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비화 조짐 보이고 있는 원전비리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나라의 원전은 총 23기로 원전규모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독일에 이어 6위, 밀집도는 세계 1위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커져가는 가운데 지난 2011년 11월 영광원전 5, 6호기에 사용되고 있는 부품 중 소모용 부품들의 검증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는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사건의 발단은 4월26일 원자력 규제와 관리, 감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신문고에 ‘케이블 검증서류 위조’건이 접수되면서 부터였다. 검찰이 조사에 착수하면서 숨겨져 있던 원전 관련 비리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전 유관기관간 상호 대응체계 미흡
국내 원전에 납품된 케이블의 품질 검증 서류가 위조됐다는 제보가 올라온 지 보름이 지난 5월10일, 한국수력원자력은 그제야 한국전력안전기술원을 통해 케이블 품질 증빙서류 요청 공문을 받았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는 한 달이 지난 5월25일에서야 보고를 받았다. 보고가 늦어짐에 따라 문제 대응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검증서류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진 제어케이블은 EQ(Equipment Qualification)테스트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핵심 부품으로서 사고 발생 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안위는 위조 사실을 인지한지 한 달 만에 원전을 중단시켜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신속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은 데는 유관기관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일었다. 산업부는 한수원을 통해서 이번 사건을 확인했고 원안위로부터는 아무런 공식 보고도 받지 못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원전 관계기관들이 상호 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원안위는 5월28일 위조사실에 대해 확인하고 이와 관련해 한수원 관련자 3명을 대검찰청에 고소했다. ‘검증서류위조 제보’에 대한 내용 조사 결과, 2008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의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위조 내용은 국내시험기관이 해외시험기관에 의뢰한 시험결과 자료 중 불합격 부분을 임의로 삭제한 것으로 원본에는 12개의 케이블 샘플 중 3개만이 합격이었으나 합격한 2개와 불합격한 1개의 결과만을 제출해 검증서류를 위조했다. 서류가 위조된 제어케이블은 원전사고 발생 시 원자로 냉각을 위한 안전계통에 제어신호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데 원안위는 문제의 원전들의 안전성 분석 결과 원전사고 시 성능을 확보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케이블 교체를 실시하도록 했다.
또한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원전비리 수사단’이 설치됐고 5월30일부터 JS전선과 시험업체인 새한티이피, 승인기관인 한국전력기술의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검증업체인 새한티이피는 2010년 12월부터 2012년 7월까지 23건의 수주를 했고 이들 사업은 고리원전, 한빛(영광)원전, 신울진원전, 신고리원전과 아랍에미리트 브라카 원전 등 국내외 14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티이피는 JS전선과 우진, 두산중공업 등 3개 회사의 공급제품에 대해 필수검사를 하지 않거나 시험성적서를 위조했다. 우진이 생산해 납품한 케이블에 대한 방사선 조사를 하지 않고 합격시켰으며 두산은 케이블로 부품을 만들어 한수원에 납품했다. 원전 부품의 최종 승인기관은 한국전력기술인데 이들은 새한티이피의 성적서를 그대로 믿고 납품을 승인했다. 이 외에도 위조된 부품 중에는 케이블 외에도 충전기 성능 검증, 정지형자동절체 스위치 기기 검증 등 안전등급 제품 검증이 다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원전비리 수사단의 조사에 따르면 새한티이피가 위조한 시험 성적서가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 품질시스템 자격을 인증 받고 검증기관이 된 새한티이피는 검증 전문 인력이 8명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원자력 기기 검증기관 최초로 KEPIC(전력산업기술기준) 인증을 취득했다. 또한 새한티이피의 주요 임원직에는 한국전력기술 출신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비리집단으로 전락한 한수원
원전비리수사단에 따르면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제어 케이블 납품업체인 JS전선은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에 납품한 제어케이블뿐만 아니라 신고리 3, 4호기에 납품한 케이블 3가지의 시험성적서도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JS전선이 2010년부터 올해 4월까지 신고리 3, 4호기에 납품한 케이블은 120억 원 상당으로 열노화 처리를 하지 않고 열풍기로 표면만 그을린 케이블을 캐나다의 검증기관에 보내 합격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납품된 제어용, 전력용, 계장용 케이블은 원전의 핵심부품으로 강한 열에 버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안전성(Q) 등급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표면만 그을린 멀쩡한 케이블로 검증받아 납품했다. 이러한 불량 케이블의 납품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납품 승인까지 평균 50일 가량이 소요되는데 JS전선의 제어케이블은 2008년 1월30일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지 6일 만인 1월30일에 납품이 승인됐고 2월11일부터 곧바로 납품이 시작됐다. 