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가능성 희박으로 명분 상실… 한국 국민 피해 소극적 대처 아쉬워
주한미군 용산 기지내 아파트 건설 논란으로 주한미군문제가 그 본질부터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난 90년 미군기지 이전 방침이 발표돼 서울시는 신청사 건립과 민족공원 조성 방안을 계획중이었다. 하지만 이번 아파트 건립은 미군의 기지이전 불가 방침으로 여겨져 주한미군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재정립할 시기가 됐음을 나타내고 있다. 앞으로 4반세기 안에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 주한미군은 언제까지 어떠한 명목으로 주둔하게 될 것인가 심각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지난 한해와 올해 초까지 유난히 주한미군 문제가 많이 부각됐다.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을 손봐야한다는 지적은 물론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오염이나 훈련장을 둘러싼 갖가지 고발이 잇따랐다. 급기야는 서울 용산기지 안에 1000여 가구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미군의 계획이 노출되면서 시민단체는 물론 서울시까지 극력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미군 용산기지 주변에서는 거의 1년 내내 미군을 규탄하거나 한국에서의 철수를 요구하는 각종 시위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지난 50년간 이 땅에 주둔해온 미군의 존재의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와 나아가 세계 정세 안에서 각국의 이해와 자국의 이익을 고려해 신중히 거론돼야한다.

누구를 위한 주둔인가

해방 이후, 대한민국 건국을 전후하여 철군했던 주한미군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주둔하게 된 것은 1950년 6·26동란에 참전하면서부터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는 수많은 외국군이 주둔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시대 한사군부터 삼국통일시절 신라와 연합군을 형성했던 당나라군대가 있었고, 고려시대 원나라군, 조선시대 명나라군과 청나라, 일본군까지 제각기 세력 균형을 위해 혹은 정복의 전초기지로의 한반도를 활용하려 했었다. 공통점은 모두 그 정치군사적 목적을 불문하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착취의 대상으로 한반도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주한 미군은 어떻게 볼 것인가. 주한미군을 바라보는 시각은 세가지다. 첫째는 혈맹으로서 대한민국의 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은인인 군대라는 것, 둘째는 중국과 러시아가 사실상 북한의 종주국으로서 역할 했듯이 대한민국의 종주국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패권주의의 일환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6·25 전쟁동안 미군은 160여만 명이 참전하였다. 사상자 또한 전사자 10만 3천여 명을 포함 총 15만 8천여 명이나 된다. 그 외에도 경제원조 62억, 전쟁지원 180억, 군사원조 40억, 주한미군 유지비 122억 등 총 404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원조를 제공했다.
국방부에 의하면 주한미군은 또 막강한 군사력뿐 아니라 각종 첨단장비를 이용한 정보수집과 경보기능 등 그동안 북한의 대남 전쟁도발 억제력 강화에 큰 역할을 했고, 안보비용 절감과 경제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향후 5년간 매년 투자비 32억 달러, 유지비 20억 달러 등 총 260억 달러를 투입해야만 대체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3조 8천억 원이 이른다. 국방부에 의하면 안보비용 절감뿐 아니라 미군의 주둔으로 인한 한국인근로자 고용, 소비지출 등의 부수적 경제효과도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는 추산이다.
상징적 역할에 대한 주둔 이유도 자주 이야기된다. 한·미 안보동맹관계의 상징으로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보장하고 우리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의미하는 인계철선의 기능도 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가 가지고 있는 미군에 대한 일관된 생각이다.



