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의 욕망과 닮은 현대인의 욕망 찾기

[시사매거진 243호=이관우 기자] 한국 최고의 미술평론가를 뽑으라면 당연 유려한 문체와 전통미술 해설로 인기 급부상인 손철주(孫哲柱·64)다. 그는 과거 국민일보 미술담당 기자로 취재활동을 전개하며 오랫동안 국내외 미술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첨병 역할을 도맡았다.

이후 국민일보 문화부 부장과 동아닷컴 인터넷취재본부 본부장을 역임하다가 1997년에는 미술 교양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를 출판하며 미술평론가로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 전통미술에 대한 해설서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 책은 현재까지 베스트셀러를 넘어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러한 손철주 학고재 주간을 만나 옛 그림과 전통미술의 매력에 대해 들어보았다.

젊은이들에게 옛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 교훈을 들려주기 위해 강의나 글을 쓰고 있다는 손철주 미술평론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 정통미술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동양미술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의 욕망, 겉과 속이 다르다?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 조선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옛 그림 속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모습은 물론 은밀한 욕망과 기상 높은 이념이 담겨져 있다. 아울러 순수하고 고매한 그들의 동경과 기원이 깃들어 있다. 그림 속에 그려진 소재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옛날 화가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선연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그러한 ‘옛 그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현대인의 가슴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욕망이 옛 사람들의 욕망과도 닮아있다. 아울러 그들의 미래를 향한 염원과 이상과 꿈이 오늘날 우리의 것과도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철학자 칼 융과 프로이드는 ‘우리의 꿈속에는 이미 구석기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바람이 들어가 있다’고 정의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의 꿈속에도 이 땅에 살던 선인들의 꿈과 희망이 여전히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전제로 옛 사람들의 이상향을 찾아 옛 그림 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면 그들의 욕망과 표현이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옛 그림은 겉과 속이 다른 하나의 퍼즐게임과 같다.

#1. 문인화가 심사정의 <오이를 서리한 고슴도치>

첫 번째는 심사정의 <오이를 서리한 고슴도치> 그림이다. 이와 비슷한 ‘고슴도치’ 관련 그림을 겸재 정선과 화가 홍진구도 그렸다. 그중 심사정의 그림이 가장 해학적이다. 이 그린을 그린 심사정은 본래 양반 사대부 가문의 문인화가다. 당시는 궁중에서 녹봉을 받는 중인 출신의 화원이 있었는데, 심사정과 같은 사람은 양반 신분을 가진 아마추어 화가로서 꽃과 동물, 짐승 따위를 가장 섬세하게 잘 그린 문인화가 중 하나다.

그런 그가 왜 <오이를 서리하는 고슴도치>를 그렸을까? 우리의 옛 그림을 볼 때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재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상징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비유와 은유와 상징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살짝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슴도치는 외형의 특징상 가시가 많다. 그리고 오이는 속안에 씨가 많다. 이는 자녀를 많이 낳아 기르는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또한 오이를 넝쿨째 그린 것은 자자손손 천대와 만대 번영을 의미하는 시간의 줄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옛 그림 속에는 수박, 가지, 포도 등이 넝쿨째 그려져 있다. 그리고 우측 상단의 붉은 꽃은 맨드라미다. 이 꽃은 흡사 닭의 볏을 연상시킨다. 보통 닭의 볏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벼슬’을 상징한다. 따라서 맨드라미는 출세를 의미한다. 그리고 좌측 2마리 곤충은 벌인데, 한자 봉(蜂)자가 책봉할 봉(封)자와 같은 음으로 쓰여 이 또한 관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출세의 의미를 담고 있다.

#2. 궁중화원 변상벽의 <수탉과 암탉>

화가 변상벽의 <수탉과 암탉>은 동양화판 리얼리즘 중 초현실적인 사실성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변상벽이라는 사람은 영조시대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던 ‘국수’였다. 궁중화원으로 ‘닭과 고양이’를 가장 잘 그린 사람 중 하다. 당시 동료화가들은 그의 별명을 ‘변탉’ 혹은 ‘변고양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는 뜻이다.

그런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닭은 ‘벼슬’을 뜻한다. 이때 수탉은 공계(公鷄)라 하고, 이 수탉의 울음을 공명(公鳴)이라 하는데 이는 ‘업적을 남겨 역사에 길이 남으라’는 뜻의 공명(功名)과 음이 같아 남다른 뜻을 갖는다.

더욱 닭은 인간의 5덕을 상징한다.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이다. 이때 문(文)은 닭의 볏처럼 벼슬과 학문을 상징하고, 무(武)는 닭의 발톱처럼 무기를 지니고 있음을, 또한 용(勇)은 닭의 용맹한 기운을, 인(仁)은 모이를 함께 나누는 닭의 어짐을, 신(信)은 새벽에 울어 세상을 깨우는 믿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조선의 선비로서 살 때에 마땅히 문, 무, 용, 인, 신을 가지라는 뜻으로 닭은 곧잘 그려 넣는다.

