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사고 2년, 사실 은폐로 일관한 도쿄전력 빈축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이 발생한지 2년이 지났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폐쇄원전에서 초고농도 방사능을 포함한 수증기가 흘러나와 일본 전역에 다시 한 번 비상이 걸렸다. 이에 앞서 도쿄 전력은 원전 내의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음을 처음으로 인정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초고농도 방사능 수증기 유출로 불안한 일본열도
지난 7월18일 이후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원자로에서 세 차례에 걸쳐 방사능 수증기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도쿄전력은 지난 18일 원전에서 수증기가 목격된 후 제1원전 3호기 주변에서 시간당 2,170mSv(밀리 시버트)에 이르는 초고농도 방사능 유출이 확인됐다고 인정했다. 처음 흰색 연기가 포착됐을 당시 방사능 수치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 모두 거짓으로 들통 난 것이다. 이번에 검출된 방사능 수치는 시간당 2,170mSv로 지난 2011년 5월 후쿠시마 원전 붕괴 후 불과 두 달 뒤에 측정 한 방사능 양과 비슷하다. 이러한 초고농도 방사능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쳐 방호복장을 입은 작업원도 8분 이상 일하기 힘들 정도의 위험하다. 성인이 1년간 접촉해도 무방한 방사능 한계치 1mSv의 2,000배를 넘는 셈이다.

특히 원전 3호기에는 우라늄보다 20만 배 이상 독성이 강한 플루토늄이 들어 있어 다른 원전보다 더 위험하다. 당초 일본 정부는 국내외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소 폐기물을 재처리해 추출한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어 우라늄-플루토늄(MOX : Mixed Oxide)혼합연료를 제조했고 문제가 된 3호기는 이렇게 만들어진 우라늄-플루토늄 혼합 연료를 세계 최초로 상업발전에 사용해 주목된 바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플루토늄은 방사능 독성이 우라늄보다 훨씬 커 피해가 더욱 우려되고 있다.

일단 쉬쉬하고 보는 ‘은폐공화국’ 도쿄전력
도쿄전력은 방사능 수증기 유출에 앞서서 지난 7월22일, 원자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도쿄전력은 앞서 지난 7월10일 일본 정부기구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원자로 건물에 쌓인 고농도의 오염수가 지하수와 섞여 바다로 유출되고 있는 의심이 든다”라는 지적에 대해 “오염수 유출은 없다”라며 일축했으나 12일 만에 입장을 바꾸고 오염수의 바다 유출을 인정해 공분을 샀다. 지난 5월부터 원전 내 관측용 우물에서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면서 오염수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어 왔고, 도쿄전력측은 방사능 오염수 누출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쉬쉬해 왔다. 결국 오염수 유출로 인해 원전 전용 항구에서 채취한 바닷물 조사결과 방사성 물질 농도가 3달 만에 20배 이상 높아졌으며 지하 갱도에 고여 있는 1만여 톤의 오염수도 땅 속으로 새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전력의 은폐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도쿄전력은 작업원의 갑상선 피폭량 조사 결과, 암발생률이 높은 100mSv 이상 피폭자는 178명에 불과하다고 발표했으나 유엔과학위원회가 재조사한 결과 갑상선 피폭 작업원 수가 2,000여 명에 달해 당초 발표의 10배가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은폐공화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도쿄전력은 고질적인 은폐주의로 비난을 사왔다. 도쿄전력이 그간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를 바탕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공론화하기보다 내부적으로 처리하고 정보공개에 있어서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에 바바라 저지 영국 원자력청 명예회장도 도쿄전력의 정보공개 방식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밝히며 효율성보다 국민의 안전성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인해 유출된 방사능 물질 제염작업에 최대 5조 1,300억 엔(약 57조 원)이 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2011년에서 2013년 후쿠시마 현의 제염작업에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 1조 1,500억 엔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원자력 재가동 준비는 물론, 원전 수출에 나선 일본
끝나지 않은 후쿠시마 재앙에 시달리는 가운데 일본이 사실상 중단됐던 원자력 발전을 재가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日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하면서부터 불거지고 있다. 일본 아베신조 총리는 지난 2월28일 시정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동 중단된 자국 원전들을 원자력규제위 하에 전문적인 안전 점검 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재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민주당 정권이 2030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한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본 국민 여론 조사 결과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 재가동’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고, 자민당의 정권 파트너인 공명당과 대부분의 정당이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원전수출을 위한 행보도 이어 나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중동의 산유국들은 석유를 수출하고 원전을 이용해 국내용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에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중동 순방이 실제로 원전 수주를 위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그는 뒤이어 6월16일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유럽 4개국의 정상들을 만나 원전수출을 위한 세일즈 외교를 펼쳤다. 원전 피해 당사국의 행보가 이렇다 보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 원전 정책을 내세우던 국가들이 ‘값싼 원전 전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입장을 선회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초 원전 건설에 다시 착수했고 영국은 원전 폐쇄에서 신규 원전 대체 정책으로 선회했으며 우리나라 역시 원전을 확대해 가고 있다.