주한 미군으로 인한 피해
주한미군 범죄는 67년부터 98년까지 정부 공식 통계로 5만 82건이 발생했다. 91년까지 매년 1,100∼2,300여 건, 92년부터는 연평균 700∼800건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재판권 행사율은 7.4%에 불과했다. 이것은 미국이 요청하면 한국이 재판권을 포기하도록 되어 있고 공무판단권이 미국에게 있기 때문이다.
매향리 사격장(쿠니 사격장)같은 경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조사한 결과 폭격을 받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과 비교했을 때 3,4배 정도 혈압이 높고, 주민의 35% 이상이 청각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가축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젖소의 경우 외지에서 들여오면 거의 사산했고, 착유량 또한 타지역의 농장에 비해 30% 이상 떨어지고 있다.
주한미군 범죄중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는 환경범죄다. 미군이 사용, 관리하고 있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필승사격장에서 저장시설물 바닥과 벽을 통해 1천 200갤런의 디젤유가 토양으로 유출됐다. 대구에서도 미군부대 캠프워커 내에서 항공유 유출사고가 있었지만 당시 오염된 토양을 미군측은 제대로 복구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또 용산 미8군기지에서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버린 것이 적발됐으며 원주 미군기지 캠프롱에서도 기름 유출사건이 일어나는 등 수많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군 고압선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지난해 7월 파주에서 대우제판 카메라 조립식 공장 증축현장에서 인부 전동록씨(54)가 22,900V의 미군 고압선에 감전돼 4도의 중화상을 입고 사지를 절단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하남시의 이용근씨도 미군이 관리하는 고압선으로 인해 건물 증축 공사가 중단되는 불편을 겪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 국민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전혀 복구되거나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으로 인한 피해가 이렇듯 속출하는 것은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한미행정협정’무엇이 문제인가

한미행정협정은 1967년 2월 9일 발효됐다. 하지만 형평성 면에서 미군에게 지나친 특권적 지위를 주는 차별적 협정이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1991년 일부 개정되었지만 NATO협정이나 미일협정에 비추어볼 때 여전히 상호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규정들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불공정한 한미행정협정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심해지자 지난해 SOFA개정협상을 통해 소파 본협정, 합의의사록, 양해사항을 개정하였고,‘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한국인 고용원의 우선 고용 및 가족구성원의 취업에 관한 양해각서’를 새로 추가하였다. 하지만 지난 SOFA개정협상안 역시 여론의 지탄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다.
신설된 환경조항의 경우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선언적 문구에 불과하다고‘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은 주장했다. 본협정이 아닌 합의의사록에 신설된 환경조항의 경우“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정한다”“합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관련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는 식이고 환경 오염시 원상복구나 피해배상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역시“주기적으로 환경이행실적 평가를 수행하는 정책을 확인하며”라는 식의 선언적 문구 이상이 아니다.
일부 개정된 부분도 여러 단소조항이 달려 있어 개정의 실제 의미를 상실하였다. 게다가 공여지가 침해된 경우 한국측이 침해 제거 조치를 취하고 미국측에 행정적 지원을 제공키로 하는 등 개악된 부분도 상당히 많다는 분석도 나왔다.
불공정한 한미행정협정의 예
△구속수사불가 조항-피의자가 대한민국의 수중에 있는 경우 그 피의자는 요청이 있으면 미합중국 군당국에 인도되어야하며 모든 재판절차가 종결되고 또한 대한민국 당국이 구금을 요청할 때까지 미합중국 군당국이 계속 구금한다. (본 협정 제 22조 제5항 일부)
△영구무상지원-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하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
△환경-미합중국 정부는 본 협정의 종료시나 그 이전에 대한민국 정부에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에 이들 시설과 구역이 미합중국 군대에 제공되었던 당시의 상태로 동 시설과 구역을 원상회복 하여야 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본 협정 제4조)
△공무중 발생한 손해배상-미합중국만이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이 그의 25%를, 미합중국이 그의 75%를 부담하는 비율로 이를 분담한다. (본 협정 제23조 제5항)

주둔 명분 약화 “남침 가능성 희박"

지금까지 주한미군 주둔의 최대 명분은 바로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북한의 교류와 화해, 이에 따른 긴장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미군주둔의 명분은 매우 약화되었다. 이런 상황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새로운 역할정립에 대한 목소리가 자연히 일고 있다.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전부터 우리 정부를 상대로“주한미군의 문제는 한미간의 사안이어서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이러한 상황을 이미 의식하고 견제해왔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한반도의 정세는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김대중 대통령은“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이 사라졌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남한 의식조사에서도 이같은 상황은 그대로 나타났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37.9%가‘매우 낮다’53.2%는‘낮은 편이다’라고 응답해 91.1%의 응답자가 전쟁 가능성을 낮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보수파의 선봉인 제시 헬름즈 상원 외교위원장은 남북정상회담 직후‘남북한 사이의 진정한 화해’를 전제조건으로“미국은 3만 7천명의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주한미군 철수는 당연하다며 주한미군의 역할을 남침 저지용으로 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미국은 이미 통일 이후에도 동북아 세력균형을 위해 계속 한반도에 주둔할 뜻을 밝힌 바 있다.