이에 검찰은 새한티이피, JS전선, 한전기술 외에도 한수원이 시험성적서 위조에 깊게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특히 검찰은 전 한국전력기술 부장으로부터 2008년 제어케이블 시험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한수원에 보고했으나 묵살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처럼 빠른 승인 절차에 한수원을 비롯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조사가 계속되면서 한수원은 물론 원전관련 업계의 총체적인 비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고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 수사가 이어졌다. 지난 8월23일에는 납품업체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 한수원 발전본부장 박 모씨가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조사기관 한전, 단 한차례 감사도 하지 않아
한수원은 한전의 100% 자회사로서 지난 2001년 너무 커져 버린 한전의 힘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기 위해 분리됐다. 한수원이 생산하는 전력은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판매하고 있으며 이들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가 10년 이상 유지되다 보니 고여 있는 물에서 악취가 풍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2년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 지침에 따라 한수원과 감사협약을 맺어 한수원에 대한 조사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분리 이후 단 한 차례도 한수원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발생한 불량 부품 사태도 총체적 감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원안위 역시 원전 비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자력 관리, 감독을 총괄하는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식물위원회’라는 논란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원안위는 투명한 감시를 위해 민간위원들을 대거 위촉했으나 이들이 원자력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원안위 실무진이 짜놓은 대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회의 참석도 저조해 정족수만 채워 열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전 정권 실세까지 등장, 그 끝은 어디인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했고 검찰은 수사를 확대해 한수원과 원전협력업체뿐만 아니라 원전 부품을 납품해 온 대기업과 정치권력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섰다. 여기에는 논란이 된 JS전선의 69%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인 LS전선과 현대중공업도 포함됐다. LS전선은 시험성적 위조와 경쟁업체와의 가격담합 등의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원전에 전력용 변압기를 납품하는 데 편의를 제공받기 위해 한수원 부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특히 ‘UAE 원전 수출 사업’은 지난 이명박 정권의 최대 성과로 손꼽히고 있어 검찰의 칼끝이 지난 정권의 실세들에게로 향했다. UAE 원전 수출 사업은 45조 원대의 대규모 사업으로 각종 로비전이 펼쳐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가장 큰 금품로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한국정수공업의 대표 이 모 씨는 원전 수처리 설비 수주를 위해 ‘영포라인’ 출신 브로커 오희택 씨에게 13억 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검찰에 체포된 오 씨는 건네받은 돈 중 3억 원을 전 지식경제부차관인 박영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검찰은 박 씨가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던 만큼 현재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 씨를 소환 조사하고 원전비리의 몸통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불량 부품 사용 원전의 고장 잇따라
안전성을 최우선해야할 원전이 납품업체와의 검은 거래로 점철되어 있다 보니 원전 고장으로 인한 가동 중단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납품업체와의 검은 거래로 불량 부품을 사용하다 보니 원전의 가동 중단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전력 수급 문제뿐만 아니라 대형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OPIS)의 조사결과, 원전의 고장은 한 달에 1.3회 가량으로 원전의 고장 정지로 전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원전 고장은 152건으로 한울 45건, 한빛 36건, 고리 35건, 월성 21건, 신고리 11건, 신월성 4건이다. 이 중 계측결함으로 인한 고장이 가장 많았고 전기결함과 인적실수, 기계결함이 뒤를 이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고질적인 원전 비리와 잘못된 수급예측, 과도한 전기 소비의 삼중고로 극심한 전력 수급난을 겪었다. 국민들이 전력 사용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한전과 한수원, 관련업체와 고위공직자 19명이 수천, 수십억 원의 비리 혐의로 구속됐고 수백여 명이 수사 선상에 올라와 있다. 원전 부품의 시험성적표 위조사건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대기업과 지난 정권의 고위 관료들의 게이트 사건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원전 비리의 끝이 어디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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