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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2인자 김종필, 3김시대의 막을 내리다.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조문객들 잇달아 빈소 찾아. 靑,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논란 불러일으켜
  • 김영대 기자
  • 승인 2018.07.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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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를 찾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있는 모습 (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  243호 = 김영대 기자]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던 3김(고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 이상 3명) 중 최후의 1인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오전 8시 15분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간에서 일컬었던 ‘3김(三金)시대’는 이제 역사 속 한 페이지 안에서만 오롯이 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유족 측의 이야기에 따르면 김 전 총리는 6월 초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약 보름 전에 퇴원했는데 그러던 중 23일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키자 유족들이 119 구급대를 통해 인근에 있는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고 한다.

고 김 전 총리의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영결식 또한 지난 27일 아산병원에서 진행됐다. 고인의 뜻에 따라 김 전 총리의 장지는 그의 부인 고 박영옥 여사가 잠들어 있는 충남 부여 선산 가족묘원으로 결정되었다. 이와 관련해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23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를 통해 “정부에서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도 제안했으나, 고인의 뜻을 존중해 가족장으로 모시는 것으로 했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의 빈소였던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은 지난 2015년 2월 세상을 떠난 박 여사의 빈소로도 알려져 있는데,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김 전 총리는 3년 전 아내의 빈소를 방문한 조문객들에게 “마누라와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가 국립묘지 안장을 고사했던 사실 역시 부인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난 23일 부여군민체육관(부여중학교 내)에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 됐으며 27일 오후 6시까지 조문객들을 맞았다. 고인이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던 만큼 그를 추모하기 위해 이용우 부여군수와 박정현 부여군수 당선자를 비롯해 많은 지역민들이 분향소를 다녀갔다.

정부는 역대 국무총리들에게 훈장을 준 관례에 따라 김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으나 문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가는 대신 25일 오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통해 김 전 총리에 대한 조문이 이루어졌다.

5.16 군사정변의 선봉장

김 전 총리는 1948년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8기로 임관해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하던 중 당시 같은 육사 2기로 육군본부 정보국 상황실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다. 이후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총리를 비롯한 육사 8기생들은 서로 의기투합하게 되었으며 이들이 바로 5.16 군사정변의 선봉장으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드러내게 된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난 제2공화국 시절 항명파동으로 강제 전역된 그는 육군소장으로 있던 박 전 대통령과 육사 8기생 장교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쿠데타를 기획했으며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을 비롯한 대구, 부산 등의 주요 시설을 무력점거하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장면을 사퇴시켜 군사행동 개시 60여 시간 만에 제2공화국을 붕괴시키고 대한민국의 전권을 쥐게 된다.

중앙정보부의 창설자

군사정변 이후 육군준장으로 특진한 김 전 총리는 군사정부 하에서 박 전 대통령의 2인자로 군림했고 이로써 그의 ‘영원한 2인자’라는 인생의 막이 열렸다. 그는 당시 강력한 정보기관 설립을 역설하며 국무총리 산하의 중앙정보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중앙정보부를 창설했으며 초대 중앙정보부장의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유명한 표어도 그가 이 당시 지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이후 중앙정보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비밀리에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4대 의혹 사건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김종필 전 총리의 2인자 인생은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력을 잡으면서 부터 시작됐다. 사진은 김 전 총리가 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 부터 총리 임명장을 받는 모습 (출처_뉴시스)

영원한 2인자 인생과 3김시대

군사정부의 민정 이양 이후 그는 민주공화당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며 박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추진하게 되면서 후계자의 꿈은 한발 멀어져 2인자인 국무총리의 자리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3선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게 되면 1인자의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유신이 강행되기에 이르러 계속 2인자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1979년 10.26 사태가 일어나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게 되자 그는 단순히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르는 2인자를 넘어선 한층 발전된 능동적 2인자, 즉 킹 메이커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김영삼, 김대중과 함께 때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기도 했는데, 이때가 바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 널리 회자되는 ‘3김시대’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12.12 사태가 발생하면서 김 전 총리가 공직에서 물러나고, 김대중은 내란 음모죄로 구속, 김영삼은 가택 연금에 들어가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후 5공화국 군부 독재하에 김영삼과 김대중은 일시적으로 협력 관계를 이루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따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김 전 총리도 충청권 세력을 결집시키며 다시금 등장했다. 결국 대통령에는 노태우가 당선됐으나 다음해인 1988년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이 승리하여 여소야대의 구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1990년 노태우, 김종필, 김영삼이 3당 합당을 선언하며 그 결과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김 전 총리의 킹 메이커로서의 첫 행보가 이루어졌는데 그는 민자당 최고위원으로 활약하며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같은 당 김영삼 후보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 1등 공신이 된다. 그러나 이후 김 전 총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내각제 실시 등을 비롯한 정치적 노선을 두고 갈등하게 되고 결국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하며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자민련은 이듬해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냈으나 영, 호남에 비해 세력 기반이 약한 충청권에 기반을 둔 김 전 총리는 결국 다시 킹 메이커로서 두 번째 행보를 이어갔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둔 그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DJP연합’을 결성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으나 역시나 내각제 개헌 등을 비롯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2001년 9월 김대중 정부를 떠나기에 이른다.

