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기록이 정쟁에 희생될 경우 국익 훼손 불가피

6월 국회는 여야의 극한대치로 몸살을 앓았다. 여야의 대치는 지난 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방불케 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선을 2개월 앞둔 시점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쟁점화 시켰다. 이에 대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대선후보는 법적 조치를 시사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후 여야는 이 문제를 놓고 한 달 이상 열띤 공방을 벌였다. 

 

대선이 임박하면서 이번엔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개입 의혹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러자 민주당이 열띤 공세에 나섰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대선의 향배를 좌우할 수 있었던 민감한 이슈였기에 여야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선 국면에서 벌어진 여야대립의 주요 쟁점은 NLL과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이었다. 공교롭게도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똑같은 쟁점으로 극한 대치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 대선 당시 NLL이 앞에 오고 국정원 선거개입이 뒤이어 왔다면, 이번 임시국회에선 국정원 선거개입이 먼저 제기되고 나중에 NLL이 뒤따랐다는 사실이다. 

검찰의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결과 발표는 여야 대립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고 이런 행위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야당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반색하는 한편 새누리당을 향해 국정조사 실시를 압박했다.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실시에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들끓는 여론을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지난 3월17일 정부조직법을 통과시키면서 민주당과 “국정원 직원의 댓글 의혹과 관련 검찰 수사가 완료된 즉시 관련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한다”고 합의했던 터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에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 6월20일 오전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와 회동을 갖고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새누리당이 NLL 카드를 꺼내들면서 정국은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새누리당-국정원, 사전 교감 있었나?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국회정보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적법성 논란이 불거졌다. 서 위원장은 관련 법령에 따라 국정원에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열람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즉각 반박했다.  

서 위원장이 발언록을 열람한 정황을 들여다보면 새누리당과 국정원 사이에 일정 수준 이상 교감이 이뤄졌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복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 위원장은 보좌관을 통해 사전 통보하듯 민주당 정보위 간사인 정청래 의원에게 대화록 열람 사실을 알렸다. 1시간 뒤 국정원1차장이 서 위원장 방으로 대화록 원문과 발췌본을 들고 찾아왔다. 대통령 기록물 열람이 이렇게 전격적으로 이뤄진 사례는 이례적이었다. 이런 정황으로 인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새누리당의 NLL 발언 공개가 정략적인 선택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실 새누리당으로선 야당의 공세를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했다. 국정원 역시 국정조사 압력이 비등해 지는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통령 기록물이 정략적으로 이용된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상간 회담 기록이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정략적으로 이용될 경우, 향후 한국 정상과 만나게 될 그 어떤 외국 정상도 민감한 의제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정상적인 외교가 어려워져 궁극적으로 국익훼손으로 귀결된다. 

어떤 사안이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기록물 등 국익과 밀접한 사안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정략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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