형성하고 있다. 전자가 이미 40대가 되어버린 386들이 경험한 투쟁의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후자는 10대와 20대들이 경험한 ‘저항의 공간’ 혹은 ‘소통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바는 촛불집회를 꼼꼼히 분석하는 데 있지 않다.
특히 촛불집회 혹은 촛불 항쟁이 성공인가 실패인가를 거창하게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2008 촛불이 가지는 의미가 현재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다시 촉발된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데 있다.
과거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두 여중생을 애도하는 촛불 시위대가 한 달 동안 촛불 시위를 했다. 이들의 행위를 반미라고 공격하는 데 대해 많은 시위 참여자들은 미국에 대한 비판을 반미로 몰지 말라고 항변했다. 친북으로 모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촛불 시위대는 당연히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이적행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된다.
“(한반도에서 남북한) 전쟁이 일어나는데 전쟁나면, 북한군을 도와 남한을 혁명(무너뜨려야)하자. 그러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총으로 무장하고 남한 내 통신시설, 항만 등 시설을 파괴하자. 인터넷에도 총기나 폭탄제조방법이 있다.”
내란음모로 구속되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RO조직의 비밀회합에서 나온 발언의 주요요지다. 이는 분명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한 명백한 여적행위며 반국가적 반란모의다. 그런데 이 RO조직의 수장 이석기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원이 적과 합세하여 자신의 조국을 전복하려했으니 구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일부 세력들은 이 의원의 연행을 폭력으로 방해하고 막아섰다.
북한이 저지른 서해도발은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그렇다고 치자. 작금에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들고 나와 한국을 표적으로 한 공갈에 대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기면서 원전사고의 장본인인 일본이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우리를 협박하고 있는, 국가적인 이슈들의 중심에 어찌 촛불은 보이지 않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거의 없음에도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爆沈)이 북한의 소행일 확률은 그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맹국 미국을 공격하면서 북한의 살인 혐의자에 대해선 침묵했다. 또한 2002년 효순·미선양 사건은 분명 미군의 과실치사였다. 과실치사는 그토록 규탄하면서 북한군의 기획 살인은 물론, 국가를 전복 하려는 반란모의에 대해선 왜 침묵하는가. 진실 앞에 침묵하는 촛불세력. 그들은 과연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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