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인가

나만의 삶 / 훌리오 노보아 폴란코 

그대들은 꽃처럼 살아라
사람들이 항상 물주고 보살피고 찬양해주지만
한낱 화분에 매인 운명이 되어라
나는 못생긴 키다리 잡초가 되리라

독수리처럼 절벽에 매달려
높고 거친 바위들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리라
돌 껍질 뚫고 나온 생명으로
광활하고 영원한 하늘의 광기에 당당히 맞서리라

시간의 산맥 너머, 또는 경이의 심연 속으로
내 영혼, 내 씨앗을 날라주는
태곳적 바다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리라

차라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리라
모든 이가 피하는 잡초가 되리라

달콤하고 향기로운 라일락 향 대신
차라리 퀴퀴하고 푸른 악취를 풍기리라
홀로 굳세고 자유롭게 설 수 있다면
차라리 못생긴 키다리 잡초가 되리라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시이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백석 시인이 떠올랐다. 또 부와 명성을 쫓는 화려한 생활을 거부하고 문명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한 '월든'의 소로우도 생각났다.

"그대들은 꽃처럼 살아라 / 사람들이 항상 물주고 보살피고 찬양해주지만 / 한낱 화분에 매인 운명이 되어라 / 나는 못생긴 키다리 잡초가 되리라" 문명에 길들여져 참된 삶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글도 없으리라. 작가들이 자본의 폐해와 문명의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글을 써내려갔던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기자를 포함한 대부분이 화분에 매인 운명처럼 살고 있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때론 우러러보지만 자유롭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심지어 자유롭지 않다는 것조차 모르고 사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구절을 보고도 키다리 잡초가 아닌 꽃처럼 살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시인은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인지 말한다. "독수리처럼 절벽에 매달려 / 높고 거친 바위들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리라 / 돌 껍질 뚫고 나온 생명으로 / 광활하고 영원한 하늘의 광기에 당당히 맞서리라 // 시간의 산맥 너머, 또는 경이의 심연 속으로 / 내 영혼, 내 씨앗을 날라주는 / 태곳적 바다의 산들바람에 흔들리리라" 한 편의 불교 경전을 보는 듯한 2연과 3연에서는 대우주와 소우주가 하나 되는 순간, 그 현재를 사는 영원한 순간이 느껴진다. 하늘의 광기에 맞서는 그 당당함이 아름다우면서 눈물겹다.

삶이 주는 고통에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자. 그들은 올곧다. 또한 자유롭다. 하지만 그 고통을 문명과 사람들이 주는 혜택 속으로 피하려는 자.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시인은 "인간의 손에 결국 뽑히고 마는 / 좋은 냄새를 풍기는 꽃이 되기보다" "차라리 남의 눈에 띄지 않아 / 모든 이가 피하는 잡초가 되리라"고 말한다. 

내 자신에게 묻는다. 좋은 냄새를 풍기지만 자유롭지 못한 꽃으로 살 것인가. 남의 눈에 띄지 않아 모든 이가 피하지만 자유로운 잡초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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