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 집단적 자위권 대상 확대…한반도 유사시 개입근거 마련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은 패전을 인정한 뒤 곧 연합군이 만든 ‘평화 헌법’을 받아들였다. 전쟁과 전력 보유, 교전권을 포기하는 내용의 헌법 9조가 핵심이다. 그랬던 일본이 ‘우향우’ 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흐름은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지난 1월 총리로 취임한 이후 빨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부터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개헌 문제까지 망라돼 있다.
이에 주변국들은 아베 총리가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사대국을 지향한다는 우려의 시각을 보낸다. 아베의 꿈은 조만간 현실이 될 가능성도 있다. 군대를 보유하는 ‘보통국가’(normal nation)로의 회귀다.

日집단적 자위권은 ‘한반도 유사시 대비용(?)’
최근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는 사례로 ‘한반도 유사시’를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자민·공명 연립여당과의 당정 협의 때 사용할 사례집에 현행 헌법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필요 사례로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원 활동’을 적시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아베 신조 내각이 남북한 간 무력충돌 등 한반도 유사시를 집단적 자위권의 적용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공식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 등이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아베 총리는 “국제법에 따라 일본도 집단적 자위권이 있지만, 집단적 자위권은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 행사 범위를 넘어선다”는 내각 법제국의 현행 헌법해석을 변경,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아베 내각은 정부가 주관하는 전문가 기구인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보고서를 정리하면 그것을 토대로 당정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놓고 당정협의를 시작하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신중한 공명당이 반발할 것을 우려해 사례집 등을 제시해 미리 설득작업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간담회가 만들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연내에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 변경을 공식 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 측에 충분한 사전 설명없이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집단적 자위권 논의를 계속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유사시’ 외에 ‘일본으로 원유를 운반하는 해상 교통로에서의 기뢰 제거 작업’도 현재의 헌법 해석으로 대응이 곤란한 사례로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아베, 헌법 재해석을 통한 개헌 ‘꼼수’
현재 일본은 헌법 9조에 따라 전력을 보유하거나 교전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일본이 자위대 이외의 군사력을 보유하기 위해서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압승을 했지만 개헌 정족수인 3분의 2(162석)를 확보하지 못했다. 연립 여당을 구성하는 공명당·다함께당 등 의원들을 다 합쳐도 마찬가지다. 이에 아베 내각은 직접 개헌이 아닌 헌법을 재해석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이하 간담회)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을 재차 검토키로 했다. 이는 동맹국이 공격받으면 반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사실상 용인한 것이다. 간담회에서 특정 상황과 대상 국가를 한정하지 않는 ‘포괄적 집단자위권’ 행사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올해 가을쯤 보고서를 완성할 계획이다.
집권당인 자민당은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헌법 해석을 재검토하기 위해 9월부터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조정을 시작할 태세다. 일본 정부는 헌법을 재해석함으로써 논란을 빚을 수 있는 구체적 사례들을 포함한 책자를 만들어 공명당과 조율할 예정이다. 사례 중에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미군 활동 지원에 나서는 것’도 포함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NHK가 20세 이상 일본 남녀 1,6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집단적 자위권’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일본 국민들은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은 29%, 반대 의견은 22%였다.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답이 40%로 가장 많았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에 집착하는 이유
아베 내각이 연내에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 변경을 공식 천명한 가운데 아베 총리가 지난 8월 이례적으로 외무성 인사를 법제국 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헌법해석을 바꾸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풀이된다. ‘집단적 자위권 긍정파’로 분류되는 고마쓰 이치로(小松一郞)는 제1차 아베 내각(2006∼2007년)때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해 설치한 ‘안전보장의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이하 간담회)’ 업무를 관장했었다.
8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논의하기 위한 ‘간담회’ 산하에 설치된 소위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검증, 헌법해석 변경을 위한 논의를 가속화하게 된다. 간담회는 제1차 아베 내각 때 고려했던 ‘공해상에서의 미국함선 보호, 미국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요격, 유엔 PKO 등에서 행동을 같이하는 타국 군대에 대한 경호, PKO 타국 군대의 후방 지원’ 등 4가지 유형에 그치지 않고 전면적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내용의 새 헌법해석을 올 가을쯤 제안할 방침이다. 최근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는 예시적 사례로 ‘한반도 유사시’를 명시적으로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베 총리도 2006년과 달리 이번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베 총리가 지난 2월에 설치한 간담회의 회장대리인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고쿠사이(國際)대 학장은 8월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유형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전면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이 변경되면 평화헌법의 요체인 9조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 와타나베 오사무(渡邊治) 릿쿄대 명예교수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민당은 7·21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손쉽게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확보하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日자위대, 이미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전제 훈련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항공자위대가 이미 지난해 미군 폭격기 지원 훈련을 실시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도쿄신문은 일본 항공자위대 F15기 편대가 지난해 알래스카에서 미 태평양공군 사령부 주관으로 진행된 ‘레드플래그 알래스카(RFA)’훈련에서 미국 전략폭격기 B5를 지원·보호하는 상황을 상정한 훈련을 실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현행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전제로 한 훈련으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전제로 한 자위대의 훈련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견해와 전면 배치된다. 도쿄신문은 항공막료감부(참모부)가 발행하는 내부 매체 ‘비행과 안전’ 지난해 7월호에 이같은 내용을 증명하는 훈련체험기가 실렸다고 전했다. 문제의 체험기에서 필자는 당시 훈련에 대해 “자위대 편대가 B52기의 폭격을 상정해 과감하게 선두에 서 경로를 여는 등 끈질기게 B52를 원호했다”고 묘사했다. 이 수기는 자위대 제6항공단 소속의 1등 공위(대위에 해당)가 쓴 것으로 알려졌다.
전후 제정된 평화헌법(헌법 9조)에 의해 집단자위권 행사가 금지된 일본은 그간 일본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함정을 자위대가 호위하는 것은 개별적 자위권 범위 내에 있다는 견해를 보여왔다. 그러나 전략 폭격기의 엄호 임무는 국회 등에서 일절 논의된 바가 없다. 도쿄신문은 일본 정부가 체험기에 소개된 형태의 훈련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