#3. 문인화가 심사정의 <봉접귀비>

예로부터 꽃과 나비는 사랑을 주제로 많이 쓰인다. 그러나 문인화가 심사정이 그린 <봉접귀비>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통 양귀비는 앵속(罌粟)이라 불린다. 이때 앵(罌)은 ‘항아리’란 뜻이고, 속(粟)은 곡식 ‘조’다. 다시 말해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조’라는 뜻이다. 양귀비꽃의 씨방을 보게 되면, 그 속에 씨가 꽉 들어차 있다. 역시 씨방 속에 가득한 씨는 다산을 의미한다. 또한 나비는 한자로 접(蝶)이다. 중국어 80세 고령의 노인을 일컫는 ‘질(耊)’이라는 음과 같다. 따라서 나비는 장수를 의미한다.

이렇게 문인화가 심사정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꽃이 나비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을 하고 다산과 장수를 누리라는 뜻의 호접몽 양귀비다. 이렇게 옛날 그림이 퍼즐만 맞추고 그려놓은 대상을 온전하게 즐기지 못한다면 그 즐거움이 반감된다.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춘다’는 <한비자>의 말처럼, 큰 계획을 꾸리려면 먼저 정치적인 질서와 경제적인 번영이 있어야 한다. 옛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그 속에 담긴 뜻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10년 전부터 전통미술을 국악과 접목해서 매년 정기공연을 펼치고 있는 손철주 미술평론가는 그것이 바로 <화통(畵通) 콘서트>다. ‘그림과 통한다’는 뜻이다. 그곳에서 진행과 해설을 맡아서 하고 있다.

손철주 미술평론가와 나눈 <미술과 삶>에 대한 Q&A

Q. 국민일보 미술담당 기자 출신으로 알고 있다. 이후 동아닷컴 인터넷취재본부에서 본부장을 역임했다. 어떤 업무를 진행하였는가?

A. 1988년부터 국민일보 문화부에서 미술 취재를 담당했다. 이어서 문화부장이 되었으나 11년만인 1999년에 퇴사했다. 이후 동아일보 인터넷신문인 ‘동아닷컴’ 취재본부장을 맡았다. 일종의 편집국장이다. 이곳에서 문화부를 위시해 전체를 다 아우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애착이 깊었던 미술 관련 일에서 멀어진 듯해 심적 고민이 컸다. 그래서 ‘평생 하고자 했던 일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본부장 업무를 놓고, 글 쓰고 강의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Q. 1997년 미술 교양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로 스테디셀러란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A. 이 책은 동양미술과 서양미술, 전통과 현대가 모두 들어있다. 현재 미술평론을 하게 된 토대가 되었고, 강의를 하게 된 자원이 되었다. 다만 근래에는 서양미술을 다루지 않는다. 그쪽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서양미술사 전문가도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오늘날 젊은 세대는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이 적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옛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오늘에 되살릴 수 있는 교훈을 들려주기 위해 강의나 글을 쓰고 있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정통미술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동양미술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Q. 현재 여러 분야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다. 그중 가장 중점을 둔 사업은 무엇인가?

A. 지금은 ‘전통미술과 국악의 만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10년 전부터 전통미술을 국악과 접목해서 매년 정기공연을 펼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화통(畵通) 콘서트>다. ‘그림과 통한다’는 뜻이다. 그곳에서 진행과 해설을 맡아서 하고 있다. 우리 옛 그림의 세계를 무대에서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그림의 주제와 맞는 연주와 무용, 소리를 퓨전으로 종합한다. 국악을 모르는 사람도 자유롭게 보고, 듣고, 즐길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서울 중구청 ‘정동야행’에서 진행했다. 정기공연과 지방순회공연으로 계속해 진행한다. 전통미술이 요즘 사람들에게 좀 더 정겹고, 유익하고, 흥미롭게 전파되며 향유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공연의 일환이다.

 

Q. 미술을 좋아하는 일반인에게 조언한다면?

A. 요즘은 예술이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되지 않고 그저 공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면 따분해질 수 있다. 공자도 늘 ‘지지자(知之者, 아는 자), 호지자(好之者, 좋아하는 자), 낙지자(樂之者, 즐기는 자)’를 구분했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그런데 이 말을 역으로 풀면 ‘즐기기 위해서는 좋아해야 하고, 좋아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는 순환의 고리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그림을 끊임없이 많이 대하면 여러 가지가 포착이 된다. 그리고 그림이 들려주는 소리를 귀로도 듣게 된다. 이후 보이는 게 많으면 아는 게 많아지고, 또 아는 게 많아지면 남에게 얘기할 것도 많아지게 된다. 이로써 대화와 소통과 담론이 된다.

 

Q. 강의/강연 때 일반인을 대하는 감회가 어떠한가?

A. 강의를 할 때 청중의 놀라운 열의가 느껴진다. 매우 바쁜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강당에 몰려온다. 그것은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강의는 독서와 다르다. 책을 통해 그림을 보고 읽는 것은 혼자만의 일방통행이다. 그러나 강의는 서로 대화를 하는 쌍방통행이다. 의문과 경험과 느낀 점을 서로 교류할 수 있다.

 

Q. 향후 추진하고 싶은 계획과 사업이 있다면?

A. 앞으로도 계속해 국악과 전통미술을 접목시키는 일을 추진할 생각이다. 또한 그동안 집필한 책이 10권 이상이다. 여전히 강의를 통해서 현장에서 수강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궁금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을 낼 계획이다. 글 쓰고 강의하고 하는 일은 서로 맞물려 있다. 강의를 많이 하게 되면 그것이 자료가 되어 도서 집필로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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