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수입 정합기에 의존했던 국내 인쇄업계에 새 바람

많은 사람들이 ‘뉴 미디어가 종이책의 존재를 위협하고 전자책이 책의 미래’라는 말들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종이책의 냄새를, 책장 넘기는 소리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종이책의 미래를 낙관해 볼 수 있다. 책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제책’은 책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과정이자 조건이다. 제책에 필수적인 정합기를 개발해 온 진일에스앤피(이순일 대표)는 국내 업계 최초로 세계 수출 길을 열며 제책산업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책을 묶는 과정인 제책은 책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책을 통해 지식을 확산시키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종이, 편집, 인쇄의 과정을 하나로 종합하는 제책은 정합기를 통해 이뤄진다. 진일에스앤피는 정합기 ‘아이디온 170’을 개발해 국내 제책 시장의 변화를 주도함은 물론 인쇄업의 메카인 일본에 제품을 수출한 국내 유일의 기업이다. 지금까지 외국 기술력에 의존해 고가의 기계를 수입해야 했던 시스템에서 우리의 기술을 수출하는 경지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순일 대표는 “진일에스앤피는 2001년 설립 이래 세계 1위 기업을 목표로 꾸준한 연구, 개발, 투자를 이어온 결과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고무적인 성과와 달리 진일에스앤피는 경기도 파주의 작은 가건물을 여럿 이어 만든 작은 회사다. 임차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공장 옆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사용할 만큼 열악한 상황에서 14명의 직원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과 유럽 업체를 따돌리고 일본 최대 제책업체에 정밀인쇄기계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생산성 2배 올린 획기적 기술 
진일에스앤피가 수출에 성공한 ‘아이디온 170’은 높이 1.6m, 길이 30m에 이르는 자동화 설비로서 인쇄된 종이를 페이지대로 정렬하는 장비다. 이 장비를 수입하기로 한 일본의 니포소고세이혼은 1951년 문을 열고 일본 전역의 10여 곳에 공장을 둔 일본 최대의 제책업체로 지난해 초 사이타마공장에 작은 기계 1대를 시범 납품한 결과, 성능이 우수하다는 판단에 올해 대형 정합기인 아이디온 170을 주문해 왔다. 

이 대표는 “아이디온 170은 시간당 최대 책 1만 5,000권 분량의 인쇄된 용지를 페이지 순으로 정렬하고 카메라로 인쇄 내용과 종이 두께를 촬영해 에러를 실시간으로 검증하고 장비를 부분적으로 가동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진동과 소음이 적고, 그간 정합, 접착, 재단 등으로 이어지는 인쇄 후 공정 중 정합기 성능이 다른 설비의 기능에 못 미쳐 발생했던 병목 현상을 방지하고 생산성을 두 배 이상 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아이디온 170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지난 2008년 독자 개발한 센서 방식 난장 검출장치 Page Recognizer와 2010년 개발한 난장검출장치인 EYEON-R7을 통해 아이디온 170의 모든 시스템을 직접 개발, 생산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에서 한 수 앞섰다는 평가다. 

“EYEON-R7의 신개념 화상 관상법과 화상패턴 매칭 기술, 위치 트랙킹 시스템 등의 첨단 기술은 완벽에 가까운 난장기술입니다. 더욱이 정합 치형 독립구동으로 라인 일부만 가동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효율적 공정이 가능해졌고 난장 제책 사고에 완전히 대비해 비용 절감과 양질의 제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습니다.”

아이디온 170은 각종 센서와 전자장치가 일률적으로 정합 작업을 진행해 페이지 뒤바뀜이나 인쇄물의 중복 등 다양한 난장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대량의 난장으로 인한 시간적 물리적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로써 난장 제책 사고에 완벽하게 대비하고 철저한 전수 검사 후에도 쏟아져 나오는 오류 페이지로 골머리를 앓았던 인쇄사와 제책사의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하는 한편, 3~4배 비싼 일본산 정합기를 수입해 쓰던 우리나라 업체들에게도 희소식이 되고 있다. 

진일에스앤피는 이 설비의 주요 부분을 특허 등록해 이로써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특허 5건, 특허출원 2건을 보유 중이며 2010년 5월에는 이노비즈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토록 작은 회사에서 인쇄 강국 일본을 놀라게 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는 ‘회사의 경쟁력은 기술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가격이다’라는 이 대표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외형을 바꾸기보다 연구와 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결과, 일본에서 4대째 제책을 해온 시부야분센가쿠에 첫 납품을 시작으로 니혼시코 이지마세이혼 등을 거쳐 일본 최대 제책업체인 니포소고세이혼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은 진일에스앤피. 이들의 일본 시장 개척은 인쇄 후 처리시설 분야의 최고 업체로 손꼽히는 스위스의 뮬러마티니의 요청이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뮬러마티니 본사의 기술영업담당인 슈바이처는 파주 능안리 공장을 여러 차례 방문해 제품의 성능을 점검한 후에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고 이 대표에게 직접 손을 내밀었으며 이 대표는 2008년 스위스 뮬러마티니 본사를 방문해 협력을 강화하고 자사의 제품에 아이디온 170을 연결하기로 했다.   

기술에 대한 확신으로 인쇄제조업에 도전장 

 

제책업은 숙련된 기술력과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이 30~4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2001년 문을 연 진일에스앤피는 신참 중 신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인 일들을 일궈가고 있다. 

이 대표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쇄제조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처음부터 일본 시장을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인쇄관련 제조기들을 수출입하는 무역업에 종사했던 이 대표는 오랜 시간 어깨 너머로 배운 인쇄에 대한 지식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기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면 기존의 일본 제품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게 됐다.

“기술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을 하다 보니 국내 인쇄산업은 답보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업계의 상황, 제품의 사양, 고객의 요구 사항을 두루 충족시키는 선진 기술 개발이 필요했습니다.”

3년의 기한을 정해 두고 기술 개발에만 몰두한 그는 시행착오 끝에 놀랄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제조업에 도전하는 업체의 99%가 실패하는 국내 시장에서 기적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 이 대표는 “시장이 어렵다 보니 대기업만이 설비 교체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고가 시장에 주력해 더욱 고도화되고 자동화된 설비를 만들어야 합니다. 호의호식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것이 제조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라고 단언했다. 

뒤늦게 인쇄제조업에 뛰어 들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신뢰하는 제품을 개발한 진일에스앤피가 세계 인쇄 시장을 선도할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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