김대중 정부와 결별 한 이후 그는 계속 자민련 총재로 활동했으나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17석을 확보하는데 그치는가 하면 다음 총선인 2004년에는 충청권에서도 참패를 당하고 김 전 총리 본인마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서 낙선하자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3김시대는 실질적으로 종말을 고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부인 옆에 함께 묻히기를 원해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김 전 총리가 2005년 한 행사장에서 부인 박영옥 여사와 기념촬영 하는 모습(출처_뉴시스)

부인을 향한 사랑

김 전 총리는 애처가로 유명했다. 김 전 총리의 부인인 박영옥 여사는 그가 정치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내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 전 총리 또한 그녀를 아껴 2008년 뇌졸중으로 팔, 다리가 불편한 상황에서도 박 여사의 입원 후 매일 휠체어를 탄 채 박 여사 곁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박 여사 투병 당시)병문안을 갔는데 김 전 총리가 휠체어에 앉아 박 여사를 간병하고 있었다”며 “예리(김 전 총리의 딸)씨가 ‘편하게 소파에 앉아 계시라’, ‘댁에 들어가시라’고 말해도 김 전 총리는 ‘네 어미가 날 위해서 평생 살다가 저렇게 누워있는데 내가 무슨 면목으로 편하게 앉아있을 수 있겠느냐’며 밤 늦게까지 박 여사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끝내 국립묘지가 아닌 가족묘에 안장 되길 원했던 이유 역시 부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인인 박 여사가 2015년 세상을 떠나자 그는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데, 숱은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 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라는 내용의 묘비명을 미리 써놓았다. 두 사람은 195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소개로 인연이 닿게 되었으며 같은 해 2월 15일 부부의 연을 맺었다.

김 전 총리의 빈소를 찾은 인물들

김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난 날인 23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추미애 대표가, 자유한국당에서는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러 한국당 의원들이 빈소를 들렀으며, 바른미래당에서는 박주선, 유승민 전 공동대표와 손학규 선대위원장 등이 조문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인에 대해 “우리나라 정치에 큰 족적을 남기신 어른이며 정권교체에 큰 시대책무를 하는데 함께 동행해준 어르신으로 늘 존경하는 마음이었다”고 추억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조문 후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대한민국의 경제를 선진국 반열로 토대를 세우신 그 업적에 대해 저희들이 환골탈태하는 계기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전 공동대표는 “굴곡진 정치 인생을 살아오셨지만 무엇보다 이 땅에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큰 축을 담당해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고 언급했다.

24일에는 이수성, 이회창, 정운천, 한덕수,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빈소를 찾아 헌화했으며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들도 나란히 빈소를 찾았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도 조문했다. 이회창 전 총리는 “고인을 빼고 한국 현대 정치사를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활동을 했다”며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시고 부인과 함께 편히 잠드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도 “두 분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실 때도 많았지만 인간적으로 각별했다”며 고인을 추억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홍영표 원내대표와 박경미 원내대변인이 빈소를 방문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홍준표 전 대표를 비롯해 이완구 전 총리와 서청원, 김무성, 원유철, 정우택 등 여러 의원들과 김태호 전 경남지사, 이철우 경북지사 당선인, 남경필 전 경기지사 등이 빈소를 찾았다. 김무성 의원은 “우리나라가 못살 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조국 근대화를 해 국민들을 잘 살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평가했으며 남경필 전 지사는 “한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거목이 돌아가셨다”며 “고인이 추구한 통합이라는 가치를 기억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철우 당선인은 “연초에 찾아 뵙겠다고 했는데 못 뵈어 아쉽다”고 말했으며 서청원 의원은 “모든 문제를 대화로서 상생의 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을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야기 해 주셨는데 안타깝다”고 술회했다.

바른미래당에서는 김동철 원내대표를 포함해 하태경, 김삼화, 최도자 의원 등이 조문했으며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도 빈소를 찾아 헌화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명암은 엇갈리지만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큰 어르신으로 국민은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고인의 명복을 비는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짙은 그늘과도 작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조문했다”고 밝혔다.