동북아 세력 균형론과 문제점
동북아 세력 균형이란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강대국들 중 어느 한 나라도 한반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방적 패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를 뜻한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의 영향력 팽창을 견제한다는 의미가 강했고 탈냉전 이후에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견제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의 강력한 부상이 한반도에 던질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견제한다는 의미도 크다.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주일미군의 지위도 불확실해지고, 이에 따라 일본의 재무장이 가속화되어 중국과의 지역 패권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중국과 일본의 패권경쟁은 또한 한국을 자극하여 군비경쟁 구도에 휩싸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한미군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안정자(stabilizer) 역시 일방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의 이삼성교수는 “현재의 동아시아질서의 근본적 한계가 동아시아국가들이 서로 직접적이고 횡적인 연결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미국을 매개로 종적이고 간접적으로 상호연결된 기형적인 질서라는 점이다. 이 상황을 미국을 매개로 해서만이 아닌 상호간 직접 연결되는 연대를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하는 안보질서를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유지군’으로 전환 논의

남북관계를 풀어가 한반도에서 냉전을 해체하고, 주변국들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 주한미군문제를 재고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에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방안으로 평화유지군으로의 대체가 논의되고 있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비롯한 20여명의 관련 연구자들은“철수이외에도 다양한 접근과 대안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에 주한미군이 장애가 되지 않고, 통일이후에는 완전철수를 실현할 대안 중에 하나로 고민해볼 만한 주제라는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화하고 여기에 주한미군이 일부로 참여하는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자는게 이교수의 주장이다. 주한미군의 평화유지군으로의 전환은 평화체제단계, 국가연합단계, 통일국가단계의 3단계로 나누어 군축과 함께 실행한다. 평화체제단계에서는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의 감축 및 후방으로의 이동을 통해 남한내에 상징적인 수준만 유지하며, 비무장지대에 주한미군의 일부가 포함된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킨다. 국가연합단계에서는 남한내에 주둔하던 주한미군은 완전 철수하며, 다국적 평화유지군은 그대로 유지된다. 통일국가단계에서는 완충군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됨에 따라 다국적 평화유지군 마저 철수하게 된다.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한미군은 우리를 도우러 온 고마운 존재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미군범죄 소식을 접하면서도 제대로 처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제 주한미군의 위상에 대해 나아가 존재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공론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4반세기가 되기 전에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만약 그리되면 북한의 남침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주둔해온 미군의 주둔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발빠르게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계속 주둔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군 없는 세상에서는 안전하게 살 수 없다는 말인가?
실제 지금 우리는 안타깝게도 미군없는 한반도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있지 않다. 일부 운동세력의 철수 주장과 정부의 계속 주둔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적이었을 뿐, 정부도 시민사회도 사실상 미군 없는 미래의 한국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냉전시대 주한미군문제가 성역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마이뉴스와 평화네트워크에서는‘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자’라는 제목의 기획을 공동으로 펼치고,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미군 철수와 그 이후의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 내용중 첫 번째는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사고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북한의 남침을 막을 수 있다는 냉전적 사고에서 북한의 남침이 없는 한반도를 이끌어가겠다는 평화지향적 사고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불안한 안보가 아닌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될 경우 군사력의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 여전히 국가안보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자주국방에 대한 요구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은 자국은 물론이고 타국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는 인권옹호국이라는 나라가, 보호해야할 나라의 국민을 해치는, 즉 살해, 강간, 강도, 환경오염, 재산권 침해 등의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될 것이다.
해방과 분단, 전쟁과 적대적 대립으로 이어진 한국현대사에서 미군은 항상 힘의 실체로 존재해왔다. 따라서 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하기란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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