방사능 간접영향권에 있는 한국, 관리 기준 마련해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든 가운데 우리나라에 악영향은 없는 지 우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주변으로 흐르는 쿠로시오 해류와 오야시오 해류는 동쪽으로 주로 흘러 한국에 미치는 악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다. 후쿠시마를 흐르는 해류는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수천 년 후에 우리나라에 유입되기 때문에 직접적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발생한 방사능 수증기의 영향에 대해 기상청은 “편서풍의 영향으로 후쿠시마 지역의 기류가 한반도에 직접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고 말했다. 한국이 방사능 오염물질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직접영향권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방사능의 반감기가 수십~수백 년이 걸리는 만큼 간접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농림수산검역부가 올해 2월 발표한 일본 수산물에 대한 세슘 검사 결과에 따르면 세슘 검출건수가 2011년 21건에서 2012년 101건으로 급증했다. 중량으로는 149톤에서 2,705톤으로 18배 늘어난 수치인데, 방사능이 검출됐다 하더라도 허용기준치를 넘지 않아 국내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슘이 검출된 수산물의 종류도 다양해 졌다. 지난 2011년 냉장대구, 냉장명태, 냉동고등어, 냉동방어, 백합 등 7종이었던데 비해 2012년에는 활돌돔, 활방어, 마른고등어, 냉장방어, 냉동대구 등 15종으로 늘었다. 환경단체들은 세슘 검출 수산물의 증가는 방사능 물질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됐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후쿠시마와 인접한 지역뿐만 아니라 도쿄, 지바 현 등지에서 들여 온 수산물에서도 세슘이 검출되어 일본산 수산물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세슘 허용 기준치는 1kg당 100Bq(베크렐)로 이는 일본 수입품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한국의 국가 기준치는 370Bq/kg으로 기존의 기준치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이 세슘 허용 기준치를 모두 100Bq/1kg으로 강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일본산 수입품에 대해서만 100Bq/1kg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허용치란 ‘관리’에 대한 기준치 일뿐 ‘안전’에 대한 기준치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안전한 방사능은 없는 만큼 허용기준치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한편 방사성을 띈 세슘은 인체에 유입될 경우 근육에 침착되어 위나 장에 침투해 축적되고 DNA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방사능 피폭량이 증가함에 따라 암 발생이 증가하는 것은 의학계에서도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방사성 물질 중 세슘과 요오드에 대한 기준치를 가지고 있을 뿐 그 외의 방사성 물질에 대한 기준치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한국 정부의 방사능 오염 관리 체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정부조직법이 개정됨에 따라 수입 수산물에 대한 검사 업무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관됨에 따라 방사능 오염도 확인이 어렵게 됐다. 기존의 농림부가 방사능 측정 검사 결과에 대해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했던 것과 달리 식약처는 방사능 검사 결과를 허용치에 따라 적합, 부적합으로만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간접 영향권에 놓여 있던 서유럽인들이 방사능에 피폭된 경로는 주로 음식을 통한 내부피폭이 80~95%를 차지했다. 한국이 방사능의 간접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큼 방사능 식품으로부터 우리의 식탁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원전 ‘바닷물 냉각’이끈 현장 소장, 암으로 숨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현장 소장으로서 ‘바닷물 냉각’을 이끈 요시다 마사오가 식도암 투병 끝에 지난 7월9일 숨을 거뒀다. 지진 발생 당시부터 2011년 11월 식도암으로 퇴사하기 전까지 그는 사태 수습을 이끌었다. 당시 간나오토 총리와 도쿄 전력은 핵분열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을 우려해 바닷물 주입 중단을 지시했으나 그는 이를 무시하고 바닷물 냉각을 이끌어 사고의 확대를 막았다. 약 8개월 간 그가 피폭된 방사능의 양은 일반인의 연간피폭한도에 70배에 달하는 70mSv. 그러나 방사능 피폭에서 사망까지는 5~10년이 걸려 그가 피폭으로 인해 식도암을 얻었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58세의 일기로 숨을 거둔 고인의 죽음에 대해 아베 총리와 도쿄전력이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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