정부 인사들 중에서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빈소에 들러 조문했으며 그 외에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정운찬 KBO 총재, 방송인 송해 씨와 가수 하춘화 씨 등 여러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다.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도 이날 빈소를 방문했다.

25일에는 서훈 국정원장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빈소에 들러 조의를 표했으며 자유한국당에서는 이인제 전 한국당 충남지사 후보가 빈소를 찾아 와 “우리 현대사의 큰 별이 졌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 외에도 심재철, 정갑윤, 정우택, 김광림, 전희경, 조훈현 등의 한국당 의원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바른미래당에서는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관영 의원과 같은 당 오신환 의원이 오후 늦게 빈소에 들렀으며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 역시 빈소를 방문했다. 민주평화당에서는 조배숙 당 대표와 장병완 원내대표를 비롯해 정동영, 천정배, 주승용 의원이 빈소에 들렀다. 조배숙 당 대표는 조문한 후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한국 정치의 원로분이 타계를 하셨다”며 “3김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정치시대의 획을 긋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정의당에서는 이정미 당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가 빈소를 찾았다. 이정미 당대표는 “현대사에 큰 굴곡의 역사를 만든 분의 가시는 길을 애도하고자 왔다”고 말했으며 노회찬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이 이제 박정희 시대와 전면적으로 작별하는 순간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현재, 정원식, 고건, 김황식, 정홍원, 황교안 등 전직 총리들도 빈소를 찾았는데 황교안 전 총리는 “나라를 위해 애를 많이 써주셨던 귀한 어르신 한 분이 가셔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도 이날 조문을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병석에 오래 계시기 때문에 직접 조문하지 못하셨다”며 “깊은 애도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오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도 빈소를 방문하여 조문을 마친 뒤 “김 전 총리의 업적을 생각해 이제부터 한∙일 관계를 확실히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언급하며 유족에게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의 조의문을 전달했다.

이 외에도 최태원 SK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 재계 인사를 비롯해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윤세영 전 SBS 회장 등 언론계 인사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인 설정스님 등 종교계 인사, 가수 이선희씨 등 문화계 인사까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추서와 관련된 논란들

김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추서와 관련해 과거 고인이 5.16 쿠데타에 가담했던 사실로 논란이 제기 되고 있으며 문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가지 않았던 것 또한 이와 같은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민주당, 한국당, 미래당은 김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추서를 인정하는 반응이었지만 정의당과 인권단체들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논란은 24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 전 총리의 빈소에 방문해 기자들을 만나 “(김 전 총리에게) 훈장을 추서하기로 내부적으로 정했고 어떤 훈장을 추서할지는 방침이 정해지면 바로 보내드리겠다”고 언급한데 이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같은 자리에서 “국민훈장 중 최고인 무궁화장으로 결정될 것 같다”고 밝히면서 부터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김 전 총리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김 전 총리가) 일생 한국사회에 남기신 족적에 명암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훈장 추서와 관련해 “충분히 국가에서 예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자유한국당 이완구 전 총리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간이 모두 살면서 공과가 있을 수 있고 명암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역사적 인물에 대해 과를 너무 들춰내고 공에 대해 인색한 거 같다”며 “무궁화장에 찬성하든 반대를 하든 본인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평가해 봤으면 좋겠다”고 언급해 훈장 추서 논란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정부가 훈장을 수여한다고 하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훈장 추서와 관련해 “훈장은 단순히 공적을 기리는 것을 넘어 후세에 귀감으로 평가하는 것”이라며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민주평화당의 천정배 의원은 같은 당 박지원 의원과는 달리 “고인이 되신 분에 대해 인간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좋은데 훈장을 주는 것은 사적은 문제는 아니잖나”라며 “냉철하고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본인의 SNS를 통해 고인에 대해 “징글징글 했다”고 강하게 비난하며 훈장 추서와 관련해 “이런 식이면 전두환이 죽어도 훈장 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김 전 총리에 대한 훈장 수여에 반대하는 청원글이 다수 올라 오기도 했다.

이와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지난 25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통해 김 전 총리의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전달했다. 김 장관은 훈장을 추서한 후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추서를)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언급하면서도 “정부의 의전 절차와 관례에 따라 총리를 지낸 분들에게 무궁화장을 추서 했던 것이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김 전 총리는 무공수훈자이자 6.25 참전용사”라며 “보훈처에선 그에 맞게 예우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세상을 뜨고 고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들이 오가고 있다. 5.16 쿠데타, 4대 의혹 사건, 한일기본조약 등을 놓고 사람들은 그에게 바쳐진 훈장이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차차 시간에 의해 그리고 시대에 의해 내려질 것이다. 다만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한 정치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일단은 그저 순수하게 고인을 추모하고자 한다.

김영대 기자  ydkim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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