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 상황 변화에도 국익을 최우선시 해야

필자는 지난 7월호 칼럼을 통해 이스라엘 모사드의 사례를 인용해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분골쇄신을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 동안 국정원이 보인 행태는 분골쇄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필자의 당부가 무색하게 더욱 과감한 정치적 행보를 이어나갔다.

 

 

1976년 6월27일 중동의 극렬 단체인 와디 하다디파 소속 테러리스트들은 텔 아비브를 떠나 파리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기를 납치했다. 테러리스트들은 카사블랑카를 거쳐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으로 향했다. 원래 목적지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수단 정부는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를 거절했고 이에 목적지를 우간다로 변경했다.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테러리스트에게 기꺼이 피난처를 제공했다. 이디 아민은 집권하자마자 이스라엘 대사관 건물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게 내줬을 정도로 반이스라엘 성향이 강했다.

 납치된 에어프랑스기 승객 대부분은 유대인이었다. 당시 유대인을 표적으로 한 비행기 납치가 횡행하던 시절이어서 이스라엘로서는 강경한 대응이 필요했다. 먼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나섰다. 모사드는 케냐에 본부를 차리고 테러범들의 소재지 파악에 나섰다. 모사드는 특유의 정보력으로 인질이 감금된 건물의 소재지를 알아냈다. 이제 군이 바통을 이어 받을 차례였다. 이스라엘군 특수요원들은 모사드가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치밀하게 시뮬레이션을 구상했다. 특수요원들은 수차례의 훈련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작전에 소요된 시간은 단 5분에 불과했다. 인질은 모두 구출됐고 테러리스트들은 사살됐다.

물론 인명피해도 없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에선 단 한 명의 군인이 전사했는데, 이 작전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요나단 네탄야후 중령이었다. 그는 벤야민 네탄야후 현 이스라엘 총리의 친형이었다. 벤야민 네탄야후는 강경 보수파 가운데서도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치인이다. 그가 이렇게 강경노선을 지향하는 이유는 엔테베 작전에서 친형을 잃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판단력이 흐려져서는 안 돼
현재의 자아는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또 친형을 잃은 아픔이 강경 보수파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천이 된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사리판단이 흐려지면 안 된다. 벤야민 네탄야후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모사드를 사용하려 했다. 이로 인해 모사드 안팎에서는 그가 모사드를 사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아내인 사라가 모사드에게 개인적인 요구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보기관이 권력자 개인의 정치적 목적만을 위해 사용되면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정보기관 본래의 기능인 정보수집 능력은 사라지고 오로지 권력의 입맛에 맞는 활동, 이를테면 정적에 대한 사찰과 제거, 반정부 시민단체에 대한 탄압 등의 비정상적인 행태만이 횡행할 뿐이다. 대한민국 국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 나라는 남북이 분단돼 있는데다 예측 불허의 북한 정권으로 인해 상시적인 저강도 전쟁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보다 정치세력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정보기관은 특성상 최고 권력자와 가까이 있어야 하기에 권력의 향배에 민감할 수밖엔 없다. 그럼에도 정파적 이해를 떠나 무엇이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 판단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난 한 달 사이 국정원이 보여준 행태는 최소한의 상식마저 결여된 모습이 역력하다. 상시적인 저강도 전쟁 상황에서 국민의 안위를 지켜줄 강력한 정보기관을 갖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묻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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