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43호=장경동 칼럼위원) 1997년 중반,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두 여인이 죽었습니다. 한 명은 마더 테레사 수녀이고, 다른 한 명은 다이애나 비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어렵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평생을 헌신하다가 86세로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다이애나 비는 화려한 축복 속에 결혼했지만 남편인 찰스 황태자가 외도를 하자 말 조련사, 럭비 선수, 축구 선수 등 많은 남자를 찾아 맞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거부인 새 애인 도디 앨 파예드와 밀애를 나누던 중 집요한 파파라치의 추격을 따돌리려다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인생은 짧다는 것입니다. 사실 36세의 인생도 짧지만 86세의 인생도 긴 것은 아닙니다. 한순간인 것입니다. 이 짧은 인생을 사람들은 헛되게 소비합니다. 가장 행복해야 할 가정에서주차 괴로운 신음을 내뱉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원인을 돌리며 화해의 몸짓은 하지도 않습니다. 가장인 남편이 먼저 화해를 청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사실 모든 남자는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남편들은 자기 배가 부르면 그냥 자자고 할 뿐 아내가 저녁을 먹었는지는 잘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난 저녁 먹었는데 당신 먹었어? 내가 먹을 것 좀 사 왔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훌륭한 남편입니다.

미처 저녁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픈 아내가 뭐라도 먹고 잘까 하고 뒤척여도 잘 모를 정도로 무신경합니다. “뭐하고 있어? 일찍 자자니까”하고 아내를 옆에다 눕혀 놓고는 “왜 안자? 고민 있어?”라고 말하는 게 대한민국 남편들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다릅니다. 남편 걱정을 합니다. 언제나 “저녁 어떻게 했어요?” 하고 물어봅니다. 남편은 피곤하고 귀찮은 생각에 “괜찮아, 오늘 점심을 잘 먹어서 든든하네. 그냥 자도 되겠어”라고 말해 버립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그래도 남편이 혹시 배고플까봐 뭐라도 챙겨 주려고 합니다. 그게 아내의 마음입니다.

왜 남편은 안 하는데 아내는 하는 걸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아내가 성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숙한 아내가 흔들리면 가정이 위험합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또 사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아내들이 훌륭한 김에 조금만 더 훌륭하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신랑을 부를 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부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은 정말 중요합니다. 밥을 먹다가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로 “여보”라고 부르면 다음 말을 안 해도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부르면 “왜 또 지겹게 부르고 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의 “여보!”는 남편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두 번째의 “여보!”는 말하는 순간 이미 상대방의 심경을 건드려 놓습니다. 이런 스트레스가 사람의 몸속에 계속 누적되다 보면 기쁨의 문이 닫혀 버립니다. 웃을 상황에서도 웃음이 안 나오고, 기뻐할 상황에서도 기쁨이 없어집니다. 안 좋은 것만 계속 느껴지고, 웃을 일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깔깔거리며 웃는데 혼자만 ‘뭐가 좋다고 또 웃는 거야?’하게 됩니다.

생활 속에서 조금만 웃을 일이 있어도 활짝 웃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조건 웃으세요. 웃을 일이 없으면 그냥이라도 웃으세요. 그렇게 해서 웃음의 실력을 늘리세요. 웃음의 실력을 늘려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행복해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즐거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감사하세요. 하다 보면 감사도 늘고, 사랑도 늘고, 웃음도 늘어납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우리 부부는 행복한가? 행복한데 행복한 줄을 모르는 것은 아닌가?

인생이라는 것이 별것 아닙니다. 어려움도, 고난도, 역경도, 서러움도 많겠지만 참고 잘 견디세요. 여자가 웃으면 가정이 웃지만 여자가 울면 가정도 웁니다. 가정의 꽃은 여자입니다. 그 꽃이 시들어 버리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 됩니다. 아내의 웃음과 기쁨이 가정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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